지난번 빙허각 이씨에 관한 글을 쓸 때 어디 두었는지 몰라 끝내 찾지 못해서 아쉬웠던 <규합총서>를 뒤늦게 찾아냈다. 분명 두어 번 훑어본 책장이었는데, 마음이 급했나 막상 필요할 때에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책등인데, 필요 없게 되자마자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니 한심한 일이다.


내가 가진 <규합총서>는 한학자 이민수가 번역해서 1988년에 간행한 것인데, 서두의 해제 말미에 더 먼저 나온 정양완의 보진재 번역본을 거론하며 그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고 적은 것으로 미루어, 아무리 한학자라도 요리나 생활에 관한 내용까지 훤할 수는 없으니 도움을 받은 듯 보인다.


<규합총서>는 전반부가 요리 관련 내용이고, 후반부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꿀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고 심지어 결정하는 방법이라든지, 술을 끊게 만드는 약 제조법처럼 허황되고 비과학적인 듯한 속설도 적잖이 포함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람[風]과 사이[間]라는 글자를 적어 벽에 붙이면 모기가 사라진다든지, 숫놈 쥐를 잡아 음경을 잘라 풀어주면 다른 쥐를 깡그리 잡아 죽인다든지, 말굽을 깎아 놓아두면 바퀴벌레가 사라진다는 등의 내용은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그 신빙성이 충분히 의심될 만한 내용이다.


그 당시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규합총서>에도 다른 문헌에 나온 구절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한 대목이 여럿 포함되었다. 따라서 음식 관련 내용처럼 실제 확인했음직한 것뿐만 아니라, 위의 사례처럼 그저 '카더라'나 '썰'에 불과한 내용 역시 적잖이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되겠다.


예를 들어 개고기 조리법에서 개를 잡을 때에는 칼로 찌르지 말고 목을 매달라 설명한 것이라든지, 삶은 개고기는 칼로 썰지 말고 반드시 손으로 찢어야 한다고 설명한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실용적 조언일 수 있지만, 누런 개가 여성에게 좋고 검은 개가 남성에게 좋다는 이야기는 미심쩍다.


그나저나 개 삶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와 유사한 고양이 삶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고리키의 에세이에서 우연히 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 번은 고리키가 체홉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평소 작품 집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삼갔던 선배 작가가 슬며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있잖아요. 한 여선생 이야기를 써 볼까 하는데요. 무신론자에 다윈을 열렬히 숭배하고, 민중들의 편견과 미신에 대항해 싸워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 여자이지요. 그런데 그런 여자가 밤 12시에 욕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삶아요. 고리뼈를 얻으려는 거죠. 그 뼈가 남자를 끌어당기고 남자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니까."(<가난한 사람들>, 183쪽)


인간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측면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으로 짐작되는데, 실제로 작품화되지는 않고 체홉이 남긴 메모로만 전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고리뼈'는 '꼬리뼈'의 오타가 아니라 척추뼈 중에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부분을 가리키는 모양인데, 고양이의 '골반' 부분인 듯하다.


희한한 내용이다 싶어 구글링해 보니 '검은 고양이 뼈'는 '후두' 주술에서 일종의 부적처럼 사용되는 모양이다. 이 대목에서 '후두'(hoodoo)가 '부두'(voodoo)와 다르다는 것은 나귀님도 처음 알았는데, 이전에 몇 번인가 그 단어를 접했을 때에도 단순히 '부두'의 오역/오타라고 생각했었다.


후두는 부두처럼 역시나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를 중심으로 유포된 주술 위주의 신앙 체계라고 한다. 어제 쓴 글에서 언급했던 <아내가 마법을 쓴다(Conjure Wife)>라는 소설의 원제도 후두의 여성 주술사(conjure woman)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 대략 '마녀' 대신 '마줌마' 정도 되려나.


그렇다면 체홉이 언급한 검은 고양이 뼈 주술도 아프리카에서 유래하여 미국의 후두를 거쳐 러시아까지 전래된 것일까? 구글링해 보니 후두와는 무관하지만 내용은 비슷한 주술이 유럽에도 있어서 독일을 거쳐 캐나다로 전파된 바 있다니, 체홉이 언급한 주술은 후두와는 무관할 법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후두의 '검은 고양이 뼈' 주술에 관한 보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남긴 인물이 바로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조라 닐 허스턴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저명한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의 제자로서 미국 흑인의 민속을 연구했는데, 그중에는 후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실제로 허스턴의 기행문 <노새와 인간>을 보니 '검은 고양이 뼈'를 얻는 과정을 실제로 체험했다고 나와 있었다. 즉 저자가 만난 후두 주술사가 '남의 눈에 안 보이게 하는 효험'이 있는 부적이라며 추천하자, 그의 지시를 따라서 직접 검은 고양이를 잡아서 솥에 넣고 삶았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허스턴은 주술사의 지시대로 24시간 굶으면서 특수 제조한 술만 마셔서 몸에 감각이 없고 정신만 멀쩡해졌다. 그 상태로 한밤중에 밖에 나가 검은 고양이를 찾아내 잡았고 (이게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물이 펄펄 끓는 솥에다 고양이를 산 채로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후 허스턴은 주술사의 지시대로 고양이를 향해 저주를 내렸고, 그러자 고양이는 세 번쯤 크게 울더니 이내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다 삶은 고양이에서 발라낸 뼈를 하나하나 직접 맛보며 쓴맛 나는 것을 골라냈고, "날이 밝기 전에 작고 하얀 뼈를 하나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고 적었다.


인권을 동물권으로까지 확대적용하자는 주장마저 나오는 요즘 같으면 허스턴은 물론이고 체홉이나 고리키, 심지어 빙허각 이씨조차도 동물 학대와 조장 및 방조 혐의로 누군가에게 고발당하지 않을까. 심지어 여성계와 교육계와 집사계에서도 해당 집단을 폄하했다고 노발대발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언젠가 <던전밥>에 관해서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개고기는 음식 문화의 일부분이니, 오늘날 기호가 많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양이 주술은 훨씬 기묘하지만, <톰 소여의 모험>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했으니 한때나마 흔했던 미신이 아니었을까.


물론 빙허각 이씨나 허스턴이 지금까지 유명한 것은 단순히 개와 고양이 삶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엉뚱하고 미심쩍은 이야기도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시대의 생활과 심성에 대해 가감 없는 증언을 남겼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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