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라이버가 1953년에 간행한 공포 소설 <아내가 마법을 쓴다>의 주인공은 미국의 소도시에 자리한 대학에 재직하는 젊은 교수다. 예쁜 아내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이미 가졌고, 조만간 승진까지 앞두고 있어서 정말로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이상한 일에 연이어 휘말리게 된 것은 겁도 없이 아내의 화장대를 함부로 뒤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한 사이에 무심코 화장대 서랍을 열어본 남편은 액막이에 사용하는 갖가지 주술 용품이 즐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를 추궁하니, 여자는 모두 마법을 쓰게 마련이고,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눈물 섞인 변명이 나왔다. 이성을 신봉하는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남편은 미신에 현혹되지 말라고 타이르고, 아내도 그 말을 받아들여 주술 용품을 모두 버린다.


그런데 아내가 마법을 포기하고 액막이를 제거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운이 남편에게 연이어 닥친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인간 관계에서도 연이어 말썽과 갈등이 생겨나자, 남편은 뒤늦게야 아내의 주술이 자신의 경력을 유지해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머지않아 두 사람을 포위한 적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남편의 대학 동료들인 조교수와 부교수와 학과장의 아내들도 저마다 주술을 이용해 남편들의 성공을 도모했으며, 강력한 경쟁자인 주인공 부부에게 빈틈이 생겼음을 알자마자 합세해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결국 남편은 주술에 효험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뛰어난 주술사인 아내를 보조함으로써 동료 부인들의 공격을 저지하며 차례대로 굴복시킨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적수인 학과장 부인과의 치열한 대결에서 아내는 결국 영혼을 빼앗기고 만다.


여자가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고대부터 전해지니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당장 주기적으로 맞이하는 생리 현상도 '마법'이라 지칭하고 있으니, 마녀 사냥을 비롯해서 역사 내내 여성에 대한 박해와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과 마법사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아는 페미니스트 문학의 대모 어슐러 르귄조차도 남자 마법사에 비해 여자 마법사, 즉 마녀는 더 저열하고 악랄하며 음험한 존재로 줄곧 묘사해 왔으니, 이쯤 되면 여자와 마법의 조합이야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여자들은 마법 능력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화장대와 싱크대처럼 자신들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된 공간에 그 무궁무진한 능력을 압축해 넣어두었다가, 화장이나 요리나 인테리어처럼 지극히 무해해 보이는 활동으로 위장해 은근슬쩍 실천해 왔다.


예를 들어 여자가 커튼을 바꾸거나, 가구를 옮기거나, 화분이나 소품을 배열하는 일 역시 주술 행위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싱크대를 어지르거나, 냉동실의 저 비닐 봉지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내가 짜증을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에 나온 지 무려 70년이 넘은 저 소설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 것은 당연히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어놓는가 하면, 무려 무속인을 멘토로 삼았다는 등의 주술 관련 뉴스가 줄줄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대목은 물론 대통령 후보 배우자가 각별히 주술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는 점인데, 박사 학위 논문부터 무려 '운세'에 대한 내용이고, 저 유명한 YUJI 논문 역시 '운세 콘텐츠'에 대한 내용이어서 양쪽 모두 대놓고 주술을 주제로 삼았다.


심지어 자질 여부를 놓고 숱한 논란이 이어졌음에도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보면, 그 배우자의 주술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외부 전문가인 각종 무속인까지 영입함으로써 그 파괴력을 한층 높였던 것이 승리의 요인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어느 한쪽의 문제만도 아니었던 것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역시 평소에 점을 많이 보러 다녔다는 증언이 무려 그 아들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한국 여성 사이에서 페미니즘 못지않게 주술 능력이 보편화된 증거라고 하겠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배우자를 중심으로 숱한 논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비상 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두고 탄핵과 체포까지 당하게 되었으니, 나귀님이 보기에는 그 배우자의 액막이 주술이 어딘가 교란된 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닐까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풍수적으로 액운이 낀 것은 아니냐고 추측하지만, 그 배우자의 탁월한 주술 능력을 감안하면 상당히 견고하게 구축해 두었을 각종 액막이가 단순히 이사 몇 번 했다고 깨지거나 흔들렸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불안 요소는 바로 현직 대통령 본인이다. 평소에도 워낙 제멋대로이고 독불장군이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데, 심지어 비상 계엄 발표 때도 국무위원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니 평소 성격을 알 만하다.


결국 아내가 알뜰살뜰 마련한 각종 주술 도구를 남편이 멋대로 내다 버렸든지, 아니면 아내가 교묘하게 배치해 놓은 가구와 화분과 접시와 식칼의 위치를 남편이 함부로 옮겨 버렸든지 해서 사사건건 방해를 하다 보니 스스로 올가미를 조이게 된 것이 아닐까.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최근 두 번이나 있었던 공수처의 체포 시도에서 나타난 상반된 결과이다. 1차 시도 때에는 완강한 저항으로 절대 뚫리지 않고 버틴 저지선이 2차 시도 때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져서 체포조의 진입을 허락해 버리지 않았나.


새벽부터 뉴스를 보던 나귀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또다시 남편이 아내의 화장대를 뒤졌거나, 아니면 싱크대를 어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뉴스에서 체포 직전 샌드위치를 직접 만드느라 부산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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