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미국인에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이라면 1963년에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꼽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그 소식을 접한 순간 자신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생생히 기억한다고 대답했으니, 대낮에 벌어진 현직 대통령 암살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나 짐작할 만하다.[*]
물론 기억이란 퇴색하게 마련이고 사람의 수명도 한계가 있는 만큼, 6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케네디 암살의 충격을 기억하는 미국인도 드물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21세기 벽두에는 이 사건조차 빛이 바랠 만큼 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바로 2001년의 9/11 테러였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퓨리서치센터에서 2011년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21세기의 미국인에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을 남긴 역사적 사건은 9/11 테러였다. 그 다음 순위로는 케네디 암살, 빈 라덴 사살, 아폴로호 달 착륙, 챌린저호 폭발, 킹 목사 암살, 닉슨 하야 등이 꼽혔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8/15와 6/25부터 10/26과 12/12까지 그저 날짜로만 언급되는 각종 사건사고가 먼저 떠오르지만, 언론 통제가 남아 있던 시절이니 즉각적인 충격은 덜했을 수 있다. 반면 세월호 사건처럼 실시간 생중계로 전달된 비극은 충격도 더 크지 않았을까.
벌써부터 12/3으로 지칭되는 이번의 비상 계엄 사태 역시 우리에게는 과거의 여느 사건 못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군사 정권 시대 이후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겠지만,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황당함이 더 지배적이지 않았을까.
나귀님은 그날 그때 마침 유튜브에서 순살감자탕 조리법을 검색하던 중이었다. 바깥양반이 며칠 전부터 감자탕 먹으러 가자고 노래를 부르는데,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요리 동영상을 보니 뼈다귀 말고 순살로만 감자탕을 끓여도 저렴한 가격에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물론 동영상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여러 가지 참고해서 가장 적절해 보이는 것을 찾아내야 했는데, 그렇게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갑자기 뉴스 속보라는 게 뜨는 거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서 침소봉대한 제목을 달고 있는 허위 영상인 줄 알았다.
워낙 옥석이 뒤섞인 유튜브이다 보니 한창 화제가 되는 내용을 악용하는 낚시성 조작 영상도 흔하다. 몇 번 당하고 보니 뭔가 놀라운 내용이다 싶으면 의심부터 하게 되어서, 이번 비상 계엄 발령 소식도 츠키처럼 긴가민가요 하다 뒤늦게 YTN을 틀어보고 나서야 진짜임을 알았다.
이처럼 믿기 힘든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으니, 이제는 국민 전체의 기억에 뚜렷한 상흔이 남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심리적 상흔뿐만 아니라 실체적 상흔도 없지 않을 법한데, 섣부른 조치로 외교와 경제 등에서 큰 후유증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비판 받을 사람은 대통령 본인이겠지만, 일각의 지적처럼 여러 측근 그룹으로 이루어진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다행히 출동한 군인들이 태업한 덕분에 피해 확산을 막았다지만, 군대의 특성상 명령 불복종은 또 그것대로 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독단과 망상으로 인해 온 국민이 충격과 부담을 감내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두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혼란한 상황이었으니, 앞으로 내년까지 이어질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또 어떤 풍파가 밀어닥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편으로는 12/3도 결국 시간이 흘러 지금의 충격을 경험 못한 세대가 등장하면 '비상 계엄은 필연적'이었다는 둥,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둥 갖가지 헛소리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이미 10/26이며 12/12며 심지어 5/18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으니까.
여하간 두 시간 반만에 끝나 버린, 따라서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내란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비상 계엄에 비하자면, 그 절반의 시간 만에 완성된 순살감자탕은 그럭저럭 성공한 편이었다. 물론 바깥양반 말로는 국물이 너무 적었고, 우거지도 너무 적었고, 감자만 많았다지만...
[*] 나귀님에게도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박정희 피살 사건이다. 물론 10/26 당시의 구체적인 사회 분위기까지 생각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오후 6시가 되어도 만화영화는 안 나오고 TV에서 향불 사진과 함께 우울한 음악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오제의 죽음"이었다) 흘러나오기에 의아했던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