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뒤적인 어슐러 르귄의 에세이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그의 어머니 시오도라 크로버에 대한 회고... 라고 쓰다가 혹시나 싶어 <남겨둘 시간이 없습니다>를 다시 펼쳐 보니 정작 그 내용은 없었다. 어제 함께 꺼냈던 다른 에세이집 가운데 하나에 섀클턴과 함께 들어 있었는데 여기 있다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나귀님은 그 딸보다 그 엄마 쪽을 더 먼저 책으로 접했다. 남편인 인류학자 앨프리드 크로버가 돌본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에 관한 논픽션을 아내가 썼는데, 그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ABE 전집의 축약본 <마지막 인디언>으로 기억하지만, 완역본이 창작과비평사의 제3세계총서로도 나왔었다.


두 여자의 모녀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는데, 어려서부터 ABE와 ACE88 전집을 애지중지했던 친구가 어느 날 자기 방 책꽂이에 있는 <마지막 인디언>을 꺼내더니, 역자 해설에 나온 내용 중에서 '저자 시오도라의 딸 어슐러도 작가다' 운운 하는 대목을 지목하며 뭔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밝혀낸 것처럼 알려주어서였다.


그때까지 번역된 작품은 자유추리문고 <어둠의 왼손>과 ACE88 <매는 하늘에서만 빛난다> 뿐이었고, 당연히 인터넷도 없었던 상태였으니 '어슐러 르귄의 엄마도 작가였구나' 하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가, 한참 뒤에야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의 저자가 바로 그 엄마이며, 어슐러 K. 르귄의 'K'가 바로 '크로버'의 약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펼친 르귄의 책에는 크로버 이야기가 없다고 하니... 다시 딴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면, 여하간, 이 책에서 이번에 유난히 흥미롭게 느껴진 글은 "내면의 아이와 벌거벗은 정치인"이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인터넷에 르귄의 창작이라며 돌아다니던 인용문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 윤색한 문장이었다는 이야기다.


문제의 인용문은 "창의적인 어른은 살아남은 어린이다"라는 것인데, 저자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문장을 쓴 적이 없어서 직접 책을 뒤지다가 결국 포기하고 답답한 마음을 자기 블로그에 표현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독자들이 그 출처로 보이는 르귄의 글(번역서에는 단편이라 오역했지만 실제로는 에세이다)을 찾아서 제보해 주었다.


알고 보니 르귄은 "나는 성숙이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죽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어린이가 살아남아서 된 것이 어른이다"라고만 썼는데, 나중에 명언 인용문을 수집하던 누군가가 위와 같이 윤색된 내용을 게시하며 일파만파로 유포되었으며, 심지어 르귄이 직접 인증했다는 허위 글까지 생겼다.


최근 논란이 되는 가짜 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문제는 이런 거짓 정보가 유포되기는 쉬워도 바로잡기는 어렵다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르귄도 2011년에 문제의 인용문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되어 최초 게시자에게 삭제를 부탁했지만, 몇 년 뒤까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가짜 명언, 또는 출처 불명의 인용문의 사례는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크게 늘어나서 지금은 아예 그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전문 사이트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정체불명의 멋진 말을 즐겨 유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자기 SNS며 블로그를 남의 눈에 돋보이게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지, 그 사실 여부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따라서 대중의 악의... 까지는 아니지만 무지와 허영과 속물근성 같은 일상의 악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온갖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와 엉터리 인용문을 사방에 퍼트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가끔은 어떤 인용문이 집단 창작인지 집단 지성인지를 거쳐 더 근사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르귄이 질색팔색했듯 원래 의도를 왜곡한 헛소리가 된다.


얼마 전 나귀님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해 쓰며 언급한 프리모 레비의 가짜 인용문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유대인이고,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스라엘에게 유대인이다') 역시 해당 작가의 실제 발언에 전기 작가의 추가 발언이 덧붙으며, 마치 이 인용문 전체가 해당 작가의 발언인 것처럼 오해되어 유포된 사례였다.


흔히 '법정 스님의 개고기 반대 글'이라고 잘못 유포된 것 역시 '호주 시드니 정법사의 법전 스님'이라는 이가 불교 잡지에 기고한 글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옮겼고, 이후 그 내용이 유포되면서 '법전'이 '법정'으로 와전된 경우다. 현재 길상사 홈페이지에는 이를 바로잡은 게시물이 있긴 하지만, 불교 잡지 명칭을 여전히 잘못 적어놓고 있다.


때로는 악의라고는 없었던 황당무계한 농담조차 가짜 뉴스로 가공되어 두고두고 악명을 떨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의 언론인 H. L. 멩켄의 '욕조의 역사'이다. 1917년에 그는 장난삼아 욕조의 발명과 백악관 최초 도입 등에 관한 황당무계한 헛소리를 갖가지 인명과 지명과 날짜까지 자세히 곁들여 순수하게 창작해서 한 신문에 기고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빗발쳤고, 미국 전역의 매체에서 관련 보도를 쏟아내는 등, 악의 없는 거짓말이 졸지에 기정사실화되기에 이르렀다. 10년 뒤에 멩켄은 '이거 다 거짓말인 것 아시죠?'라면서 욕조의 역사는 농담에 불과했다고 이실직고했지만, 수십 개 신문에 간행된 이 해명도 상황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이 사건을 회고한 "진실 찬가"라는 글에 따르면, 멩켄은 거짓이 사실로 오해되고 진실이 허구에 굴복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인간의 마음에는 본능적으로 허구를 추구하는 그 무엇이 있"(430쪽)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진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꾸밈없는 진실은 주로 불쾌하고 전혀 위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431쪽)


"정상적인 사람은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진실은 소수의 (...) 병적인 사람들의 열정이다. 지혜의 장에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 참으로 유쾌한 일련의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로부터 인간의 지식이라 불리는 것의 대부분이 생겨난다. 시로 시작된 것이 사실로 끝나고, 역사책에 기록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433쪽)


그렇다면 허구를 상상하고 서술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작가야말로 거짓의 유혹에 가장 취약할 수 있는데, 어쩌면 멩켄이 그런 터무니없는 농담을 꾸며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지 모르겠다. 물론 평소의 멩켄은 <편견집>이라는 저서 제목에 어울릴만큼 신랄하고, 냉소적이며, 우상파괴적이고, 독선과 아집을 조롱하는 글을 쓴 사람이었다.


멩켄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코니 윌리스의 단편 "내부 소행"에 등장한 그의 영혼만큼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심령술사로 자처하며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 집단의 강령회에서 어쩌다 보니 진짜 멩켄의 영혼이 나타나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비유하자면 박정희를 불러내려는 강령회에 장준하의 영혼이 나타나 호통을 친 격이랄까.


물론 악의는 없었다지만 때로는 실없는 농담 한 마디가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의 정립이라는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니, 프로건 아마추어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멩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이건 르귄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에세이집을 뒤적이다 보니, "약간의 제안: 식물연민"이란 묘한 글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 제목에서부터 스위프트의 반어적 풍자 전통에 충실한 글이지만, 혹시나 이런 암시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자칫 동물도 불쌍하고 식물도 불쌍하니 내친 김에 육식과 채식을 넘어서 이제 공기식만 하는 '오건'으로 나아가자는 저자의 주장을 "창의적인 어른은 살아남은 어린이다"라는 인용문처럼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도 없지 않아 보이기도 하니...





[*] 그나저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번역/편집이 엉망이다. "호머"와 "스나티슬라프 렘"처럼 자기네 출판사에서도 냈던 저자명을 잘못 표기한 경우부터 시작해서, 르귄이 5미터 밖에 있는 방울뱀을 쳐다보았다는 대목에서는 그 거리가 무려 "500미터"로 대폭 늘어나기까지 했다.(진짜로 500미터 밖에 있는 방울뱀을 맨눈으로 볼 정도면, 이 80대 할머니 자체가 외계인 아닌가?) 번역을 엉망으로 했더라도 편집을 제대로 했더라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오류였으니, 이래저래 자기네 대표 작가의 작품을 아무렇게나 내놓을 정도로 홀대한 출판사의 잘못을 책망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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