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란마 1/2> 애니메이션을 새로 제작한 모양이다. 루미코의 개그 코드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나귀님이라 원작도 이미 전권 소장에 수차례 정주행한 데다가, 넷플릭스에서 <던전밥>과 <이세계 삼촌>을 재미있게 봤으니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신작 애니메이션이 과연 어디까지 표현할지, 또 어디까지 용인될지가 새삼 걱정스럽기도 했다. 널리 알려졌듯이 원작 만화의 핵심은 저주로 인해 찬물에 닿으면 여자로 변하고 더운물에 닿으면 남자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이상 체질이다.
무술을 연마하느라 맨몸일 때가 많은 소년이 여자 몸으로 변하고서도 평소처럼 웃통을 벗고 돌아다녀 모두를 경악시키고, 화가 난 약혼녀의 옷을 빌려 입고서는 가슴이 꽉 끼고 허리가 헐렁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아 분노를 사는 등의 어이없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사춘기 청소년의 성과 신체에 대한 호기심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부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잠재 코드를 찾아낼 수도 있는 작품인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구판 애니메이션이 불건전하다며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기도 했다.
물론 여자로 변한 주인공의 가슴이 수시로 노출되고, 여자 속옷을 훔치고 다니는 변태 할아범도 나오니, 과연 일본 청소년 만화의 표현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는 것도 사실인데, 과거에는 그저 웃기자고 만든 설정도 지금은 자칫 논란이 되기 쉽겠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란마 1/2>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공개 이후에 유튜브에 올라온 분석 영상을 몇 가지 보니 구판 애니메이션에 비해 수위를 낮추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인 듯하다. 결국 일종의 검열이 작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불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왜 영상물에서 살인 묘사에는 관대한데 성 묘사에는 가혹한지 모르겠다는 누군가의 불만도 떠오르는데, 사실 현재의 검열은 그 자체로 모순점이 적지 않다. 단순히 미디어를 순화해서 인간을 교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검열 당국도 인간을 잘 모르고 있는 셈이다.
검열의 이런 모순이 가장 잘 드러난 최근의 사례는 경기도 교육청의 한강 작품 유해 도서 선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내용상 청소년에게 어울리지 않아서라고는 하지만, 바로 그 작가가 노벨문학상씩이나 수상했으니 경기도 교육청으로서도 상당히 머쓱하지 않겠나!
나귀님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된 한강의 소설은 상당히 기괴한 내용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올드보이>와 <기생충> 같은 해외 영화제 수상작과 묶어서 K-그로테스크라는 장르의 의의와 육성에 대해서도 한 번쯤 고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경기도 교육청의 한강 작품 유해 도서 지정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입시일 것이다. 아무리 유해 가능성 농후한 내용이라도 국내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니, 이쯤 되면 당장 올해 수능부터라도 문제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가장 확실한 예상 문제라서 필독서로 지정해도 부족할 법한데 오히려 금지한다니, 당장 한 문제가 아쉬운 수험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불만 가득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차라리 교육부에서 한강 작품은 출제하지 않겠다고 미리부터 못을 박아 놓든가.
아이러니한 점은 오래 전부터 입시 문제에 사용된 필독서 중에도 청소년에게 유해해 보이는 내용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김동인의 "감자"인데, 한쪽은 원나잇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한쪽은 무려 성매매와 살인에 대한 내용이다!
'필독서'라는 명칭 자체도 의문이다. 언제부턴가 이른바 청소년 필독서 목록이 돌아다니던데, 수십 년 전에만 해도 없었던 풍조다. 문학평론가 김우창만 해도 <수레바퀴 아래서>가 필독서라는 것을 몰랐으며, 70세가 되어서야 처음 읽어보았다고 회고했을 정도이니까.
한편으로는 만초니의 <약혼자들>을 학교에서 필독서로 접하기 전에 읽어보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었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회고를 기억할 필요도 있다. 어찌 보면 필독서 지정이야말로 한 작품을 순수하게 읽지는 못하게 만드는 족쇄일 수도 있을 테니.
한강 작품의 유해 도서 논란을 계기로 문화 전반의 검열 문제도 생각해 볼 만하겠다. 최근 화제가 된 게임 분야 국정 조사에서 나온 누군가의 발언처럼, <오징어게임>이 진짜 게임이었다면 제작자가 에미상 수상은커녕 구속되었을 것이라는 일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부 주도의 검열이 없어지더라도, 온갖 불편러에 의한 인민재판식 검열은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이쪽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으니 과연 실효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수능이라고 한다. 과연 한강 문제는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