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양반이 피곤해서 일찍 자겠다며 자리에 눕기에 옆에서 스탠드 켜 놓고 엎드려 책을 보는데, 잠을 자기는커녕 또 휴대전화로 무슨 미드를 보고 있다. 그것도 고함과 욕설과 비명과 쿵쾅쿵쾅 삐융삐융 소음이 요란해서 잠이 오기는커녕 싹 달아나야 맞겠다 싶은 것을.
뭐냐고 물었더니 <주노> 아이가 나오는 무슨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지난번에 얼핏 보니 무슨 말하는 침팬지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는 황당무계하고도 피칠갑하는 작품이던데, 잠잘 거라면서 그런 흉칙스러운 드라마를 잘도 보고 있구나 싶어 한심했다.
잠시 후에는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오기에, 혹시 그거 지금 배경이 1980년대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지금도 종종 라디오에서 나오는 명곡이기는 하지만 발표 당시의 연도는 1980년대 중반이었으니, 혹시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장치인가 싶었던 거다.
내가 들은 노래는 카트리나앤드더웨이브스의 "워킹온선샤인"이다. 당시의 많은 팝송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예전에 <쇼비디오자키>에서인지 DJ 김광한이 해외 신곡이라면서 그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도 좋았지만 뮤비도 꽤 인상적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노래가 시대 배경을 설명한 경우라면, 지난번 바깥양반이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에 나온 노래를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결혼 전 썸 타던 시절이었는데, 돈까스를 먹었나 어쨌나 하는 대목에서 흐르던 노래가 11월의 "착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11월"은 밴드의 이름이다. "착각"과 "머물고 싶은 순간"이라는 노래로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 연주하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중간에 서남용 비슷한 외모의 멤버가 한 명 있었던 것이 이채로웠다) 지금 확인해 보니 2집까지만 내고 해체해 사라진 모양이다.
"착각"은 1990년에 나온 곡이니 <무빙>에서도 아마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만난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귀님이야 그때도 바깥양반이 옆에 누워 휴대전화로 보던 드라마의 소리만 듣고 있었으므로 구체적인 맥락까지는 잘 모르지만.
<무빙>은 다음 웹툰에서 연재할 때에 완결까지 꼬박꼬박 챙겨보았는데, 강풀의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설정 면에서 제법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후의 후속작이나 다른 작품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라마로 각색되면서는 몇 가지 설정과 인물을 추가한 모양인데 (그중에는 헌책방 사장님도 하나 있었나 그랬다) 나중에 전체 줄거리 요약본을 살펴보니 그냥 군더더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제법 인기를 끌어서 디즈니 채널 가입자가 상당히 늘어났다니 묘한 일이다.
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착각"을 부른 밴드의 이름이 "11월"인 것은 바로 그 달에 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바깥양반이 <무빙>을 보던 때가 봄이라서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듣던 차였는데, 봄이 한창인 5월에 듣는 11월의 노래라 생각하니 희한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1월이라 겨울의 문턱에 가까워졌다. 벌써 열 달이 지나갔는데 올 한 해도 딱히 한 것 없이 어영부영 보내는 것은 아닌가 자책만 들고 있다. 이렇게 또 쓸데없는 글을 써서 수요 없는 공급을 하느라 시간과 전기만 낭비하면서 말이지...
[*]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11월"이라는 동명의 인디 밴드도 있던데, 위에서 언급한 "11월"과는 다른 밴드로 보인다. 여하간 내가 아는 "11월"의 음반은 1집과 2집을 합친 편집본만 등록되어 있는 듯한데, 이거... 예전에 나왔을 때 해당 가수들의 동의 없이 음반사에서 멋대로 나온 편집본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그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 전집을 상당히 싸게 팔았는데도 굳이 사지는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거라도 사 놓을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하다. 물론 아쉬운 대로 유튜브에 가 보면 "11월"의 1집 음반을 누군가 올려놓은 것이 있기는 하다마는...

[**]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인지 구스따보 구띠에레스인지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결국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