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프랑시스 퐁주의 시집이 알라딘 중고로 올라와 있기에 살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은 한 달쯤 전에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중고 영어책이 하나 있는데, 배송비 내기가 아까워서 차일피일한 참이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함께 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구매하려고 보니 두 권 합쳐도 2만 원이 넘지 않아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절판본이어서 중고로 구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11월 쿠폰도 나오고 했으니 배송비 내고 구입해 버릴까 싶기도 했고...


혹시 함께 구매할 만한 무슨 만화책이나 그런 저렴한 중고가 있나 검색하다 보니, 웬일인지, 이번에는 에마누엘 레비나스 전집 가운데 한 권이 역시나 알라딘 중고로 올라와 있다. 예전 같으면 덥석 구입했겠지만, 요즘은 알라딘 중고에 어지간한 놈이 나와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며 심드렁한 상태이니 마음이 크게 동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레비나스라면 나보다 바깥양반이 더 열심히 읽은 저자인데, 그나마도 최근에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모양이니 굳이 사야 할까...


그래도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사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게 헌책방의 불문율이니, 세 권 합쳐 3만 원에 육박하여 원래 생각한 2만 원대를 훌쩍 넘기는 상황임에도 일단 로그인이나 해 볼까 하다가, 먼저 화장실 갔다 오고, 누가 와서 초인종 눌러서 나가 보고, 왜 아직 안 나가느냐고 바깥양반에게 잔소리 하고 기타 등등을 하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퐁주와 레비나스 모두 다른 누군가가 이미 구입해서 품절 상태였다. 살짝 아쉬우면서도 오히려 시원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프랑시스 퐁주의 시집을 굳이 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의 시를 담은 번역서를 서너 권쯤 갖고 있기는 한데, 딱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타성적으로 구입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솔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가운데 한 권을 맨 처음 샀던 것 같은데, 사실은 워낙 책이 안 팔리다 보니 영풍문고에서 재고를 할인하기에, 이건 또 뭔가 싶어 궁금한 김에 싼 맛에 하나 구입했을 뿐이었다. 한 번 구입하고 보니, 오, 이건 아는 사람이다 싶어 다른 중고도 구입했고...


중고 서적 중에는 워낙 많이 팔려서 흔한 것도 있지만, 거꾸로 워낙 안 팔려서 흔한 것도 있는데, 내 기억으로 프랑시스 퐁주는 한때 후자, 즉 중고보다는 처치곤란의 재고 취급을 받는 저자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앞서 말한 솔의 세계시인선 중에서는 미겔 에르난데스,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니카르노 파라 등이 재고 떨이 판매 코너에서 퐁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은 이미 다 팔렸는지 찾아볼 수 없었고...


이번에 놓친 책은 제목이 <사물의 편>이었는데, 제목이 비슷하다 싶어 지난번에 랭보 전집 꺼내면서 이것저것 꺼내 찍은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청하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가운데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읻다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책이 금방 절판되고 또 금방 재간되고 하던데, 확인해 보니 <사물의 편>도 오늘 본 것은 초판본이 아니라 표지가 달라진 재판본 정도 되는 모양이다. 조만간 삼판본도 기대해 볼 법하겠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알라딘 구매가 뜸한 이유는 (막상 쓰고 보니 살짝 찔린다. 어제 영등포점에서 구매하여 배송된 롬브로소와 로티 번역본과 구텐베르크 시대 서적 유통에 관한 번역본이 뒤늦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것도 4만 원 가까이 되는 가격이어서 살까말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 최근에 신용카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제휴 카드의 사용 기한이 만료되면서 새로 발급받으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존 제휴 카드는 대부분 발급이 중단된 상태이다 보니...


결국 자주 가는 은행에서 그냥 아무 카드나 하나 발급받아 쓰고는 있는데, 예전 카드처럼 간편결제를 쓰려고 하니 뭘 또 휴대전화로 앱을 깔아서 인증을 하고 뭘 누르고 하라기에, 에이, 그냥 쓰지 말자, 귀찮다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다 보니, 결국 신용카드 쓰는 게 복잡해지고 귀찮아져서 자연스레 알라딘 구매도 줄어든 셈이다. 마트나 다이소에 가면 기계에서 계산하니 오히려 편한데, 이놈의 휴대전화 앱 인증인지 나발인지는 그저 복잡하고 귀찮아서 웬만하면 기피하게 된달까...


여하간 알라딘 제휴 카드가 줄줄이 사라지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회원에게 주는 혜택도 슬금슬금 사라지는 것 역시 어떤 쇠퇴의 징후는 아닐까 싶기도 한데, 중고 물품 가격을 슬금슬금 올려서 결국 나귀님 빡치게 만든 것도 결국에는 비슷한 맥락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겠다. 그 와중에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은품이라는 미명으로 만들어 적립금 받고 팔아먹는 것을 보면, 현재의 알라딘이야말로 책 판매하는 것 빼고는 다 잘 한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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