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한강의 작품이 재간행되는 모양인데, 알라딘에 도배된 광고를 보니 그놈의 "부커상" 언급도 재개되는 듯하다. 수상 당시부터 줄곧 잘못을 지적했던 나귀님이니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데, 한강의 수상 내역을 단순히 "부커상"이라고만 하면 안 되는 이유야 분명하다.


보통 "부커상"이라면 1969년에 제정되어 5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문학상을 가리키며, 영어로 저술되어 영국에서 간행된 작품만이 대상이다. 반면 한강이 받은 것은 2016년 수상 당시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이었다가, 2020년부터는 "인터내셔널 부커상"으로 지칭되는 별개의 상이다.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국에서 간행된 외국 작품(번역 포함)이 대상이며, 2005년에 제정되어 격년으로 시상하다가 연례 시상으로 개편된 2016년에는 저자 한강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가 공동 수상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영어로 쓴 영국 작품만 시상하는 "부커상"과는 다르다.


비유하자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외국어작품상"의 차이와도 유사하다. 양쪽 모두 작품에 주는 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023년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수상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2023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연히 거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알라딘의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책 소개에는 "2016년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적어 놓았고 (바로 밑의 내용에서는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이라고 바로잡아 놓았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페이지 약력에서도 "2016 / 부커상 / <채식주의자>"라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반영하자면, 엄밀히 말해서 한강의 이력은 "2016년 부커상 수상"이 아니라 "2016년 부커상 번역 부문 공동 수상"이라고 해야 한다. 나귀님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부커상 번역 부문"이라고 굳이 풀어쓰는 이유도 "본상"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거다.


인터내셔널이건 코민테른이건 간에 어쨌거나 "부커상"은 "부커상"이니까, 모로 가도 한강만 찬양하면 되니 아무래도 괜찮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2016년 부커상 수상" 자격을 정당히 주장할 수 있는 다른 책이 우리나라에도 나와 있기... 아니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이 바로 2016년 부커상, 즉 인터내셔널도 코민테른도 아닌 "본상"의 진짜 수상작인 폴 비티의 소설 <배반>인데, 당시 4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커상 최초로 영국 작가가 아닌 미국 작가가 수상한 경우라고 해서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미 절판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한강이라는 작가도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가를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 수상 직후 사생활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며 이미 이혼한 남편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고 말했듯, 진짜 2016년 부커상 수상자에게도 누를 끼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해 보는 말이다.


얼마 전 살만 루시디의 "부커상 3관왕"에 대해서도 지적했었지만, 유독 부커상과 관련해서는 이런 오류가 계속되는 듯하니 희한한 일이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십중팔구 한강의 수상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문학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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