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루슈디 신작을 살펴보는데 뜬금없이 "부커상 3관왕"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뜻인가 궁금해 살펴보니, 책날개의 저자 약력에서부터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 오브 부커스'(1993년)와 '베스트 오브 더 부커'(2008년)를 수상하며 부커상 3관왕이라는 문학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고 적어 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작품의 세 가지 수상 실적 가운데 1981년의 부커상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가 그냥 인기 투표에 불과했다는 거다. 즉 '부커 오브 부커스'는 1993년에 그 문학상의 제정 25주년을 기념해서 지금까지 나온 수상작 가운데 최고를 뽑은 것이지, 매년 시상한 정식 부커상까지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베스트 오브 더 부커'는 이름 그대로 2008년에 그 문학상의 제정 40주년을 기념해서 선정한 것이었으며, 우선 전문가 심사위원이 여러 후보작을 추리고 일반 대중의 참여를 거쳐 결정된 인기 투표였다. 당장 위키피디아의 부커상 항목에도 위의 두 가지 상은 "특별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양쪽 모두 정식 시상이 아니라고 치면, "3관왕"은 억지 주장일 수밖에 없다. 보통 다관왕이라는 것은 한 대회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수상한 경우를 가리키지 않나? 쿳쉬와 애트우드처럼 실제로 부커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도 "2관왕"이라기보다는 "2회 수상자"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가운데 20세기 최고작과 역대 최고작 하나씩을 선정해서 <대부>가 뽑혔다고 치면, 그걸 가지고 아카데미 시상식 3관왕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영화의 3관왕 실적이라면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한 것만을 가리킨다.
물론 루슈디의 작품을 꾸준히 간행하고 있는 문학동네의 입장에서야 그 작가의 탁월함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아무래도 뭔가 억지스러워서 지적하는 것이다. 이전 작품에 수록된 약력에서만 해도 그럭저럭 설명하고 넘어갔던 내용을 지금 와서 유독 강조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2011년 간행한 <피렌체의 여마법사>에서는 "1993년에는 지난 25년 간의 부커 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을 뽑는 '부커 오브 부커스'에 선정되었다"고만 썼다. 2011년 간행한 <한밤의 아이들>에서도 "부커상 40주년을 기념해 일반 독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오브 더 부커'의 영예를 안았다"고만 썼다.
2012년 간행한 <루카와 생명의 불>과 <하룬과 이야기 바다>에서도 무난하게 넘어갔고, 2020년 간행한 <2년 8개월 28일 밤>에서는 그냥 부커 상, 부커 오브 부커스, 베스트 오브 더 부커를 받았다고만 쓰고 말았는데, 비슷한 시기의 다른 책에서는 3관왕 드립이 본격화되었으니 약력도 중구난방이었다.
즉 2015년 간행한 <조지프 앤턴>에서부터 뒤표지에 "유일하게 부커 상을 세 번 수상한 작가"라는 표현이 등장하더니만, 역시나 2015년 간행한 <이스트, 웨스트>의 약력에서부터 "루슈디는 한 작품으로 부커 상을 세 번 수상하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겼다"는 의아한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22년 간행한 <악마의 시>와 2023년 간행한 <무어의 마지막 한숨>의 약력에서도 역시나 세 번 수상 이력을 들먹이며 "문학사상 유례 없는 기록" 드립이 나오더니, 결국 그 내용이 2024년 간행한 신작 <나이프>의 약력에까지 이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이건 3관왕이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출판사의 주장처럼 특별상 수상 실적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2018년의 부커상 제정 50주년 기념 최고작 선정에서 루슈디의 작품이 빠진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한밤의 아이들>의 문학적 가치가 부정되었다는 뜻일까? 알고 보니 루슈디도 아주 탁월한 작가까지는 아니라는 뜻일까?
나귀님이 보기에는 그저 세월이 흐르면 유행도 바뀌어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만 이해될 뿐이다. 한때의 걸작이나 졸작도 재평가를 거쳐서 그 위상이 달라질 수 있으며, 또다시 한 세대나 한 세기가 지나면 재평가를 거쳐서 그 위상이 달라진 경우를 문학사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으니까.
참고로 <한밤의 아이들>이 '부커 오브 부커스'를 수상한 1993년의 부커상 수상작은 로디 도일의 <패디 클라크, 하하하>였다.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서 헌책방에 많이 돌아다니던 책인데, 지금은 아마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루슈디의 작품이라 해서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같은 논리라면 알라딘도 '나귀님 선정 최악의 쇼핑몰' 분야에서 2024년 2월, 8월, 9월에 각각 1위를 했으므로 무려 3관왕이다. 아니, 이런 추세라면 2024년 전체 1위에다가, 어쩌면 21세기 전체 1위까지 달성할 수 있을 터이니, 그 다관왕 기록은 계속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