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웹툰 <열무와 알타리>의 작가가 갑자기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나마 괜찮았던 다른 여러 작품들이 연재 종료된 후에도 다음 웹툰 중에서는 유일하게 꼬박꼬박 챙겨 보던 것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기억하는 ("오늘이... 새벽에 <열무와 알타리> 최신회 봤으니까 금요일이군...") 방법이기도 했다.
고인의 인스타그램이라는 곳에 찾아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가족이 작성한 부고와 장례식장 사진 등이 올라와 있다. 차라리 가짜 뉴스였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사실로 밝혀지고 나니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젊은 사람인데 두 아이며 남편은 이제 어떻게 살라고 그토록 부리나케 떠나버렸을까 하는 원망마저 들었다.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귀님이니 도통 낯설기만 한 환경이었지만, 웹툰 연재분과는 별개인 일종의 자투리 만화가 많이 올라와 있기에 이것저것 클릭하다 보니 또다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애아의 어머니로 겪은 여러 가지 사건과 답답한 심정에 대한 기록이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기르던 고양이가 죽어서 고양이별에 갔다고 둘러댔더니, 나중에 아이가 그건 결국 죽었다는 뜻이라는 친구의 설명을 듣고 돌아와서 사실이냐고 추궁하기에 난감했다는 연재분을 다시 보니 또다시 착잡해진다. 급기야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에게 죽은 고양이를 돌려달라고 소원을 빌었다가 실망했었다니, 이번 일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문득 '하늘은 너그럽지 않아 인간을 하찮게 여긴다' 하던 말이 떠오르기에 출전을 검색해 보니,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는 <노자>의 한 구절이었다. 번역자의 해설을 보니 천지와 성인을 거론해 유가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후대에 첨언된 구절이라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운명의 맹목성을 일깨워주는 말로만 들린다.
생각해 보니 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읽게 된 계기도 <열무와 알타리>였다. 즉 장애아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을 그 웹툰에서 언급하기에,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저 두꺼운 책을 다시 꺼내게 되었고, 그중 장애아를 다룬 장을 모조리 읽어보게 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책은 제목처럼 부모와 달리 태어난 아이들이 가족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더 잘 동일시하고 편안해 한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부모와는 다르기 때문에 수직적 정체성은 약한 반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는 쉽게 공감하여 수평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범죄자와 신동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미국의 인기 TV 아동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의 작가였던 사람이 다운증후군 아들을 양육하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글이다. 뭔가 착오로 인해 원래의 목적지가 아닌 네덜란드에 도착해 당황한 여행객을 향해 놀라지 말고 그 나라 특유의 즐거움을 맛보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장애아를 낳고 혼란과 좌절과 분노를 느끼는 부모를 향해 건네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조언인데, 그 작성자로 말하자면 <세서미 스트리트>에 다운증후군 아들을 직접 출연시키는 등 세간의 인식을 바꾸려는 각고의 노력 끝에 장애인 아들이 정상적 사회 생활을 영위하게끔 이끌었던 어머니이기도 했으니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장애라는 것이 단순히 명칭의 문제만은 아니므로, 장애인에게 완벽한 사회 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솔로몬의 설명에 따르면,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저자 역시 나중에는 다운증후군 아들에게 정상적 사회 생활을 독려했던 것이 지나친 욕심이나 강요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었다니까.
작가의 사망 소식을 바깥양반에게도 알려주었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안타까워한다. 마침 얼마 전에 미신에 관해서 물어보기에, 문득 <열무와 알타리>에 나온 소금 뿌리는 이야기가 생각나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파트 문 앞에 소금이 수북이 떨어져 있어서 누군가 악의를 품었나 의심했는데, 다행히도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거다.
바깥양반 말로는 요즘 아이들이 사주보다 타로를 더 즐긴다기에, 역시나 <열무와 알타리>에서 작가가 점쟁이를 만나 솔깃했던 이야기도 해 주었다. 아이의 재활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동네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점쟁이가 신통하게도 남쪽으로 가라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물론 곧이어 부적을 구매하라기에 얼른 나와 버렸다지만.
작가도 평소에는 사주며 신점을 미신으로 폄하했지만, 병원에서 만난 비슷한 장애아 엄마를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한다. 즉 그 엄마가 점집에 가보니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는데, 훗날 그 아이의 상태가 실제로 크게 호전된 것을 지켜보니 자기 아이의 미래도 살짝 궁금해졌다는 거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어서 딱한 마음이 들 뿐이다.
나귀님처럼 유행과는 담 쌓은 사람도 최근 들어 장애며 장애학 관련 논의를 접하는 것으로 미루어 사회 분위기도 크게 달라진 듯한데,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장애인 인권 문제와 더불어 일각의 반발을 무마하는 방법도 연구되어야 할 것 같다. 소수의 권리란 결국 다수의 양해와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이니까.
그런 면에서 <열무와 알타리>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장애아를 양육하는 부모가 겪는 여러 가지 현실의 장벽을 묘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니었을까. 장애아의 재활과 교육 같은 직접적인 문제에서부터, 주위의 편견과 배려 같은 간접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과 논의의 소재를 제공해 왔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들어 뭔가 잘 안 풀리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내 복의 일부라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뭐, 나라고 딱히 남보다 운이 훨씬 더 좋진 않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더 사회에 도움될 만한 사람들이 더 잘 되어야 맞지 않나 싶어서였다. 많은 감동을 준 웹툰 작가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비통한 마음이 든 것도 그래서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