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밥 먹으며 틀어놓은 뉴스에 고려아연이란 회사의 경영권 분쟁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의 뉴스에도 계속 나오기에 도대체 뭐 하는 회사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어쩐지 낯익은 회사 로고가 등장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영풍문고의 로고였다.


혹시 고려아연도 같은 계열사인가 싶어 구글링해 보니, 아니나다를까 영풍그룹 산하의 주력 회사라고 나온다. 영풍그룹 자체가 공동 창업주 장씨와 최씨의 동업으로 탄생한 것이었는데, 최씨네가 담당하던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장씨네와 분쟁이 생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영풍문고 개업 당시 아무래도 생소한 그 모기업이 도대체 뭘 하는 곳이기에 종로 한복판에 교보문고와 맞먹는 대형 서점을 차리는지 궁금했는데, 그때에도 비철금속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알짜 기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비로소 수긍했던 기억이 난다.


재차 확인했더니 영풍문고는 원래부터 장씨네가 담당한 회사라서 현재 최씨네가 담당한 고려아연과는 무관한 모양이라 딱히 직접적인 영향까지는 없을 법하다. 다만 과거의 럭키금성처럼 동업 관계가 끝난다면 계열사 정리 차원에서라도 간접적인 영향은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점은 양쪽 집안의 동업 관계가 3대째에 와서야 결국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인데, 럭키금성 역시 3대째에 와서 결국 구씨네와 허씨네로 깔끔하게 분리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좋은 동업 관계에도 시한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영풍문고 종로 본점에도 몇 년째 안 가본 것 같다. 한때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들러서 책을 구경하다 서울역까지 걸어갔는데, 활동 반경이 바뀌며 나중에는 종로보다 신촌이며 강남으로 오가게 되었고, 코로나 이후로는 줄곧 집에만 틀어박히게 되었다.


영풍문고에서 운 좋게 구입한 뜻밖의 책도 몇 권 생각난다. 1977년에 간행된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한 부가 무려 20년 뒤에 깨끗한 상태로 갑자기 나타나서 꽂혀 있기에 반색하며 구입했는데, 오래 된 지방 서점에서 반품된 것은 아니었을지.


상설 반값 할인 코너에서 구입한 책들도 기억난다. 특히 리하르트 프리덴탈의 괴테 전기는 베이지색 케이스까지 완벽한 완전 새책으로 구입했는데, 수년 전에 생각나서 다시 꺼내 보니 케이스 일부가 색바래고 삭은 것을 보며 새삼스레 세월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어느 창고에서 뒤늦게 발견되었는지, 오래 전에 절판된 민음사 세계 시인선과 문학과지성사 최인훈 전집의 초판본이 잔뜩 나와서 여러 권 사기도 했다. 2000년 신저작권법 실시 직전 열화당 재고 떨이 행사 때 시장통처럼 북적이던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종로통의 서점이라면 무조건 종로서적만 기억날 줄 알았더니, 생각해 보니 영풍문고에서도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교보문고가 여러 번 내부 공사로 공백이 길었고, 종로서적도 결국 사라지는 와중에 영풍문고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으니까.


종로서적의 경우에는 부도를 내고 폐업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하며 여러 출판사에 손해를 전가하는 바람에 원성을 사며 그간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고 들었다. 가수 장기하가 그 창립자의 손자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밝힌 것도 그 영향은 아니었을까 싶다.


현재 영풍문고는 전국에 수십 개소의 분점을 운영하는 모양인데, 서점으로는 교보문고 다음으로 늘 2인자라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인터넷 서점의 공세 속에서도 인터파크며 리브로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점에서는 제법 선전한 편이 아닐까 싶다. 


여하간 모기업의 분란은 중대한 문제이고, 종로서적과 인터파크의 예를 보면 서점 하나 끝나는 것도 순식간이니, 향후 영풍문고에도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요즘 들어 나귀님 생각으로는 영풍문고보다 알라딘이 더 일찍 망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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