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티몬/위메프 사태로 세상이 또다시 시끌벅적할 때에도, 어차피 나귀님이야 저런 거 한 번도 가입해 본 적 없으니 상관없지 않겠나 생각했었는데, 얼마 후 그 자매사 가운데 하나인 인터파크커머스도 결국 영업이 중단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보니, 아예 관계가 없지는 않았던 것인가 싶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인 큐텐이란 회사는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 AK몰 등 군소 온라인 쇼핑몰을 계열사로 거느렸던 모양인데, 무리한 확장 때문인지 결국 거래처에 대금 정산을 해주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막판의 상품권 할인 판매 등 사기에 가까운 행각까지 벌인 모양이다.
나귀님은 당연히 서점/쇼핑몰 시절의 인터파크에 회원으로 가입했었고, 서점 운영이 사실상 중단된 후에도 가끔 번씩 쇼핑몰을 통해 종이나 토너 같은 사무용품을 구매했었다. 나중에는 공연과 여행 예약 사이트로도 유명해졌다기에 건실한 회사인 줄 알았는데, 영업 중단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뉴스에 따르면 원래의 인터파크는 티켓과 투어를 판매하는 인터파크트리플, 쇼핑과 도서를 판매하는 인터파크커머스, 이렇게 두 곳으로 쪼개져서 매각되었으며, 전자는 야놀자의 계열사이고 후자는 큐텐의 계열사라고 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맞은 곳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뿐이라고 한다.
나귀님이야 인터파크를 실제로 이용한 지도 오래 전이니 지금 와서 무슨 불이익을 당할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때 이용했던 서점이 우여곡절 끝에 몰락하게 된 것을 지켜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한때 잘 나갔던 기업도 결국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말았으니 허무하다고 할까.
한창때의 인터파크는 Yes24 다음으로 서점계에서 2등쯤 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외서 판매가가 서점마다 제법 차이 나는 경우도 있어서, 알라딘과 교보문고까지 나란히 놓고 비교해 가면서 그중 가장 저렴한 곳에 주문을 넣었던 기억도 난다. 또 인터파크는 비록 짧게나마 중고 서적도 판매했었다.
서점계에서 한때나마 큰소리를 쳤던 인터파크의 몰락을 지켜보니, 문득 출판계에서도 비슷하다고 말할 법한 사례가 한 가지 떠오른다.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이 경영난으로 2024년 4월호 이후 휴간 상태였다가, 최근 대기업 부영그룹에 매각되어 재간행을 준비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문학사상>은 이어령이 만든 잡지로 기억하는데, 특히 <희랍인 조르바>와 <백 년 동안의 고독> 같은 외국 소설을 번역 연재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알고 있다. 연재물 일부를 단행본으로 펴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같은 스테디셀러도 내놓았다.
<문학사상>이라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상문학상이다. 1977년 제1회 수상작이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인데, 칩거하던 이 작가를 끌어내려고 제정되었다는 비화도 전한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매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부분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알고 있다.
이어령이 이상 작품집과 연구서를 꾸준히 편찬해서 문학사상사에서 여러 권으로 간행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출판사가 이상문학상을 제정한 것도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수상 작가들에 대한 불공정 계약 논란이 터지면서, 문학상 자체의 권위에 상당한 흠집이 가고 말았다.
단행본 부문에서도 중복 출판 문제로 오랫동안 지적받았던 <상실의 시대>가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재간행된 민음사 번역본에 밀려나는 상황이고, 또 다른 스테디셀러 <총, 균, 쇠>도 저자의 후속작을 꾸준히 간행한 김영사에 판권이 넘어갔으니, 출판사의 경영난 심화에 영향을 주었을 법하다.
제아무리 반세기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사/출판사도 쇠락하고,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서점/쇼핑몰도 쇠락하는 판이니, 문득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전성기에도 양사 모두에 불만이 많았던 나귀님이니 이제 와서 딱히 응원할 마음은 없다만...
[*] 문학사상사를 인수한 부영그룹은 최근 직원 대상으로 출산 지원금 1억원씩을 내놓겠다는 등의 갖가지 파격적인 행보로 화제가 된 곳이다. 우정문고라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그 대표의 명의로 광복 직후와 한국 전쟁에 관한 두툼한 편저서도 내놓은 바 있으니 출판 분야에 아주 문외한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과거 제주도에 있었던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건축물을 굳이 철거하고 호텔을 지어 논란이 된 바 있었으니, 문화에 대한 식견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 최근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논란까지 감안하면, 부영그룹이 문학사상사를 인수한 것은 어딘가 살짝 불안해 보이는 조합 같기도 한데, 여하간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