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전당 대회 첫날 트럼프가 붕대를 감은 채 깜짝 등장해서 갈채를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그의 옆에 선 부통령 후보의 이름이 J. D. 밴스라고 한다. 뭔가 낯익은 이름이다 싶더니만, 바로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더니만, 이후 정계로 진출했던 모양이다.


다만 번역서 제목은 정확하지 않다. 원제의 Elegy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애가"(哀歌), 즉 슬픔의 노래이며 대개 애도하는 노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때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결국 힐빌리의 암울한 현실을 개탄하는, 또는 힐빌리에게 바치는 슬픔의 노래라고 할 만하다. 


<힐빌리의 노래>는 출간 직후에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사서 잠시 훑어보기만 했는데, 무엇보다도 근래에 나온 책 중에는 보기 드물게 교육의 가치를 역설하는 내용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제목 그대로 저자는 힐빌리, 즉 시골에 사는 가난한 백인 가정 출신인데, 그를 키운 할머니는 강인한 성격인 동시에 배움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결국 저자는 해병대와 주립 대학을 거쳐 그 동네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예일대 로스쿨까지 다니게 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특권층 출신이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졸업 후에는 예일대라는 간판과 인맥을 이용함으로써 예전 같았으면 상상조차 못했던 기회의 문들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고도 회고한다. 


그의 회고를 보면 미국의 백인 빈곤층의 암울함과 박탈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공화당의 말마따나 '복지 여왕'으로 요약되는 복지 제도의 부작용에 대한 증언도 있다. 생활 보호 대상자인 이웃이 매달 식품 구매 쿠폰을 받으면 저자의 할머니를 찾아와 '현금 깡'을 하고는 마약을 사기 위해 달려 나갔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례를 보며 자란 까닭인지 밴스는 극단적 보수주의와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받는 모양이다. 트럼프하고도 처음에는 대립 관계였다가 최근에야 지지 관계로 바뀌었다는데, 사실상 당선이 따 놓은 당상인 상황에서 향후 부통령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궁금해진다. 댄 퀘일처럼 놀림거리만 되고 끝날지, 아니면 더 큰 꿈을 꿀지.


그나저나 트럼프는 이번 총격 사건 이후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관측도 있는데, 단지 일시적인 반응일지 지속적인 영향일지 궁금하다. 일각에서는 총알이 간발의 차로 빗나간 것 때문에 지금의 트럼프가 '덤으로 사는 인생'을 얻었다고도 말하던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일종의 실존 체험인 셈이다.


제아무리 안하무인 트럼프라도 인간인 한에는 죽음 앞에서 움찔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니, 뒤늦게 혼자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오싹하지 않았을까. 물론 사건 발생으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니 지나친 기대일 수 있지만, 결국 또 트럼프인가 싶어 한숨이 앞서는 상황에선 조금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마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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