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자다 점심 때쯤 일어났더니만 트럼프 총격 사건으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선거 유세 중에 연단에 있던 그를 누군가 총으로 쏘았는데, 마침 천운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는 바람에 총알이 빗나가서 귀에만 스치고 아슬아슬 목숨을 건진 모양이다.


심지어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연단에서 내려가는 과정에서도 한손을 주먹 쥐고 번쩍 치켜들며 건재를 과시해서 청중을 열광시켰는데, 어떤 인위적 연출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사실상 이번 대선은 트럼프가 승기를 잡은 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트럼프를 좋아할 리 없는 나귀님으로서도 이쯤 되면 '저건 하늘이 돕는 사람인가' 하는 탄식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사업도 몇 번 말아먹었다가 운 좋게 재기했었고, 대통령도 한 번 거하게 말아먹었다가 재도전해서 당선이 눈앞이니 말이다.


특히 암살을 모면한 행동을 보면 조선 초에 태종이 태조의 암살 시도를 운 좋게 피했다는 야사가 생각난다. 골육상쟁 끝에 왕위를 차지한 아들이 미워서 죽이려고 활도 쏘고 철퇴도 들었지만 연이어 실패하자 '이건 천명이다!' 하며 승복했다던가.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에서 드골 대통령이 암살을 모면한 것도 생각난다. 행사장 연단에서 훈장 수여자에게 입을 맞추려 고개를 살짝 숙이는 바람에 총알이 빗나갔는데, 영국인 킬러가 프랑스인의 습관을 몰랐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연단 위의 대통령 암살 시도라면 물론 육영수 저격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박정희가 잽싸게 연단 뒤에 몸을 숨긴 것 때문에 지금도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번 트럼프의 반응 역시 총격임을 깨닫자마자 앉으면서 연단 뒤에 몸을 숨긴 것이었다.


누군가가 자기를 노리고 총을 쏘는 상황에서 몸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인데, 거꾸로 피해자를 겁쟁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박정희도 잘못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이걸 가지고 비난할 것은 아닌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육영수 저격 사건에 책임을 지고 경호실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종규가 그보다 몇 년 전에 <암살사 연구>라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예전에 헌책방에 있기에 나귀님도 사다 놓았는데, 이번 기회에 '암살' 책장에서 다시 꺼내봐야 되겠다.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도 떠오르는데, 고령에다 심각한 총상에도 의연한 태도를 보여 지지율이 급상승했었다. 조디 포스터를 연모한 까닭에 범행을 저질렀다던 범인 존 힝클리는 34년간 복역하고 2016년에 석방되어 지금은 자유의 몸이라 한다.


고령이며 치매 논란에 시달리는 바이든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번 암살 시도가 자신을 겨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을 법하다. 트럼프처럼 가벼운 부상으로 끝나고 말았다면, 동정표는 물론이고 의연함까지 드러내 건강 문제를 불식시켰을 테니까.


물론 일각에서는 트럼프 자체가 워낙 막장이니 이번 사건으로도 지지율이 크게 오를 것 같지는 않다고 예측하는 모양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바이든으로서는 '어찌하여 바이든을 낳으시고 트럼프를 낳으셨나이까!'라고 하늘을 원망하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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