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정부가 식품 제조 기계의 안전 장치 설치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번 SPC 공장에서 연이어 일어난 근로자 사망 사고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 너무 늦지 않았을까.


가장 어이없는 점은 자칫 사람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기계인데도 불구하고, 덮개가 열리면 기계가 자동 정지하거나, 신체가 감지되면 자동 정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도 이제껏 의무가 아니었다는 거다.


문득 작년 연말에 무슨 농산물 공장에서 작업용 로봇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 기억난다. 포장된 농산물 박스를 들어서 옮기는 로봇인데, 수리 중 오작동이 일어나서 작업 기사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로봇인가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았더니만, 긴 팔 끝에 달린 집게로 박스를 집어 들고 옮기는 기계였다. 네모난 박스를 집어 들기에만 특화된 디자인이어서 딱히 위협적인 외양까지는 아니었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박스를 들고 있었는데, 재가동한 순간 로봇이 그 박스를 작업물이라고 인식해서 다짜고짜 팔을 뻗어 집어 들었고,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수리 기사의 신체가 끼어서 참변을 당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카프카의 "유형지에서"를 비롯한 갖가지 소설 속 살인 기계를 떠올렸었는데, 실상은 최근 수년 사이 벌어진 여러 공장의 사망 사례와 유사하게 안전 장치 미비로 일어난 사고라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산업용 로봇이라면 이렇게 한 자리에 고정된 상태로 이리저리 팔을 움직여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운반이나 조립을 담당하는 모습이 맨 먼저 떠오르는데, 최근에는 자유롭게 오가는 산업용 로봇도 있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지난번 뉴스에 나온 쿠팡의 물류 센터에서는 사람 대신 크고 작은 화물 운반용 로봇들이 사방으로 쉴새없이 오가며 갖가지 물건을 가져와 박스에 넣고 포장하는 모습이 상당히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다만 이 과정에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며, 물품의 낱개 포장이 이미 이루어져야 하는 등의 자원 낭비며를 감안해 보면, 과연 사람 없이 로봇만 가동하는 공장이 더 저렴하고 유용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임금 상승이며 노사 분규 같은 인력 운용의 단점이 없다는 점에서 전자동화 공장이 좋은 대안일 수 있지만, 최근 철도청 전산망 먹통 사건처럼 기계화나 자동화도 완전무결하지는 못할 테니까.


심지어 로봇조차도 아직 만능까지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경북 구미에서 로봇 주무관을 채용해서 업무에 활용한 바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단에서 굴러 파손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건 또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식당이나 카페에서 음식을 운반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주행 로봇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문서 배달이나 청사 안내 같은 단순 업무만을 담당했다고 전한다.


로봇 기술 특화 도시에서 나온 국내 최초 로봇 공무원이라는 점도 화제였지만, 파손 원인을 두고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업무 중 순직인지 과로사인지, 공무원 생활이 그렇게 힘든지 등 농반진반의 의견이 많았다.


나귀님 눈에야 챗GPT 열풍처럼 한때의 유행, 또는 흥밋거리에 불과해 보이지만, 일각에서 산업용 로봇이나 공무원 로봇의 보편화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와서 다시 검토하고 실천해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공상과학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0년대에 내놓은 로봇 공학 3원칙이다. 그 내용은 "로봇은 인간은 해칠 수 없다", "로봇은 인간에 복종해야 한다",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로 요약된다. 


물론 고성능 AI를 장착한 인간형 로봇 이야기이니 여전히 공상의 차원이라 일축할 수도 있지만, 이 3원칙에 함의된 안전 의식이야말로 산업용 로봇이나 공무원 로봇이나 식품 제조 기계 모두에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로봇 공학 3원칙은 2006년에 이미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의 서비스 로봇 분야 국가 표준(KS)으로 세계 최초 채택되었다고 나온다. 늘 그랬듯 원칙이 없는 게 아니라 지키지 않은 게 문제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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