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까마귀가 행인을 습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문득 <새>라는 소설과 영화가 떠오르며 결국 조류 아포칼립스로 가는가 싶어 무슨 맥락인지 살펴보니, 가로수에 둥지를 지어 놓은 까마귀가 경계 본능이 발동한 나머지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을 적으로 인식한 까닭이라 한다.


당장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명품백 수수, 고가 기내식 등이 구체적인 원인으로 제시되는 듯하지만, 일단은 자연에서보다 도시에서 먹이 구하고 천적 피하기가 쉬우니 까마귀도 머리를 쓴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서 행인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만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니 답답하다.


일본 만화 <산적 다이어리>를 보면 수렵 면허를 가진 주인공이 농가의 의뢰를 받고 공기총으로 까마귀를 퇴치하러 나서는 일화가 나오는데, 이때에도 그 새는 워낙 똑똑하기 때문에 상당히 골치를 썩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영리해서 잘 적응한 놈이니 그 숫자며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닐까.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까마귀 숫자가 늘어나서 소음과 오물과 미관(?) 피해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꽤 오래 전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딱히 천적도 없는 상황이라면 당분간은 까마귀가 득세하는 세상이 제법 오래 갈 것 같다. 적어도 까마귀가 정력 증진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까마귀의 영리함에 관해서는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솔로몬 왕의 반지>에서 잘 설명했었다. 고기 조각을 손으로 집어서 먹이는 방식으로 까마귀를 길들였더니만, 한 번은 야외에서 소변을 보려고 지퍼를 내리고 자지를 꺼내자마자 까마귀가 '오, 고기!' 하고 날아와 쪼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던 일화도 나온다.


까마귀의 영리함이 대략 이 정도이니, 당분간 도심 한복판의 가로수 근처를 지나갈 때에는 혹시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아오는지 각별히 주의해야 하겠고, 혹시나 낌새가 이상하면 재빨리 피해야 하겠으며, 아울러 남성의 경우에는 설령 취중이라 하더라도 감히 노상방뇨를 시도해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될 것만 같다.



[*] 글을 쓰다 보니 베른트 하인리히의 까마귀 책이며, 마츠바라 하지메의 까마귀 책이며, 아나 토렌트의 까마귀 영화 노래며 등등이 연이어 생각나는데, 지금으로선 딱히 끼워 넣을 곳이 없어 다음 기회로 미룬다. Porque te 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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