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딥스로트"라는 암호명으로 지칭되던 정부 고위층의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그 정체를 놓고 구구한 추측이 있었지만, 제보를 받은 <워싱턴 포스트>에서 함구하며 추측만 무성했었다. 알다시피 이 언론사는 다른 매체의 외면 속에서도 이 스캔들을 끈질기게 파고들어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당시 FBI의 2인자였던 부국장 마크 펠트가 바로 그 제보자였던 것으로 밝혀졌고, <대통령의 부하 모두>라는 논픽션의 공저자인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가 "딥스로트"의 내력을 저술한 <시크릿맨>이란 저서를 간행했었는데, 나귀님은 최근에야 그 번역서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수년 전에 외서를 하나 사려다가 할인 쿠폰을 쓰려면 3만 원인지 5만 원인지를 딱 맞춰야 하기에 울며겨자먹기로 마침 대폭 할인 판매하던 그 원서를 사서 책장에 꽂아둔 바 있었다. 워터게이트 관련서를 꾸준히 사 모은 나귀님 말고는 딱히 볼 사람도 없을 터이니 번역서는 못 나오리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암호명 "딥스로트"는 린다 러블레이스가 주연한 동명의 저 유명한 포르노 영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밥 우드워드가 처음으로 이 조력자에 대해 언급했을 당시에 신문사 편집국의 누군가가 장난스레 제안한 이름이었다. "목구멍 깊숙이" 들어 있는 비밀을 누설하는 제보자를 가리키기에는 제법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극소수 내부자만 알 수 있는 고급 정보가 누설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한 정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용의자 색출에 나섰지만, 우드워드의 책에 따르면 마크 펠트는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어!"라며 자기가 먼저 앞장서서 설레발을 치며 내부 고발자 단속을 제안함으로써 혐의를 벗어버렸다고 한다.
연방 수사기관의 2인자가 굳이 내부 고발을 하게 된 배경에는 닉슨 정부의 폭주를 막아 보려는 의협심도 있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FBI 국장 임명을 코앞에 두고 낙마한 데에서 비롯된 불만도 없지 않았던 모양이니,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쫓아낸 사람의 행동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없지 않은 듯하다.
탄핵의 위협에 직면했던 대통령이라면 이후의 클린턴이나 트럼프도 있었지만, 닉슨은 실제로 가결을 앞두고 자포자기로 하야한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사례라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실정이다. 외교 면에서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도덕성이라는 면에서 치명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최근 번역된 필립 로스의 초기작 <우리 패거리>에서도 그를 연상시키는 정치인의 막장 행보를 꼬집는다 하니, 이래저래 닉슨이라면 여전히 최악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듯하다. 심지어 맨 정신이었던 때가 별로 없었던 환각제 애호가 P. K. 딕도 닉슨과 그 정부에 대해서는 줄곧 비판적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시크릿맨> 번역서를 알라딘 미리보기로 확인하니 군데군데 축역된 듯한 문장이 나타나는 것은 아쉽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파장된 수천 건의 심문 기록과 문서"(11쪽)라는 희한한 표현도 등장하던데, 아마도 "파생된"을 잘못 적은 듯하다. 아니면 매번 출판사들이 주장하듯이 나귀님 눈깔이 잘못된 거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