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밥>의 작가 쿠이 료코의 신간이 나왔다기에 뭔가 궁금해 살펴보니 제목부터 "낙서집"이다. 장편 연재 도중에 심심풀이로 그린 것들을 엮었다더니만, 샘플 페이지를 보니 그 주인공들을 활용한 낙서가 적지 않은 듯하다. 혹시 <던전밥>의 후일담에 속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기회가 되면 훑어봐야 하겠다.
그러고 보니 <엠마>의 작가 모리 카오루도 비슷한 그림들을 엮어가지고 "습유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적이 있었다. "습유"라고 하면 보통은 옛날 문집을 엮으면서 본편에서 빠진 글을 뒤늦게 덧붙인 일종의 부록이나 보유에 해당하는 것인데, 감히(?) 만화 제목에 활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눈길이 가기도 했다.
작가 스스로는 낙서라고 낮춰 말하지만, 남이 볼 때에는 충분히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생각해 보니 <마음의 소리>의 작가 조석도 최근 시즌 2로 돌아오면서 그간 블로그에 "막 그린" 그림 일기를 <마음의 소리(였던 것)>이란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으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낙서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22년에 갑자기 사망한 만화가 김정기의 사례가 떠오른다. 원래는 살짝 애매했던 네이버 웹툰 <TLT>로 처음 접한 작가였는데, 나중에 하얀 벽에 매직펜을 이용해서 끝도 없이 즉흥적인 그림을 그려 나가는 이벤트로 전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기에 뒤늦게 놀랐다.
김정기의 생전 작품 중에는 일본의 만화가 테라다 카츠야와 공저한 것도 있는 모양인데, 양쪽 모두 낙서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의외로 괜찮은 조합이었던 것도 같다. 테라다 카츠야의 낙서는 <전부>라는 제목으로 한데 엮은 것으로 갖고 있고, 그 외에도 작품집인 줄 알고 샀더니 "뽀샵" 지침서였던 책도 있다.
창작 만화로는 예전에 동네 헌책방에서 구입한 일본어판 <서유기전 대원왕>이 있고 (나중에 2권까지 번역되었다), 그 외에 클래식카에 대한 책이며 만화가로 먹고 사는 방법에 대한 대담집도 나왔지만 아쉽게도 그쪽은 존재감이 약했던 것 같다. "사전극야"라면 여전히 "낙서" 작가라고 기억하는 이유도 그래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