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한나 아렌트의 쪽글을 엮은 책이 새로 번역된 모양이어서, 새삼스레 관련 서적의 몇 가지 오역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저자의 번역서에 오역이 많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고, 심지어 국내에서는 그 사상까지도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라는 책까지 나온 바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그 책의 저자 박홍규 역시 적극적 오독과 이상한 오류를 심심찮게 범하는 인물이다 보니, 결국 '제 눈에 들보' 격이 되었다는 점이다!)


유독 다른 사상가보다 아렌트에 대해서 이런 오류가 많은 (또는 많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문장 자체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나도 아렌트의 글을 원문으로 완독한 경우까지는 없으니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평전에 따르면 영어로 쓴 글을 윤문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하니, 망명자 출신으로 제2언어로 저술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해 보게 된다.(비슷한 경우인 칼 포퍼의 영어 문장 역시 딱딱한 편이고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다는 평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렌트의 사상 자체가 그리 이해하기 쉬운 내용까지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 또는 실제로는 별 것 아닌 내용이 꿈보다 해몽 식으로 과대포장되어 회자된 경우일 수도 있다.(그를 사상가가 아니라 언론인으로 분류한 월터 카우프만이라면 적극 동의하겠지만, 문제는 그 역시 학자가 아니라 번역가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진짜" 언론인 수전 손탁에게 서평으로 "까인" 적도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카우프만-손탁의 '까임의 삼각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문제는 아렌트의 저서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평전이며 해설서, 심지어 만화에도 오역이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지명도에 비례하여 드넓은 지뢰밭이 펼쳐져 있는 셈인데, 자칭 전공자들이며 담당 편집자/출판사도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 발견한 지뢰밭은 아마존에서 만든 일종의 전자책 전기 시리즈 가운데 하나를 번역한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인데,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파격적인 오역이 들어 있어서 도리어 신선한 느낌마저 받았다.


예를 들어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프라이부르크로 떠날 때 마르바르에서 배웅하는 조카딸 에드나 브록(Edna Brocke)에게 한 말에 대한 인용문을 보자.(아렌트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자료인 엘리자베스 영브륄의 평전에는 가계도가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이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조카딸은 바로 아렌트의 이종사촌 남동생인 에른스트 퓌르스트(Ernest Fuerst)의 딸이다. 남편 미하엘 브로케(Michael Brocke)가 독일인이므로 ‘에드나 브로케’로 읽어야 할 것이다) 



>>> 그래서 내[브로케]가 그녀[아렌트]에게 꼭 그래야 되느냐고 물었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요즘도 나는 작은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세상에는 남자보다 강한 것들이 있지.’ 그게 내가 그녀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이에요. (196-7쪽) <<<



그런데 ‘작은 개구리’ 운운 하는 부분이 이상해서 구글링해 보니, 이건 사실 아렌트가 조카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아마 최근 김혜자가 선전하는 독일산 세제의 이름이기도 한 "프로쉬"(Frosch), 즉 "개구리"에서 유래한 단어일 것이다). 구글북스에 올라온 원문은 다음과 같다. "And she told me -- I still hear it -- 'Fröschlein (little frog), there are things stronger than men.' those were the last words I heard from her." 결국 원문을 가지고 다시 제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뜻이다. 



>>> 그래서 꼭 가셔야 되겠느냐고 제가 고모에게 물었죠. 그러자 고모께서 대답하신 게 있는데, 저는 지금도 그 목소리가 귀에 선해요. ‘꼬마 개구리야,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단다.’ 제가 고모한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바로 그거였어요.” <<<



결국 정확한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앞뒤 문장을 뒤섞어서 황당무계한 오역을 범한 셈이다. 어째서 이런 오역이 일어났을까? 짐작컨대 전자책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맞줄표(--) 같은 특수 기호가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I still hear it -- 'Fröschlein (little frog)"을 "I still hear it Fröschlein (little frog)"로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을까.(하지만 이것 자체도 어색한 문장이니 원문을 살펴봐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면 조만간 키제 대위도 한 명 나올 만하겠다). 


여하간 왜 갑자기 뜬금없는 개구리 타령인지 의문을 품고 원문을 대조하기만 했어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던 오류이니, 결국 번역자나 편집자의 불성실을 탓할 수밖에 없겠다. 과연 자기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걸까? 다만 한 가지 감안할 부분도 있기는 하다. 뭔가 하면, 이 대목에서 아렌트의 발언 가운데 나머지인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단다" 역시 "뜰 앞의 잣나무"처럼 뭔가 좀 뜬금없어 보이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혹시 독일어 원문이 있나 구글링해 보니 Es gibt Dinge, die Stärker sind, als der Mensch 라고 나온다. 독일어 Mensch 는 영어의 Man/men 처럼 "남자; 인간; 인류" 모두를 의미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남자"보다는 "인간"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논란의 인물인 하이데거를 굳이 찾아가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조카에게 "사람은 미워해도 사상은 미워할 수 없다"고 반박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해석이다..


하이데거에 대한 아렌트의 애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살아가면서도 한 번은 필적 감정 점쟁이에게 하이데거의 친필을 가져가서 감정을 받아 보았을 정도였으니, 그를 향한 마음은 일반적인 차원의 존경이나 애정보다는 훨씬 더 정도가 깊었다고 봐야 하지 않았을까. 아렌트의 생애를 무려 만화로 각색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에도 이 장면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심지어 여기에도 오역이 있다는 점이다!


즉 점쟁이가 하이데거의 필적을 살펴보고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남긴 사본이 모두 동일했다면, 이 남자가 헌신하는 대상은 계속 변해요"(203쪽)라고 말하는 대목인데, 영브륄의 평전에 나온 내용과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맞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와 필적이 같은 이 남자가 헌신하는 대상은 계속 변해요." 심지어 아렌트의 저서를 여럿 옮긴 전문가가 감수를 했다는데도 오역이 나왔으니 한심하다.(오히려 오역투성이 영브륄의 평전에서도 이 대목만큼은 정확히 옮겼다!)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은 편집도 문제다. 구글북스 원문에는 그냥 한 문단으로 묶인 문장을 한 줄씩 일일이 떼어놓는 식으로 쪽수를 늘렸고, 본문의 인용문마다 붙어 있는 후주를 아예 빼 버렸다. 전기라면 인용 출처 표시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이것이야말로 논문 표절 시비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임을 감안하자면, 출판사가 그냥 작정하고 미친 짓을 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인용문에서 원문에는 없지만 저자가 내용 이해를 위해 첨언한 부분까지도 구분 없이 뒤섞어 버렸다. 


예를 들어 “그녀가 처음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을 직접 확인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196쪽)라는 인용문은 원래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을 ― 저자] 직접 확인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즉 “백척간두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을”이라는 부분은 저자가 부연한 부분이므로, (아마도 브로케의 발언인 듯한 ) 그 인용문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그 발언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셈일 것이다. 


"시대의 아이콘 평전" 시리즈로 간행된 역사비평사의 아마존 전자책 시리즈로는 폴 콜린스의 에드거 앨런 포 전기며, 제이 파리니의 예수 전기도 있어서 흥미가 동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 전기와 똑같은 출판사에 똑같은 번역자의 산물임을 감안하면 아예 손도 대지 않는 편이 상책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의 불성실하고 무신경한 출판 때문에라도 오역의 지뢰밭으로서 한나 아렌트의 악명은 당분간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 "욥의 잿더미"(Job's Dungheap)를 "직업의 거름"으로 잘못 옮긴 것을 비롯해서 갖가지 오역이 빈발한 홍원표의 영브륄 전기 번역본은 결국 절판되어 수명을 다하나 싶더니만, 엉뚱하게도 출판사를 옮겨서 재간행되었다. 신판의 실물을 본 적이 없으니 과연 어디까지 수정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제대로 옮기지 못한 책이니 고쳐 쓰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법하다. 홍원표는 비전문가의 번역이라서 역시나 오역이 빈발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가져다가 (비록 원래 번역자의 동의를 거치기는 했다지만) 자기 이름을 올려 번역서로 간행했는데, 초판(문학과지성사)의 오역 가운데 재판(인간사랑)과 3판(한길사)까지 꾸준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이런 불성실하고 무신경한 자칭 "전문가"의 행동 역시 한나 아렌트의 악명을 지속시키는 데에 일조한다고 봐야 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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