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모서리에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 광고가 있어서 혹시 내가 아는 그 소설인가 싶어 눌러보니, 올 초에 나온 셸리 리드라는 작가의 신간이었다. 원제를 보니 직역은 아니기에, 같은 제목의 더 유명한 소설(보다 더 유명한 영화)도 있는데 왜 굳이 이 제목으로 정했는지 궁금했는데, 검색해 보니 파울로 코엘료의 산문집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국내 저자들의 시집이며 산문집까지, 같은 제목을 쓴 책이 수두룩하다.
셸리 리드의 소설 원제는 Go As a River, 파울로 코엘료의 산문집 원제는 (영역본 제목인 듯한데) Like the Flowing River, 노먼 매클린의 소설 원제는 A River Runs Through It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은 코엘료의 산문집에 가장 잘 어울릴 듯하고, 나머지 둘은 "강물"보다는 "강"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시기로 따지면 매클린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제목이 먼저지만.
그나저나 구글링해 보니 리드의 소설은 2023년 초에 간행된 이래 미국에서도 반응이 비교적 잔잔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알라딘 광고에서는 호평 일색에 <앵무새 죽이기>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건 또 뭐임?)을 이을 차세대 고전이라고까지 광고한다. 심지어 "<이동진의 파이아키아>가 선정한 2024년 유일한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2024년이 이제 겨우 4월이라서 벚꽃이 만발한 시점에서는 상당히 낯간지러운 선전이다.
광고에서 또 하나 지적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이런 훌륭한 책에 굶주려 왔습니다"라는 호평이다. "미국 출판사 더블데이가 저자에게 보낸 편지"라고 출처를 밝혔는데, 사실은 영국/캐나다/호주 판권을 보유한 "영국 더블데이"(Doubleday UK)에서 했음직한 발언으로 보인다.(참고로 더블데이 미국과 영국은 이미 오래 전에 갈라선 회사다). 미국 초판은 스피겔앤드그라우(Spiegel & Grau)라는 독립 출판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 미리보기는 해 봐야겠다 싶어서 Yes24에 가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알라딘은 저화질이다!) 고화질로 살펴보았더니 처음부터 잘못된 문장이 나온다. 12쪽 프롤로그의 네 번째 문장 "보는 눈 하나 없는 곳에서 여자들처럼 낭창낭창 유연하게 춤추는 여자들처럼 흔들리는 물풀"이다. 원문 대조해 보니 "여자들처럼"이라는 구절은 뒤에 한 번만 들어가야 한다. 이쯤 되자 굳이 읽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포기했다.
앞서 월터 스콧의 이야기도 했었지만, 아무리 한 시대를 휩쓴 작품이며 작가라도 향후의 평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스콧의 생전에도 수많은 "짝퉁" 스콧들이 "모작" 소설들을 들고 나왔지만, 오늘날까지도 기억되는 사람은 역시나 "웨이벌리의 저자" 한 명뿐이다. 매클린은 영화 덕분에 좀 더 오래 회자되는 모양이지만, 나머지 두 생존 작가를 하퍼 리에 비견하는 일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하지 않을까.
나귀님이야 세 권의 책 가운데 당연히 매클린의 것만 읽어보았고, 그나마도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읽을 마음이 났던 것이었다. 정확히 기억도 잘 안 나는 줄거리보다는 소소한 묘사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왜, 읽다 보면 굵은 강모래 위로 흘러가는 민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까지도 연상될 정도였다. 함께 수록된 또 다른 중편은 뭔가 좀 애매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꺼내 보고 내놓든지 해야겠다.
결론만 놓고 보면, 아마 평생 읽을 기회가 없을 법한 소설 한 편 때문에 멀쩡히 갖고 있던 다른 소설 한 편을 내버리게 생겼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나저나 리드의 소설 표지는 지난번에 알라딘에서 봤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 표지와 비슷하기에 검색해 보니, 그건 이미 한정판이어서 품절된 모양이다. <문장의 온도>라는 책도 비슷한 표지였던 것 같은데, 이것도 어떤 유행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