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알라딘 부산센텀점에 누가 군사 분야 책을 여러 권 처분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몇 권 줍줍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중 한 권인 <세계 전쟁사 사전>을 예전에 서울도서전에서 들춰보았던 기억이 났다. 확인차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4년에 써서 저장한 일기 파일을 오랜만에 열어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보았다.
일기라고 해서 매일 저녁 꼬박꼬박 기록한 것은 아니고, 헌책을 주로 사다 보니 가끔은 중복 구입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혼동을 방지하고자 최소한의 구입 일지를 작성하다 보니 어찌어찌 이날 이때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중간에 일주일씩 구멍이 숭숭 나버린 불완전한 기록이 되고 말았지만, 10년 전에만 해도 거의 매일같이 헌책을 구입했던 까닭에 내용이 많았다.
2014년에는 무엇보다도 세월호 사건이 있었는데, 막상 그 당일에는 나도 정신이 없었던 까닭인지 아무런 기록을 하지 않았고, 며칠 뒤에야 상황이 일파만파로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며 답답한 심정만 적어놓았을 뿐이었다. 그 외에도 신해철과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고, 이병헌의 "성공적" 스캔들이 있었으며, 판교에서 포미닛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추락사하는 일도 있었다.
책과 관련해서는 봄에 서울도서전에 다녀오고 가을에 와우북에 다녀왔던 기록이 있고, 11월 20일에는 도서정가제 강화 조치 전날이라서 알라딘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서점이 접속 마비되는 사태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와 관련해서는 그해 벌어진 <이방인> 번역 관련 논쟁을 지켜보면서 적은 소감도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나중에 한 마디 슬그머니 거들기도 했던 것 같다.
사생활 면에서의 이런저런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10년 뒤인 현재까지도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에 이래저래 기분이 착잡했다. 마침 노인네들과 또다시 으르렁뚝딱을 하고 나서 몇 주째 안부 전화도 피차 안 하고 있는데, 그 원인 노릇을 했던 사건이 딱 10년 전에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나니, 그게 지금까지 지속되나 싶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10년 전의 나를 졸지에 대면하고 보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 동안 나는 별로 변한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고민거리는 10년 후인 지금도 고민거리이고, 10년 전의 상한 감정도 10년 후인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잘한 돈 걱정이며 일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습기도 하고 일면 슬프기도 하다.
심지어 10년 전부터 책 좀 덜 사자, 얼른 읽고 버리자 하는 이야기를 수시로 적어 놓았으면서 실제로는 10년 뒤인 지금까지도 읽은 책보다는 사다가 쌓아 놓은 책이 여전히 더 많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아마 앞으로 10년 뒤에도 나귀님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내가 서울도서전에서 봤다고 생각한 책은 <세계 전쟁사 사전>이 아니라 <세계 군사사 사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