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뭘 또 하나 잘못 눌렀더니만 <루소의 식물학 강의> 북펀드 광고로 연결된다. 내용 설명을 보니 "루소가 1771년 8월 22일부터 1773년 4월 11일 사이에 당시 가깝게 지내던 들레세르 부인에게 보낸 여덟 통의 편지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거, 예전에 한 번 나왔던 책이 아닌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15년 전쯤에 <루소의 식물 사랑>이라는 비스무리한 제목의 책이 하나 나왔었다. 결국 같은 책을 재간행한 것인가 하고 번역자를 살펴보았더니 다른 사람이다.
알라딘에서 목차를 비교해 보니 <식물 사랑>은 일곱 챕터인데, <식물학 강의>는 여덟 챕터였다. 그렇다면 <식물 사랑>에서는 편지 여덟 통 가운데 하나를 빼버리기라도 했던 건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결국 책더미를 뒤져서 <식물 사랑>을 꺼냈다.
그런데 자세히 따져 보니, 실제 내용은 <식물 사랑>이 <식물학 강의>의 2배 이상에 달했다. 왜냐하면 <식물학 강의>는 <식물 사랑>의 여덟 챕터 가운데 첫 번째(제1부)인 "들르세르 부인에게 보낸 편지들"에다가 삽화를 넣어 만든 책이라기 때문이다.
애초에 편역서인 <식물 사랑>에는 저자 사후 단행본으로도 나왔던 <식물학 강의> 외에도 루소의 편지 가운데 식물학 관련 내용이며 단상이 추가되어 있으므로, <식물학 강의>를 보고 나면 절판본인 <식물 사랑>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을 법하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동네 공원에 가서 초록초록한 풀과 나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많아진다. 도시의 주택가인 이 동네에도 예전에는 집집마다 마당에 과실수나 꽃나무를 길렀는데 재건축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며칠 전에는 유튜브에서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에 나온 것처럼 도쿄 교외의 골목 풍경을 찍은 동영상을 발견해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는데,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만한 통로 양옆으로도 나무며 풀이 다채롭게 자라나는 모습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이럴 때마다 문득 예전에 딱 한 번 지나갔던 몇몇 길에서 결국 들어가 보지 않았던 골목 몇 군데가 생각난다. 단조로운 건물들 사이로 골목 저편에 나무인지 풀숲인지 뭔가 초록초록한 것이 있었는데, 뭔가 궁금해 하면서도 결국 들어가 보진 않았다.
마치 웰스의 "초록색 문"의 주인공처럼 매번 어떤 업무, 약속, 목적지가 있어서 걸음을 재촉하는 도중에 우연히 마주치고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결국 외면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그곳에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남은 것이다.
어쩌면 옛 동네의 상징인 커다란 나무일 수도 있고, 작은 공원이나 놀이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능력자가 담장 밑에 줄줄이 내놓아 기르는 싱싱한 화초가 가득한 화분일 수도 있다. 뜻밖의 발견이라 놀랐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그 한 차례 일탈로 큰 변화가 생기진 않았겠지만 (십중팔구 '아, 이거였군' 하고 그냥 돌아서서 아까 가던 길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최근에는 과거에 내가 가지 않았던 인생의 여러 갈림길을 떠올리다 보니 그 골목들도 새삼 생각난 듯하다.
물론 옥상 텃밭이나 잘 가꾸어서 이것 저것 심어 보라는 엄마 말 따위는 귓등으로 들으면서 애먼 나무와 풀숲을 찾아다니는 모순투성이 나귀님이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조차도 <식물 사랑>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루소의 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건, 보이는 것이건, 식물의 외양을 아름답게 하고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공연히 수고를 한 것이 아니다. 지구의 얼굴을 덮고 있는 이 뛰어난 양탄자가 어떤 실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가져볼 만한 가치가 있는 호기심이다."(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