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의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클릭해 보니, 책소개 설명 가운데 "꼭 필요한 주석만을 엄선하여 소설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석은 면주로, 작품의 배경 이해에 도움을 주는 주석은 미주로 처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완독률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런데 "면주"(面註)는 "주석"이 아니라 그 밑의 "쪽수 나오는 부분"을 가리킨다고 알고 있어서 살짝 의아해졌다.
새로 나온 <율리시스>를 예로 들어 보자면, 9쪽에서 "면주"는 "1장 텔레마코스 9"를 가리키고, 그 위에 나온 라틴어 설명 주석은 "각주"라고 해야 맞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온 정의처럼, "면주"란 "책에서 각 면의 위나 아래 또는 본문 바깥쪽에 넣는 편ㆍ절ㆍ장의 제목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위의 책소개 설명도 "면주"와 "미주"로 처리한 게 아니라, "각주"와 "미주"로 처리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출판계의 잘못된 일본식 용어로 지적되어 온 것 가운데 하나가 "하시라"인데, 원래는 "기둥"(柱)을 가리키는 일본어에서 비롯되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면주"(面註)를 가리키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 굳이 이 책에 와서부터 "면주"를 "각주"의 동의어로 사용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만 불러오는 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미 국어사전에 "면주"의 정의가 전혀 다르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한자에 생소한 세대에서 나온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즉 "뒤쪽[尾]에 있는 주석[註]"이 "미주"(尾註)이니 "페이지[面]에 있는 주석[註]"은 "면주"(面註)라고 나름 논리적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면주"(面註)가 같은 자리에 나오는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는 사실은 미처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출판사에서 찾아와 우기듯이 나귀님이 또 오해한 거든가...
[*] <율리시스>의 김종건 번역본은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을 당시부터 오역 논란이 있었고, 범우사를 거쳐 생각의나무에서 대대적인 개역본(3판)이 나왔을 때에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현재는 4판쯤 나온 모양인데, 자칭 조이스 연구의 대가가 내놓은 다른 번역본(예를 들어 조이스의 아내 전기인 <노라>)을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수준의 오역이 난무하는 것으로 미루어, 김종건의 기존 번역 전부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남을 시켜서 한 것에 본인의 이름만 올렸다고 해도 문제고, 본인이 직접 했는데 오역이 난무했다면 더 문제가 아닌가!) 여하간 <율리시스> 번역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익히 인정하는 바이지만, 무려 사반세기 가까이 오역본만 붙들고 있었던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번역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물론 위의 "면주/각주" 이야기처럼 또 뭔가 이상한 데가 있다면 열심히 물고 늘어질 나귀님이긴 하다만...
[추가] "면주" 이야기를 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하는 한자는 面柱였던 반면, 현재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面註로 나오기 때문에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꺼내기 귀찮아서 아까 글 쓸 때에는 참고하지 않았던 몇 가지 자료를 뒤늦게야 꺼내 보니,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에도 面柱라고 "기둥 주" 자를 써 놓았는데, "하시라"라는 일본식 표기를 감안해 보면 이쪽이 오히려 정확해 보인다. 내가 가진 출판 편집 관련 자료 중에 가장 두껍고 오래 된 매뉴얼인 <도서편집총람>(이종운 지음, 범우사, 1991)에도 역시나 面柱라고 나왔다. 구글링해 보니 面柱는 중국이나 일본의 용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일본 출판계에서는 해당 부분을 柱라고 지칭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원래는 面柱가 정확한 한자인데 나중에 가서 面註로 잘못 적혔고, 급기야 그게 올바른 표기인 것처럼 와전되어 널리 퍼졌으며, 급기야 각주나 후주 같은 註의 일종으로 오인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해 보인다. 당장 영어로도 면주를 running head, 각주/후주를 footnote/endnote로 지칭하는 것만 봐도 柱와 註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지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양식/일본식 근대 서적 조판이므로, 그 체제는 서양에서 따왔다고 간주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오인/와전은 일면 인터넷 특유의 도깨비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인데, 일단 인터넷에 한 번 떴다 하면 오타나 오류가 섞인 잘못된 정보라도 삽시간에 퍼지는 것은 물론이고, A가 B를 무작정 베껴 쓰고 나면 다시 B가 A를 그 출전으로 명시하는 등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정확한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고한 네이버 국어사전만 해도 기껏해야 10여 년, 길어야 20년밖에는 되지 않은 물건일 터이고, 텍스트 입력 과정에서 한자 한두 개가 엉뚱하게 바뀌어 있는 정도의 오류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여하간 面註이건 面柱이건 간에, 이미 그 이름으로 지칭되는 대상이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누가 봐도 "각주"인 것을 굳이 "면주"라고 쓴 것이 잘못이기는 매한가지이긴 하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