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샵을 뒤적뒤적 하다 보니 그 사이에 의외로 체스터튼 책이 여럿 번역되었기에 뭐가 있나 클릭클릭 하다가 북스피어에서 나온 번역서를 아직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그 시리즈에서도 엘러리 퀸 같은 것은 영 번역이 엉망이다). 마침 알라딘에 중고가 있어서 다른 책 구입할 때 슬그머니 섞어서 구입해 펼쳐 보니, 맨 앞에 "성공과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책의 오류"와 "부의 숭배"라는 에세이가 등장한다. 전자는 "모자 쫓기"와 함께 예전 을유 세계문학전집의 <영미수필선>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후자는 이번에 처음 읽는 듯하다.


두 가지 에세이 모두 "성공론"이나 "부자 되는 법" 같은 자기계발 서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성공이라는 것 자체가 기준부터 모호하고,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식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며, 결국 부와 탐욕을 신비화하며 사람을 속물로 만든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이런 표현을 선호한다면, 성공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이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이 무엇일 뿐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백만장자는 백만장자이기에 성공했고, 당나귀는 당나귀이기에 성공했다.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은 살아 있기에 성공했다."(22쪽)


물론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체스터튼의 일갈도 지금 와서 고스란히 적용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부와 성공을 노골적으로 바라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사라진 가치를 환기시킨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백 년 전에는 근면한 견습공에 대한 이상이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검소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하면 모두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배웠다. 이는 거짓이었지만 고결했고, 일말의 도덕적인 진실도 품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절제는 가난한 이가 부유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가 자신을 존중하게 되는 데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30-31쪽)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를 터이니, 어떤 한두 가지 조언을 만사에 적용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체스터튼의 비유를 활용하자면,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가 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 해야 '힘껏 달리고, 높이 솟구치라'는 정도의 일반론에 그치지 않을까. 그런데도 여기서 더 구체적인 조언을 바라며 땅 짚고 헤엄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심심찮게 보도되는 뉴스에서처럼 각종 투자 사기에 휘말려서 거액을 날리게 되는 터일 것이고 말이다. 체스터튼은 성공에 대한 조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지만, 어쩌면 조언 자체는 유효하지만 실천이 어렵다고 봐야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체스터튼의 시대와 달리 최근에는 실제로 수십억과 수백억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각종 "성공론"과 "부자 되는 법"을 저술하고 있는 모양인데, (벌써부터 수십 개씩 붙은 서평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찐" 부자들의 책도 딱히 새롭거나 특별한 조언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은 아이러니라 하겠다. 물론 진짜 아이러니는 이런 평범한(?) 부자들이 책이며 강연으로 각종 비법을 공개하느라 바쁜 사이, 자수성가로 아예 재벌이 된 누군가는 정부 당국 조사에 불려다니느라 바쁘고, 또 누군가는 무슨 이유에선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는 점이겠지만 말이다.






[*] 체스터튼의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하와이대저택"이라는 광고 문구가 뜨기에 혹시 최근 화재가 벌어진 그 섬동네의 재건이나 건축에 관한 내용인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의외로 무슨 부자 출신 성공 강사의 책이라고 해서 살짝 김이 빠졌다.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세이노의 가르침>도 신문 연재분을 살펴보니 조언 자체는 어딘가 옛 어른들 말씀과 별 차이 없는 것 같고, 뭐, 이 사람은 그렇게 살았나보다 정도의 느낌이라서 몇 개 살펴보다 말았는데, 그걸 금과옥조로 여기고 출간 전에 제본까지 해서 돌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예전에도 미네르바인가 뭔가가 있었지). 똑같은 말이라도 돈 없는 어른이 하면 꼰대의 라떼질이고 돈 있는 어른이 하면 불변의 진리인가 싶기도 했는데, 사실 누군가가 돈벌이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특질에서 비롯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즉 한두 마디, 또는 한두 권 설명으로 전수될 만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했는데 왜 누구는 1등 하고 누구는 꼴등 하느냐는 거다). 문득 예전에 홍대 앞 헌책방에서 누군가가 팔아치운 자기계발서 수백 권을 본 기억이 난다. 재테크를 하겠다면서 성공이며 부에 관한 자기계발서만 잔뜩 사서 읽다가 중도작파하고 팔아치웠다는 이야기를 주인으로부터 들은 다른 손님이 (아마도 항상 과학책만 찾아 다닌다고 해서 헌책방 주인들 사이에서 "과학 아저씨"로 통하던 중년 남성이 아니었나 싶은데) 혀를 차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결국 문자 그대로 '성공에 투자' 한 격이 아닐지" 하기에 그것도 제법 그럴듯한 평가로구나 싶었다. 어쩌면 지금 와서 온갖 "성공론"과 "부의 법칙"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은 아닐까 싶기는 한데... 막상 쓰고 보니 지난 달 카드값도 빵꾸난 나귀님이 할 말은 아닌 것도 같고 좀 그렇다.(클렘페러 박스 때문이야...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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