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바깥양반이 팔자에도 없었던 유럽 출장을 가게 되었다면서 이것저것 챙기던 물건 중에 빈대 약이 있었다. 무슨 트란실바니아 같은 심심산골로 가는 것도 아닌데 그런 듣도보도 못한 살충제를 챙기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았더니,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나온 공지사항에 빈대 관련 주의사항이 있더라고 하기에 그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빈대라면 우리나라에서도 6/25 전후로나 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사실상 멸종했다고 간주되었고, 나도 실물을 못 본 것은 물론이고 우리 엄마도 실물을 못 보았다고 하던데 (다만 외할머니가 깔끔 떠는 성격이셔서 그랬을 수는 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남의 집 가서 벽에 붙은 빈대 잡은 핏자국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하시니까)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전국 각지에서 재발견되었다니 이것도 희한한 일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빈대의 재등장과 재창궐 자체는 그렇게 생소한 일도 아니다. 이미 2000년대에 미국 여러 대도시의 숙박 시설을 중심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 난리법석이 났었기 때문이다.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책을 보면, 저자도 해외 여행을 갔다 와서 빈대에 물리는 지독한 경험을 한 이후 조사를 통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빈대의 재등장과 재창궐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 고약한 해충의 습성과 해악과 연구를 총정리하게 되었다고 하니까. 지금 돌아보자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까닭에 결국 가장 수요가 폭발할 법한 시기에 절판본이 되어 버린 이 책을 다서 꺼내 보니,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뒤적일 수 있었던 작년 이맘때와 달리 새삼 등이 근질근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