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과 홉스" 박스 세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추석 연휴에 "하인라인 단편 전집" 박스 세트가 알라딘 중고샵에 네 질이나 올라와 있기에 그중 한 질을 구매한 이야기도 살짝 꺼내야 할 것 같다. 역시나 할인율이 높지 않아서 살짝 고민했지만, 어차피 사게 될 것이니 조금 비싸더라도 그냥 지금 눈 딱 감고 사버리고 치우자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지난번 시공사의 선집이 의외로 금세 절판된 것 때문에 뒤늦게 아쉬웠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고... [*]


그나저나 하인라인 단편 전집은 막상 받아 보니 비닐도 뜯지 않은 완전 새것이어서 횡재한 셈이 되었지만 (나머지 세 질 구입한 사람 소리 질러!) 앤 카슨이 말한 사슴의 음문도 아닌 주제에 너무 꽉 끼는 박스에서 책을 꺼내 보니 한 가지 의아한 대목이 있었다. 박스 세트 정가는 20만 원으로 나온 반면 각 권은 2만 4천 8백 원이어서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낱권으로 사면 20%나 더 비싼 셈인 건가 싶다.


최근에는 북펀드다 뭐다 해서 출간 전에 예약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그런저런 사정으로 간행되는 과정에서 낱권과 세트의 가격 차가 발생한 것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드커버를 씌워놓아서 두꺼워 보일 뿐 실제로는 300페이지도 안 되는 책들도 일괄적으로 2만 4천 8백 원이니, 보기에 따라서는 과도한 가격이라고 볼멘 소리를 낼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흔히 말하는 장르 독자 등쳐먹기의 또 다른 사례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아작 출판사의 간행물이니 살짝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이놈의 출판사는 원래도 번역/편집이 한심한 수준이었던 데다 (코니 월리스 단편집에서는 디킨스/디킨슨을 혼동하기도 했고, 할란 엘리슨 단편집에서는 "리츠 호텔만한 다이아몬드"를 "리츠 크래커만한 다이아몬드"로 오역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무식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나중에 모 작가와의 분쟁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보아 돈도 잘 안 주는 모양이니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하인라인 단편 전집도 번역/편집은 제대로 되었을까 살짝 미심쩍었는데, 예상대로 그중 제7권을 꺼내서 단편 하나를 읽다 보니 몇 가지 오역/오타가 눈에 띈다. 시오도어 스터전도 자기 단편 속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언급했던 "금붕어 어항"이라는 작품인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레이브스 박사가 통에 연결된 줄을 끊었다. 두 사람은 보기 흉하고 다루기 힘든 그 통을 도르래를 연결하려 낑낑댔다"(67쪽)


그런데 앞뒤 문맥을 보면 보트에 고정한 통 모양의 관측 장비를 손으로 들어서 바다에 던져 넣으려는 대목이므로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맞다. "그레이브스 박사가 통을 고정한 줄을 끊었다. 두 사람은 보기 흉하고 다루기 힘든 그 통을 들어올리느라 애를 먹었다." 위에서 "도르래를 연결하려"라고 오역한 부분의 원문은 get a purchase on, 즉 그냥 "(손으로) 붙들다"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보트 담장 장교"(65쪽)라는 희한한 직책도 나온다.


하인라인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아동성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듯한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작이 의외로 용감하다고, 또는 무모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시공사의 걸작선 가운데 하나인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는 역자 후기에서 이 문제를 직격하고 있던데, 그렇게까지 내용이 불편했다면 왜 굳이 그런 작품을 골라서 번역/간행했느냐는 반문도 가능해 보인다.(당연히 그게 내용의 전부가 아니니까 그랬겠지!)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에서도 하인라인의 작품 속 여성 비하라든지, 아동 성애라든지, 근친상간이라든지 하는 쟁점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독자가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오히려 단점 때문에 간행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드며 히틀러의 책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판에 지금 와서 하인라인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그렇게 되면 오이디푸스 희곡은 뭐고, 구약성서는 또 뭔가?)


사람들의 사고와 풍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니, 페미니즘이건 맑시즘이건 그루초맑시즘이건 간에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일시적 통념을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양 휘둘러서 만사를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프로불편러들이야말로 자기 시대의 지배적 사고방식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솔직히 박정희 시대의 반공주의자들과도 사실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지...?




[*] 비슷한 사례로 베틀북의 로알드 달 걸작선이 있는데, 절판 직후에 다섯 권 가운데 세 권인가는 예전 강/정영목 번역본의 재간행으로 또다시 나온 반면, 한 권은 아예 다른 번역본이 나왔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처음에는 아동서와 어른서(?) 모두를 내는 출판사이다 보니, 이 선집에 수록된 "마누라 바꿔먹기"(?) 단편 같은 경우에는 애들이 보기에 좀 뭐해서 금방 절판시켰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조만간 나온다는 일부 작품의 영화화 때문에 다시 한 번 판권 확보 경쟁이 벌어진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 진실은 저 너머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베틀북의 걸작선이 작품 수는 가장 많았고, 강/정영목 번역본의 초판본이나 재간행본 모두에는 없는 것도 있었다. 뭐가 뭔지 궁금해서 네 가지 판본의 수록 작품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가 있긴 한데, 언제 한 번 올리려다 안 올리고 이렇게 구구절절 말로만 떠들고 있다. 예전에 과레스끼의 신부님/읍장님 단편 시리즈도 비슷한 목록을 만들었는데 컴퓨터가 맛이 가는 바람에 자료를 날려버린 기억도 난다. 민서/서교 번역본을 대조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는 귀찮아서 다시 하게 될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 기회가 되면 올려 보든가 아니면 말든가. 누가 딱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여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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