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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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오래도록 기다렸습니다. , 팬입니다. 김애란, 최은영 작가의 이름과 함께 늘 염두에 두고 있죠. 이번 소설집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늘 길 위의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그들은 서로 언어가 달라 소통할 수 없는 곳에 놓인 사람들이죠. 언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마음을 열고 손을 내미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마냥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히고, 실패하며, 오해되고, 깨어집니다.

 

시간의 궤적에서 그 관계의 시작과 끝을 잘 보여줍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용기 내어 떠난 프랑스 파리에서 한 언니가 말을 걸어옵니다. 비가 흩뿌리는 파리에서 샹송을 배경으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감동을 잘 표현해냅니다. 불안과 낯섦으로 가득한 곳에서 겨우 찾아낸 온기를 말이죠. 하지만 종종 불안하게 지속되던 관계의 끈은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지듯 사라집니다.

 

여름의 빌라에서는 독일인 부부와 한국인 화자의 관계가 이어집니다. 역시 낯선 독일에서입니다. 독일인 부부는 생애 첫 유럽 여행 중이던 스물한 살의 아시아인 여자애를 따스하게 보살펴줬습니다. 첫 만남은 베를린의 작은 서점에서 시작됩니다. 언어는 권력관계를 형성하죠.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곤 합니다. 저는 백수린 작가가 늘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봅니다. 의도적으로 인물들을 낯선 장소와 언어로 이끌죠. 이 소설에서 독일인 한스는 일본 문학 코너를 살피던 한국인 에게 일본어로 말을 겁니다. 그리고 일문학을 전공하는 는 일본어로 답합니다. 독일어라고는 인사말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에게 베를린에 거주하는 독일인 한스가 부족한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죠. 손을 내밉니다. 긴 시간을 지나 무대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로 이어집니다. 역시 서로의 노력으로 쌓아온 우정이 깨어지나 싶은 위태로운 순간에 서로가 몰랐던 각자의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독일과 한국, 선의로 시작된다고 해도 온전한 이해와 공감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우정의 관계란 과연 가능한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폭설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십 대 여학생도 있고, 아직 수유중인 두 아이의 엄마도 있으며, 손주들을 봐주기 위해 아들을 따라 프랑스로 간 할머니도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과감하게 결심하고 떠나며, 누군가는 주저하지만 체념합니다. 떠나거나 머무는 결정을 하고 난 이후로 어떤 파장이 남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저에게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떠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머무른다고 모든 것이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각자에게 무엇이 남았을까요.

 

고요한 사건아주 잠깐 동안에는 재개발 예정지인 산동네를 배경으로 계급문제를 드러냅니다. 인물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난처함을 의식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지만, 아주 잠깐 동안일 뿐 이를 지속시키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겨우 마련한 보금자리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허기지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가닿지 못하는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하는 작가의 몸부림 같습니다. 결국 또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놓을 수 없지 않냐고 애써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백수린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더 소개하고 싶네요.

 

#여름의빌라 #백수린 #문학동네 #시간의궤적 #폭설 #고요한사건 #흑설탕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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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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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입구를 등진 채로 정거장 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보였다."

 

한 노인이 우주정거장에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위성관리업체 직원이 찾아와 이 정거장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죠. 노인이 기다리는 우주선은 운행을 중단한 지 오래입니다. 그동안 발생한 우주 항공 기술의 변화 때문이죠. 공간을 왜곡시켜 다른 은하에 도달하는 워프 항법에서 웜홀 통로를 사용하는 항법으로 변화하면서 경제성을 이유로 기존 항로에 있던 행성들로 더이상 운행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나처럼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이 제법 있었네. 사정상 제때 떠나지 못한 사람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사람들이지.”

 

그녀는 과학자로서 인체 동결 수면 기술을 완성하느라 남편, 아들과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족들에게로 가고 싶으나 모든 길이 막힌 상태였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인류의 미래에 기여한다는 연구의 완성을 위해 잠시 가족들과 떨어졌을 뿐인데,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기술의 발달과 시대의 변화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먼 우주의 공간처럼 막막해지는 고립감.

 

노인은 닿지 못할 그 행성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김초엽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허블 #SF문학 #1년간1710만부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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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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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때, 가해자 남성을 상대로 한 피해자 중심의 서사는 익숙하게 들어왔다는 생각입니다. 뜨거운 감정은 일어나지만, 선과 악이 너무 분명하여 익히 그러려니 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윤이형 작가는 계속 여성과 여성 사이의 미묘한 서사를 만들어 갑니다. 선과 악이 분명치 않은 이야기.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 피해자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화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했으나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해왔던 가해자였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그 미묘한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 풍성한 여성 서사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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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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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야근은 필수요 주말 근무는 선택'인 사무직 회사원인 동시에, 자투리 시간을 짜내 글을 쓰는 '투잡' 노동자로 일하면서 2016년에 등단한 소설가입니다. 첫 책을 내고 나서는 전국팔도의 도서관이며 서점으로 열심히 행사를 다녀 '문단의 송가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시종 재기발랄합니다.

 

오늘 밤은 꼭 굶고 자야지, 운동도 하고, 규칙적으로 보람찬 생활을 해야지, 하는 그의 계획과 바람은 늘 좌절됩니다. 그는 안 될 것을 알고, 체념하면서도 괜히 또 굶고 자야겠다는 말을 웅얼거립니다. 자조와 체념 속에서도 그는 결국 몇 편의 소설을 출간한 전업 작가가 되었답니다.

 

출근보다 싫은 것은 세상에 없다며 퇴사를 꿈꾸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박상영식의 공감과 위로가 저에게는 꽤 유효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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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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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 (문학동네, 2021)

 

천문학자가 쓴 에세이가 출간되었습니다. 학술서나 대중 과학서라면 모를까 천문학자의 개인적인 글을 읽어본 일이 있나 싶습니다. '천문학자'라는 직업에 더욱 솔깃했던 솔직한 이유는, 이십오 년째 천문학과 함께 살아가는 가까운 친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 별자리는 뭐냐부터 내일은 비가 올 것 같냐는 등의 짖궂은 질문들에 친구는 천문학은 그런 걸 연구하는 게 아니라면서도 웃으면서 굳이 대답해주려 애쓰곤 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심채경은 천문학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행성과학자라고 말합니다.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하다가 지금은 달 연구자가 되었지요. 저자는 딱히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어떤 극적인 순간도, 달 전문가가 되려는 특별한 계기도 없었지만, 작고 소소한 어떤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칠판에 바짝 들러붙어 몸을 웅크렸던 지구과학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나 연구실 사람들과 밥을 먹다가 "저요!"라고 말했던 순간 같은 거죠.

 

학부생일 때 자연대 옥상에 설치한 작은 망원경으로 인공위성을 관측했던 이야기부터 달의 크레이터를 통해 해가 드는 각도에 따른 토양의 노화도를 측정하게 된 이야기들이 적혀있는데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힘을 발휘합니다. 네이처에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선정된 에피소드와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된 이소연 박사에 대한 감상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육아와 연구를 겸하는 워킹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 이제까지의 이야기에 한 겹 새로운 축이 더해지며 입체적으로 읽히더군요.

 

가장 좋았던 건 자신을 '대학의 비정규직 행성과학자'라고 말하는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꾸준히 채용공고를 보며 정규직 자리를 얻기 위해 원서를 쓰고, 연구비와 급여를 충당하기 위해 연구 과제를 수주하려고 끊임없이 행정 업무에 힘쓰고 있다는 그의 말은 우주를 일상으로 내려놓기도, 일상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도 하는 듯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천문학자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왜소은하를 연구한다고 했었나?) 친구와 맛있는 밥 한 끼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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