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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성 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사회적 이슈로 논의되는 것과 내 딸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거리가 있을 때는 더 분명해 보이고, 거침없이 발언할 수 있을 것 같죠. 하지만 하늘 높이 짙은 구름처럼 불길하고 불쾌하던 것들이 폭우가 되어 쏟아지고, 나를 훑고 지나가 내 삶의 자리에 고이기 시작하면 확고해 보였던 세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불완전한지 알게 됩니다.
그동안 박상영, 김봉곤 작가의 소설에서 잠깐씩 커밍아웃한 화자의 엄마가 등장하곤 했습니다. 당황스러워하고, 끝까지 부정하고, 교정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주변의 시선과 반응에 민망해하고, 아들을 원망했죠. 그런데 이 소설은 좀 더 엄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시도합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딸과 딸의 동성 연인을 대하고, 그 불편함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딸의 근처를 배회하고 애써보기도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말이죠. 엄마의 시선만 빌려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딸의 성 정체성 문제는 엄마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부터 치매, 요양병원, 요양보호사와 같은 단어들이 폭우가 되어 저에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소설에서 상세하게 묘사되는 그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다가오더군요. 누군가에게는 시간강사로 일하는 딸의 이야기가, 혹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받게 되는 편견과 차별이, 차별받는 이들의 주변에서 배회하지만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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