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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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새 노래방이 있습니다. 그곳의 사장은 검은 옷을 입고 있죠. 노래를 부르는 손님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 그냥 노래나 부를까하는 사람들을 묶어 가두고 계속 노래를 시킵니다. 너는 노래에 대해 모른다고, 노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알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부르라고 합니다. 그는 진지합니다.

 

남자는 30분 후 노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내 이야기를 들어. 너희는 도무지 열심히라는 것을 모르니까 30분간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에 대해 생각해. 열심히.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열심히. 열심히에 도달하면 이제 너희의 소리와 너희의 노래가 완성되고 완성이 되면 너희는 이제. 이제 노래가 되어 세상으로 날아가는 거다, 그게 노래다.” (46)

 

그는 사람들을 가두고, 폭력을 서슴지 않지만, 오직 한 가지 이야기만 계속합니다. 자신의 노래론과 음악론, 그 두 가지가 인생에 작동하는 방식 말이죠. 갇힌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서편제 안 봤어?” 약을 먹이고, 팔을 묶으면 더 열심히 노래하게 될 텐데 하면서요.

 

이 책에 실린 총 8편의 단편 중 <안 해>라는 작품입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에서도 구름새 노래방의 검은 옷을 입은 사장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의 이야기는 배제한 채 젊은 세대를 착취하면서 훈수만 일삼는 기성세대와의 긴장과 갈등을 소재로 다룹니다. 기성세대에 맞서는 10~20대 화자들은 왠지 무기력하고, 주어진 상황에 체념한 듯 행동합니다. 그들만의 생존방식일 수도 있고, 그들의 세계가 만들어낸 새로운 대안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데 필요한 건 열심히가 아니라고 그게 남들이 보기엔 열심히로 보여도 당사자에겐 아니라니까 열심히가 아냐 무작정이 아니란 말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항목이 당사자와 함께 달려 나가는 거에 가깝다니까. 뭐 양보해서 열심히가 중요하다고 쳐도 정말로 열심히의 세계가 있겠어? 있다 해도 그게 튼튼해? 검은 옷 당신의 말처럼 열심히의 세계로 만들어진 노래가 자기의 몸을 부수고 세상에 던져질 만큼 튼튼해? 게다가 열심히로 만들어진 노래라니 조금도 듣고 싶지 않잖아. 안 그래? 정말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했는데 아니라고 생각해.” (53)

 

저는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의 추천으로 박솔뫼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요, 그가 펼치는 독특한 세계를 따라 읽으며 황정은 작가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모자와 테이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무얼부르지 #박솔뫼 #민음사 #오늘의작가총서 #열심히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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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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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방화사건이 벌어집니다. 여섯 명이 죽고 스물세 명이 다쳤습니다. 그 클럽은 트렌드에 따라 계속해서 이름이 바뀌어 왔지만, 줄곧 공공연하게 게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이 참사는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였습니다. 하지만 추후에 방화범 이모 씨가 한때 클럽을 자주 드나들었던 성 소수자로 밝혀짐에 따라 대중의 반응은 흔들립니다.

 

성 소수자는 자신과 비슷한 성 소수자를 혐오하고 증오할 수 있었던 걸까요. 자기 존재를 부정하거나 증오함으로써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배우 공상표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그동안 화면에 비친 제 모습을 수도 없이 마주해 왔지만 이게 '진짜 나'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건 '내가 바라는 나'이거나 '사람들이 바라는 나', 아니면 '사람들이 바라서 나도 바라는 나'였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에는 '꾸며진 나'로 귀결됐으니까요.” (192쪽)

 

‘진짜 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큰 용기를 내야 했던 국민 연하남 ‘공상표’의 필모그래피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며 그를 응원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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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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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펼치면 심시선 가계도라고 적힌 페이지가 나옵니다. 20세기를 살았던 매력적인 여성 심시선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가계도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을 했는데 엄마의 성()을 따른 자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혈육이 아닌 자녀들도 그녀의 이야기에 포함됩니다.

 

장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섞이며 진행됩니다. 하나는 화가이자 작가였던 심시선의 생애 동안 있었던 인터뷰와 글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죽고 십 년이 지나서 자녀들이 십 주기 제사를 지내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죽으면 절대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했던 유언을 따르다가 십 년이 되어 의미 있는 자신들만의 제사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그렇게 얽히는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살피고 주저하기보다 시원하고 힘있게 끌어갑니다. 각자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들을 딛고 일어나 과연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제사는하와이에서 #심시선 #기세좋은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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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오늘의 젊은 작가 27
은모든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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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교사로 일하는 주인공 경진은 모처럼 사흘의 휴가를 보내게 됩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자신의 깊은 속사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이야기를 왜 갑자기 처음 보는 저에게, 싶은 거죠. 안경을 수리하기 위해 들렀던 안경점의 주인이, 과외 학생의 엄마가, 약국의 약사가, 남산에서 길을 잃은 부녀가, 기차에 마주 앉은 승객이, 찜질방의 세신사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쏟아내는 잔소리로 멀어진 엄마의 몰랐던 이야기들도 알게 되죠.

 

그들은 남산의 길목과 전주 한옥마을의 거리를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합니다. 산책하며 쌓이는 이야기, 그 사흘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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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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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다산책방, 2020)

 

누구나 자신이 속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기 힘든 법이죠. 서로 다른 어그러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과연 어루만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것이 조금이나마 가능하다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

 

평생 남편의 밥을 차리고, 극성맞게 자녀를 키우다가, 손주들을 포대기에 업었던 할머니들. 그렇게 노인이 되어 요양원에 있거나, 세상을 떠나 손주들의 꿈에 나타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녀들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주방이나 광장이 아니라, 아담한 사랑방에서 이불 밑에 발을 넣고 모여 앉아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황예인(문학평론가)의 발문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239)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어린 여성들, 연대의 힘을 깨닫고 용감해진 성숙한 여성들. 여기에 나이 든 여성들을 함께 놓을 수 있을까? 틀림없이 우리 곁에 있어왔지만 정확하게 응시된 적은 없었던 여성들 말이다.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과거와의 연결이면서 우리의 미래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눈에 할머니라는 존재가 이전보다 선명하게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잘 모르는 여자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여자와 결국 내가 되고 말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윤성희 #어제꾼꿈 #백수린 #흑설탕캔디 #강화길 #선베드 #손보미 #위대한유산 #최은미 #11월행 #손원평 #아리아드네정원 #다산책방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어린 여성들, 연대의 힘을 깨닫고 용감해진 성숙한 여성들. 여기에 나이 든 여성들을 함께 놓을 수 있을까? 틀림없이 우리 곁에 있어왔지만 정확하게 응시된 적은 없었던 여성들 말이다.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과거와의 연결이면서 우리의 미래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눈에 할머니라는 존재가 이전보다 선명하게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잘 모르는 여자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여자와 결국 내가 되고 말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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