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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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공중관람차의 수진씨에게.

 

지금도 울고 있나요?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이 사랑했던 그들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당신의 탄력없는 몸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처연히 희망이 없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나요? 고개를 들어요. 공중관람차창으로 날아가는 저 비행기를 봐요. 당신이 신혼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이제 남은 유일한 소망은 빨리 늙어버리는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그후로 몇 번 연어가 회귀했을까 생각해봐요. 저도 그 공중관람차를 타보았어요. 저멀리 울산의 달동과 신정동끝 아파트군락과 울산공단까지 보이는 공중관람차를 말이죠. 다시는 타지않을래요. 세상도 불안하고 두렵고 탄식이 절로 나오는데 공중관람차는 고소공포증까지 더해 호흡이 힘들잖아요.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는 사람은, 

까닭 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나를 슬퍼 울고 있다.

 

지금 이 밤 어디에선가 웃는 사람은,

까닭 없이 이 밤에 웃는 사람은 나를 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걷고 있는 사람은,

까닭 없이 이 세상에서 걷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까닭 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다. <엄숙한 시간, 릴케>


릴케의 '엄숙한 시간'이란 시에 대한 그 참을 수 없는 수치가 혹시 기억나나요? 이제 당신은 고등학교 때 받은 어떤 연애편지를 끝내 기억하지 못해요. 남루한 현실로 내 몸을 바라보는 욕실 거울앞에서 울고 있나요? 남루하고 몽매했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은 신들이 내려와 사는 깨끗한 곳이 아니예요. 그렇다고 우리는 먼지처럼 조용히 마음자락 떠다니며 살 수도 없지요.

 

당신은 그 때 사랑에 빠질까봐 두려웠어요. 결혼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면서도 불안했죠. 이 사람이 바로 내 인생의 그 사람일까? 오디세우스의 명쾌한 논리로도 풀지못하는 이 세상의 수수께기앞에서 세상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마세요. 봄이 와요. 늘 겹겹의 껍질로 수진씨를 둘서싸고 있는 그 고독을 레이스를 떼어내듯, 털어버려요. 그 두려움과 후회가 우리네 인생의 절반을 차지할지라도 그것들은 우리 삶을 결코 바꾸지 못해요. 우리의 영혼을 부패시킬 뿐이죠.

 

수진씨 앞으로는 두려워하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고, 그냥 현재를 사랑하세요,

과거는 족쇄이고 '희망'은 추상명사가 아니랍니다.  

어.느.날.에.도. 삶이 있어요.


현명한 독자가 되고 싶다면 독서를 통해 교훈 따위를 찾아낼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라.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 

 

독서가 어떨까요? 밥을 먹거나 산책하는 것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책으로 위안삼아요. 이 독서를 통해서 책이 가진 불투명한 메시지와 아름다움을 삶으로 전환시켜요. 이 독서는 당신에게 결핍된 게 무언지를 일깨워줄 꺼예요. 슬픔도 꿈도 없이 견디지 말고요. 이 독서는 수진씨에게 하나의 '반성'이자 ' 모멘텀'이 될꺼예요! 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부터 시작할까요?  우리가 믿는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작가는 수다스럽지 않으면서도 치명적인 문장으로 보여주거든요. 이 책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섭취할 수 있는 한 방울의 독약이 될 꺼예요. 내 안에서 자란 쓸쓸함과 두려움의 숨통을 끊어놓는 그런 달콤한 독약 말이죠.

 

우리는 함께 책치료사를 만날 수도 있고, 신비롭고 에너지넘치는 천년여왕과 맥도날드에서 콜라를 마실 수도 있고, 무엇이든 대여해주는 사이트에 로그인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예요. 독서를 통해서도 충분하죠. 아, 저같으면 무엇을 대여받고싶냐구요? 음..저는 하루에 3시간씩 아무에게도 방해받지않고 책읽을 수 있는 완벽하고 규칙적이면서 명징한 시간을 빌리고 싶네요.당신이 빌리고 싶은 것은 나중에 독산동 어디쯤에서 만나요.그때 꼬옥 답변을 해주세요. 아마도 그 답변이 무엇이든지 난 딸꾹질로 당신에게 응답해줄께요.

 


2012년 이른 봄밤에 퍼플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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