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양윤옥 옮김, 권신아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은 작품을 탐닉하는 게 아니라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빠지다'와 '탐닉하다'는 말은 일경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죠. '탐닉'은 감각적인 문제이지만 '흠뻑 빠지는 것'은 영혼의 문제이니까요. 에쿠니 가오리는 그래서 특히 한국여성들이 사랑하는 작가일까요? 저같은 경우 그녀의 책을 매년 2권씩은 (자의든 타의든^^) 꼬박꼬박 읽게 되는데 그 한결같은 정갈함은 마치 '식물'같은 작가의 식물같은 작품이구나, 라는 감탄을 또한번 하게 됩니다.

 

이 작품 <나의 작은 새>는 2012년에 따끈따끈하게 나온 신간으로써, 이쁘게 수놓은 하얀 손수건이 떠오르는, 짧은 소품같은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이 묻어납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확실히 전체를 꿰뚫는 서사적인 스토리보다 바로 오늘, 바로 이 장소등 순간순간의 느낌과 풍경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미니멀하고 말이죠^^  <나의 작은 새>는 화려하지도 심각하지도 않습니다. 잔잔한 하루의 일상이 모짜르트의 디벨티멘토마냥 잔잔하게 흐르지요.

 

에쿠니 가오리는 실제로 운전을 할 줄 모른다고 들었는데 이 책 <나의 작은 새>의 주인공인 '나'도 운전을 못한다는 부분을 읽고 빙그레 웃음이 나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엔,ㄴ,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거품이 나는 분수대가 있는 공원이 어디일까 생각도 해보고, 오늘 산책길에 분수대에 떠오른 무지개를 볼 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지나가는 나무사이에 작은 새를 발견한다면 삐추삐추 재잘거리는 소리에 대답을 할 것만 같고, 버터나이프만 보면 작은 새를 위한 스케이트를 떠올리겠지요.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리게 된다면 "아차, 실례!"라고 경쾌하게 말하고 싶은 하루입니다. 이 책을 읽은 분들만이 알수 있는 암호들이죠? ㅎㅎ 주인공의 집에 걸려있다는 포스터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어요. 딕 브루너요. 요분이시더군요.^^ 미피를 그린 네델란드의 유명한 아동문학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요. 주인공이랑 잘 어울리는 포스터일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저는 이 책에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했냐고요?

주인공인 '나'와 꽃으로 치면 노란 카네이션처럼 청결하고 숫자로 말하면 2처럼 영리한 '나'의 여자친구, 그리고 숨소리마저 웨하스같은 질투쟁이,작은 새의 기묘한 동거라는 소재는 그전의 전작인 <반짝반짝 빛나는>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 지루한 세상의 상식선에서 낯선 사랑의 방식을 자연스럽고 낭랑하게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잖아요. 그리고 그 청아한 방식은 운명적인 사랑의 무거움보다 다른 존재인 둘이 만나서 그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아픔과 아름다움을 모두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지런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보다 '나'를 바라보는 작은 새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주인공에 대한 '애증'을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고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슬픈 이야기를 박하향같은 문체로 풀어가는 에쿠니 가오리가 대단한 거겠지요?

 

3월의 첫날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 봄꽃이 피겠지요. 그런 봄을 맞이하기에 이 책 <나의 작은 새>는 안성맞춤입니다. 아직 쌀쌀하긴 하지만 그 쌀쌀한 공기 방울 하나하나에 분명하게 봄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 겨울동안 스케이트를 못타본 게 넘 아쉽군요. 스케이트를 타고 난후 신발로 갈아신고나서 걸음을 옮겼을 때의 바닥이 흐물흐물하고 지나치게 땅바닥을 힘주어 짚는 그 기묘한 느낌이 그리워요.오늘처럼 햇살이 빛나고 싱싱한 냄새가 온몸에 가득 차오르는 휴일에 느긋하게 나도 오늘은 롤 캐비지를 만들어볼까 궁리중입니다. 고기는 빼고 두부만 넣어서요. 그리고 요리하는 중에는 꼭 알프레트 브렌델의 피아노연주를 들어야겠습니다. 아차, 실례! 혼자만 먹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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