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3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지음, 김성일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엉덩이에 굳은 살이 박힌, 세면대같이 단단한, 공기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시를 만났습니다.그런데 뒷모습은 물보다 축축한 사랑이 간절한 戀心이네요.피둥피둥한 속물근성으로는 도저히 마야코프스키의 시집을 편하게 넘길 수가 없습니다.

 

체 게바라와 시인 김남주가 좋아하고 탐독했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시집을 손에 쥐었습니다. 러시아 초기 아방가르드의 폭발시기에 대중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입니다.  14살때부터 이미 정치범으로 여러번 체포된 그는 독방에 갇혔을때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소비에트의 혁명시인이자 전위예술가이기도 했던 블라미디르 마야코프스키를 오늘 만납니다.

 

행복할 때면 빡빡 머리를 밀곤 했다는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는 10월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형식주의자이자 미래주의자였고 최초의 모더니즘을 지향한 시인이라고도 볼 수있겠죠. 언어의 위력과 예언력을 믿었던 그는, 레닌의 죽음이후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스탈린은 러시아의 문단에 미래주의같은 전위예술이 아니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무장할 것을 명령하지요. 결국 이러한 상황앞에서 마야코프스키는 순식간에 '반동시인'으로 몰리고 경제적, 정신적,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립니다.스탈린은 마야코프스키가 그루지야 독립 운동의 핵이 될까봐 그를 처형하려고 했고 이런 움직임을 간파한 그는 1930년에 자살하고 맙니다. 하지만 저는 고답적이지 않고 훈계하거나 포기하지않던 마야코프스키의 자살은 온 몸으로 '선빵'을 날린 것이라는 말에 동조합니다.


그가 죽은 뒤,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유일한 문학예술의 창작방법으로 채택합니다. 이로써 20세기초 러시아에서 전개되었던 독특하고 실험적인 전위예술과 모더니즘의 싹은 완전히 죽고 말죠. 사실 그렇습니다. 창작방법까지 당에서 정해준다는 것은 시트콤같은 작태입니다. 차라리 팬티색깔까지 정해주지 그랬어요. 러시아에서 혁명의 향기는 이렇게 스물스물 사라지고 관료주의라는 찌꺼기만 앙금처럼 가라앉게 됩니다. 저는 37살의 나이로 권총자살한 마야코프스키의 사진을 무념하게 바라보려 애씁니다. 그는 또 독특하고 독한 사랑으로 유명하죠. 평론가인 유부녀,릴리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것을 안 남편이 셋이서 함께 살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함께 또는 따로따로 연애도 하면서 잘(?)지냈다고 합니다. 15년이나요.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nasza93/60092201099)

 

사건은 종결되고 우리는 피장파장입니다. 그의 푸른색 탄환같은 시를 다시한번 읊조려 봅니다.

 

우리가 처음 쓴 새롭고 예상치 못한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직 우리만이 이 시대의 얼굴이다. 시간의 뿔피리는 우리를 통해 언어 예술 속에서 울려 퍼진다.

과거는 갑갑하다. 아카데미와 푸슈킨은 상형 문자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다.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을 현대라는 기선에서 던져버려라.  자신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 누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발몬트의 향수 냄새 풍기는 음란함에게 바치겠는가? 그것이 오늘날 강직한 영혼의 반영이란 말인가? 

    그리고 만일 당분간 우리의 문장 속에 당신들의 "상식"과 "좋은 취향"의 더러운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자기 충족적인(자족적인) 말의 새롭고 아름다운 미래의 여름 번갯불과 함께 가장 먼저 명멸할 것이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중에서

 

수백 개 계단을 편력한다.

세상은 다정다감하지 않은 곳.

또 다시,

    "한 시간 후에 오십시오.

     지금 지역협동조합에서 쓸

     잉크 한 병을 구입하기 위해

     회의 중이십니다."

     ...제기랄!

    ...

     이른 아침, 꿈을 안고 이른 새벽을 맞는다.

 

             "  오

                 모든 회의를 폐지하는 것에

                 관한

                 회의를

                 한 번 더 했으면!"                             

 

<회의광>중에서

 

동무들

진흙탕에서 우리 공화국을 구원해낼수 있는

그런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시오.

<예술 군단에 주는 두번째 명령>중에서

 

가거라,생각이여, 너 자신의 집으로.

영혼과 바다의 심연을

                             얼싸안아라.

                               <집으로!>중에서

 

그는 침묵하는 자들의 살가죽은 교활하다고 했지요. 그의 펜은 총검이자 톱니바퀴처럼 제 가슴을 후벼팝니다. 이 시집을 손에 쥐었을때 유독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개판 오분전이었는데 일부러 서정세계로 숨으려고 하면 그는 내 온실을 개머리판으로 깨부수더군요.시대의 눈꺼플을 다시 뜨라고, 그 혀로 내 눈을 핥는 느낌이랄까요.

 

인문학의 평행선 저 끝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시의 대척점에는 철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어떤 눈깜짝할 찰라에 찬물을 뒤집어 씌우는 물벼락이라면, 철학은 그 순간이 갖는 의미를 클로즈업하는 현미경이거나 전체망원경이겠죠. 넘어설 수 없는 시인은  그동안 숱한 좌절을 한 내게 일침을 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으라고, 언어의 힘을 믿으라고, 깊이 사유하지말고 차라리 행동하라고 말입니다. 누구나 마녀일 수 있는 동시에 소수로 왕따로 내몰릴 수 있는 이 유치짬뽕의 현실을 피식 웃으면서 유연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맞서라고 독려하는 이 시들은 참으로 반갑고 뜨거웠습니다. 나를 실망시키거나 우롱하지도 않고 말이죠. 다만 블라미디르 마야코프스키의 집채만한 사랑과 집채만한 증오가 겉날실로 얽혀있는 그 힘은 따라잡을 수 없는 어떤 거리를 확인시켜주네요.

 

마지막은 싱어송라이터이자 버마의 NGO활동가이기도 한 Tamas Wells가 마야코프스키에게 헌정한 노래 하나 같이 들으면서 마칠까 합니다. 제목이 An Extraordinary Adventure (Of Vladimir Mayakovsky In A Summer Cottage) 예요. 시집에 있는 비슷한 타이틀의 시도 있었는데 말이죠^^

 

http://tamaswells.bandcamp.com/track/an-extraordinary-adventure-of-vladimir-mayakovsky-in-a-summer-cottage

 

에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잔잔한 슬픔이 느껴지죠.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떄려라>라고요? 사실 따귀는 제가 맞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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