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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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자 서평가의 유작(遺作)과 만나다

 

 <출판저널>의 기자출신으로 여러 지면에 발표한 서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평가 최성일씨가 작년 여름에 뇌종양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44세. 이 책은 그러니까 저자, 최성일의 유작이 되는 셈입니다. 아래처럼 부인이 서문을 대신 썼더군요.

 


 

먹먹한 마음 한자락 넘기며 페이지를 넘겨봅니다. 사실, 저자 최성일씨는 제게 있어 서평이 재미없다는 인식을 깨부순 인상적인 인물입니다. 식객세상에 사유리가 급소와 솔직함으로 펀치를 날린다면 출판세상에는 최성일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그의 서평에는 입장과 관점이 명확하고, 어떤 때에는 쏠쏠한 재미와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가끔은 통쾌하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나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견해를 존중한다'는 흥미진진한 문장을 통해서도 가늠해 볼 수 있듯,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밝히는 그는 결코 에움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악평(?)에서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비평적인 책읽기의 대가라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는 비평적이 아니라 독창적인 솔직함의 비주류 대가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이른바 '주례사 비평'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저자는 덕담 일변도의 무색무취한 결혼식 주례사같은 서평을 그렇게 정의합니다. 관점없는 뜨뜻미지근한 책읽기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정말 뭉클하더군요. 왜냐면 얼마전에 제가 별 다섯개중 반개만 준 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저자는 제 서평의 삭제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저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짜로 얻은 책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몰인정한 처사다. 하지만 우리의 도서관 체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해서 그렇지 책을 꼭 사서 읽을 필요는 없다. 제 값을 치르고 책을 사는 것이 서평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을 엄정한 서평의 전제 조건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다.

 

물론 저도 이 부분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서평단 참여로 인해 공짜로 얻은 책인지라 '비즈니스 매너' 차원에서 약속한 서점사이트와 관련 북까페의 리뷰는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찜찜하더군요. 서평단이 무뇌집단도 아니고, 칭찬과 비판사이 어정쩡한 '균형'을 이루는 서평들을 쓸 생각을 하니 답답했지요.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써 출판이후에는 그 책에 대해 독자마다 재해석하고 다양한 해석을 할 권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특히 이 책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책의 단점에 대해 애써 눈감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듯이 독자는 완벽한 책을 기대하는 게 아니니까요.

 


 

'올 게 왔구나!' 그러나 즐거운 탄식.

 

목차를 펴면서부터 '올게 왔구나'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신화,역사,세계사, 문화사,자서전까지 아우르는 그의 스펙트럼에 감탄을 하면서도 인용한 다른 책들과 관련서적까지 짚어낼 때에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헐, 나보고 어디서부터 손대라는 소리야,빌어먹을!"하는 한탄이 터져 나오고 말더군요. 그의 독서법은 아주 정교합니다. 촌철살인의 서평은 더없이 귀감이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한 권의 책>은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또 서평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101편의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최성일씨는 우선 한 권의 책을 논하기 위해 관련된 여러 책을 동시에 읽습니다. 글의 공력은 차치하더라도 그 짧은 분량의 책 서평속에서 묻어나는 진지함과 성실함은 본받을 만 합니다. 더군다나 문장의 결이 곱습니다. 저도 한글을 좀 더 많이 애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의 서평을 통해서 발견하는 낯선 순우리말들은 사전을 뒤적이게 만듭니다. 새로운 단어들을 만나는 즐거움 또한 무시할 수 없네요.

 

인상적인 부분을 몇 개 발췌하자면,

 

독서인 사이에에 전래되는 '세 바보' 속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세 바보란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 빌려주는 사람, 빌려보고 빌려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책에 인용된 볼테르의 경구는 '질서'에 앞서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사람은 허투루 봐 넘기기 어려운 구절이다.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101여 편의 서평중에서 귀하게도 생태와 환경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탓인지 좋은 책들을 소개받아서 수첩에 옮겨놓았습니다.내가 저자가 추천한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내 관심영역에 맞는 책들은 우선 안심이 됩니다. 그의 서평이 길잡이 노릇을 한 결과, 좀 더 농밀한 독서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한 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북멘토이며 조언자입니다. 참고삼아 제가 위시리스트에 넣은 북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최성각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다치바나 다카시
즐거운 불편 - 후쿠오카 켄세이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 모리스 클라인
콘크리트아파트에서 건강하게 사는 49가지방법 - 이현숙
프라하의 소녀시대/팬티 인문학 - 요네하라 마리
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쿤츠
국물이야기 - 문형동

소박한 밥상 - 헬렌 니어링
버지니아울프, 시대를앞서간불온한매력 - 나이젤 니콜슨
보이체크 - 게오르크 뷔히너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 채광석
쉽게 찾는 날씨 - 스톰 던롭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이득재
세상을 바꾼 법정 - 미첼 콜드웰
새장안에서도 새들은 노래한다 - 마크 잘즈만
마음의 생태학 - 그레고리 베이트슨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 - 칼 마르크스
플라톤은 아팠다 - 클로드 퓌자드 르노

 

정말 읽고 싶은 책이 무지막지 많아서 즐거운 비명입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책의 만찬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어느 책부터 맛을 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덧붙여 저자, 최성일씨가 서른 한 살때부터 10년이상 방대한 작업으로 내놓았다는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제가 언제쯤 자신감있게 독파할 수 있을까요?

 

 (늘 웃는 얼굴이었다던 최성일씨의 모습)

 

손을 씻고나서 책을 만져야 저자와 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사람, 밑줄을 그어도 자를 대듯 금을 긋던 사람, 자신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인 척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하던 사람, 다 쓴 원고를 서너 번씩이나 손수 교정을 본후에야 보내던 사람, 지인들에게 책선물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책에 씌여 있다고 무조건 다 믿지말라고 꼬리내린 독자들에게 격려하던 저자에게 더없이 감사합니다. (당신의 서평도 다 믿지 않아두 되는 거죠?) 보르헤스의 말처럼 수십만권의 장서로 가득한 거룩한 도서관같은 천국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내내 평안하시길 다시한번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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