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설명서
오승현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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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수가! 이 책<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를 읽는 중에 '나꼼수+비키니+가슴대박+ 코피쫙' 조합으로 여기저기 논란과 말들이 많아서 이 책을 읽는데 가속도를 내도록 도와준 김용민과 주진우씨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렵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사소한 말실수와 단어 선택이 차별과 편견을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날카하게 혹은 꼼꼼하게 설명해주는 '평등한 언어 사용 설명서'입니다. 이 책에서 건드리고 있는 범위는 장애인,혼혈인,여성,동성애자는 물론 가정과 군대, 학교, 사회속에 드러나는 단어들과 호칭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책 속에서 지목하는 말들을 접할 때 처음에는 '에이~ 이런 단어까지 뭐라하는 것은 좀 오버아아닐까?'하고 읽다가 그 불온한 주류 언어의 모순과 함정앞에 마주치는 순간, 저는 부끄럽고 불편해집니다. '이 말은 진짜 제가 의도하고 일부러 쓴 게 아니예요!!' 라고 외쳐보았자 저는 체제의 언어, 강자의 언어의 공범자, 하수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나의 말실수와 농담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런지 겁이 나더군요. 고답적으로 구지 '인식론적 조건'을 운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이 책의 저자 오승현씨처럼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로 우리안에 내재되어있는 몰상식을 까부수는 일은 너무도 온당하니까요.

 

이 책<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을 읽으며 왜 나꼼수분들에게 감사했는지 한번 생각해볼까요? 이 책속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말실수사례들과 나꼼수사건은 참 닮아있습니다. 서로가 마치 상대방의 클론이고 '짝퉁'으로 보여질 정도입니다. 사실 이 사건을 접한 곳은 네이버 포탈뉴스에서였습니다.  '나꼼수, 정봉주 비키니 사진 보내기 운동'이라는 상상력을 동원해도 스토리를 연결하기 힘든 타이틀 때문이었죠. 클릭해보니 동아일보쪼가리의 뉴스 헤드라인중에 하나더군요, 실제로는 그런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였지만 보수언론의 소설쓰기 특기때문에 독특한 사건을 접하게 되어 감사하긴 해요.

 


 

제가 이 책과 연결지어 나꼼수 비키니논쟁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떤 분들은 김용민과 주진우의 이 말들을 '마초적 일탈'로만 치부하면서 '지들끼리의 농담'이라고 축소하는 분들이 꽤 되더군요. 아, 농담맞습니다. 그동안 나꼼수 분위기를 보아하건데 그 분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꺼냐'던 강용석이나 ‘못생긴 마사지걸을 고르는 게 인생의 지혜'라던 MB나 모두 자기들은 재치있는 '농담'을 했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뿐이거든요.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농담'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농담을 꺼내는 의식의 기저에는 어떤게 깔려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거죠. 심심해서 던진 돌 하나에 개구리가 맞아죽는다면 그것은 엄연히 '개구리 살인죄'이니까요. 그리고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 또 있습니다.  이제 나꼼수는 반MB와 일면 진보(?)라는 레이블로 묶여있고 영향력도 엄청납니다. 아이튠스 팟캐스트에서 시사,정치 1위잖아요. 근데 필요할 때만 정치이고 불필요할 땐 농담이라고 치부하는 게 온당한가요? 그 소위 농담이라는게 떨어져서 부부생활 못 하는 유부남의 성생활을 소재로 자위 등등 온갖 드립을 다 치며 다 큰 세사람이 딸 안 칠테니까 수영복 사진 보내달라고 하더니 막상 비키니 사진이 오니까 공동명의로 "가슴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면서 트위터에 자랑하다니요. 수영복 사진이라고 말했을 때 설사 그럴 의도가 있다 한들, 뭔가 센스있는 사진을 이슈화시키리라고 기대했는데, 크리에이티브는 둘째치고, 그냥 입다물고 공식화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난리나지 않았을텐데요. 게다가 남편을 감옥에 보내며 뽀뽀를 했던 정봉주 부인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요.

 

젠더도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도 정치적인 집단이고요. 다른 정치적인 논의는 정치적으로 바라봐주길 바라지만 섹드립만은 젠더 정치와 분리시키라고, 거슬려도 참고 넘어가라고, 농담가지고 피곤하게 만들지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세상을 어떻게 아프게 만드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위험한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속의 한 부분을 발췌해 보겠습니다.

 

남성을 지칭할때는 그저 경찰, 배우, 직원, 교사, 의사, 장관, 작가, 대학생으로 부르지만, 여성을 지칭할때는 특별히(?) 여경, 여배우, 여직원,여교사, 여의사, 여성장관, 여류 작가, 여대생으로 부릅니다.우리나라에 학교명이 '** 남자 중학교'인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왜 여학교만 유별나게 여자를 강조하는 걸까요? 이런 표현들은 남성은 일반적인 존재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나쁘게 평가받는 대상인 경우에는 여성이 주가 되고 남성이 종이 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번에 많이 속상해하는 여성들은 나꼼수의 '여성 애청자', '여성지지자'가 아니라 그냥 '나꼼수 애청자', '나꼼수 지지자'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날카로운 지적끝에 그렇다면 내가 의식적으로 어떤 말들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정리하고 강조해주었으면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지않았을까 하는 부분과 체제의 언어가 어떻게 의식과 사회를 아프게 만드는지에 대한 조목조목 차근차근 설명이 더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참 날이 서 있네.'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하지만 제게는 무의식적으로 더이상 공범자가 되지않아야겠다는 충격요법이 제대로 먹힌 셈입니다. 감사한 부분이죠.

마지막으로 비트겐슈타인의 말로 서평을 줄입니다.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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