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 다가가면 갈수록 어려운 그 남자
마스다 미리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버지는 고독합니다.

 

이 책<아빠라는 남자>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그레 미소를 짓게 되는 데도, 내 머릿속에는 '아버지들은 참 고독하구나' 하고 읊조리게 됩니다. 왜일까요? 서평을 쓰기 전에 여자사람 지인들과 '나의 아버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누구나 아버지와 딸사이에는 참으로 묘하고 어색한 기운이 흐르기 마련이더군요. 특히 여자사람들이 어른이 되고나서는 더욱요. 사실 제가 6살때 저는 '빨리 커서 아버지랑 결혼하겠다'고 친척들과 동네아줌마들과 심지어 어머니앞에서도 강강한 목소리로 외치곤 했었습니다. 아버지는 참 크고, TV속 어떤 탈렌트들 보다 잘생겼고, 못하는 게 없는 맥가이버였으며, 저녁마다 책과 과일을 주렁주렁 사다주시는 산타였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운동도 너무 좋아하시고 어딜가나 '대장'이셨습니다. 게다가 회고해보면 아버지는 30년전부터 '딸바보'였습니다. 산악회건,조기축구회건 아버지는 남동생보다 저를 데리고 다니셨고, 제가 읽고싶어하는 책을 적은 종이를 아버지 시계놓는 자리위에 슬며시 놓으면, 아무리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오시더라도 그 다음날 제 책상위에는 그 책이 놓여있었으니까요. 돌아보면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갖는 감정은 굉장히 순수한 것 같습니다. 부인에게는 반려자로써, 여자로써 바라는 바가 있고 아들에게는 야망이 있을텐데 아버지가 딸에게 갖는 감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심지어 어머니께서는 '저랑 아버지가 입맛과 성격이 너무 똑같다'고 혀를 내두르시면서 어렸을때, 제가 재롱을 피면  조그만 미녀를 손에 쥐고 꼼짝못하는 킹콩같았다'면서 놀리곤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고.독.합.니.다. 

 

 

아버지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심정.

 

IMF이후 우리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을 때를 떠올립니다.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셨던 아버지는 재기를 위해 더욱 몸부림을 치셨을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사기를 당하고 집안은 점점 수렁에 빠졌지요. 아버지는 좌절이 너무 크셨는지 말수가 줄어들고 더이상 웃지도, 음악을 듣지도, 운동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버지는 신문과 TV만 보셨고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셨지요. 아버지의 든든한 어깨가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저의 심정 또한 참담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웠죠. 내 앞의 남자는 '아빠라는 보호자'가 아니라 '경제력을 상실한 소시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 만난 부자간의 관계였습니다. 우리집의 4대 독자인 제 남동생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극도의 분노와 애증이 겹치는 것 같더군요. 손자가 태어난 이후 그 똘똘이가 가교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집 부자지간은 '허심탄회'하지 않습니다.이런 문제를 보편적인 부자간의 갈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다 성장하고 나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참 부드러워지는데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더욱 뻣뻣해지니 말입니다.       

 



제가 지인들과 대화를 해 본 결과 딸들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벽창호에서부터 알콩달콩, 세심에 이르기까지 아주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그리고 이 책<아빠라는 남자>속에 나오는 마스다 미리의 아버지는 사실 '어른아이'입니다^^ 성격도 급하고 털털하면서 무뚝뚝하지만 순진한 아이같지요.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딸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수줍게 느껴집니다.그래서인지 이 책<아빠라는 남자>는 <엄마라는 여자>보다 공감이 크지는 않았어요. 우리 아버지와는 성향이 많이 다르시더라구요.이제 예순여섯이 되신 우리 아버지는 사실 나이를 드심에 따라 점점 더 소박해지시고, 많이 웃으셨고, 가부장의 부담에서 벗어나시기 위해 큰 결심을 하신 듯 하거든요. 어머니 생신때 거침없이 축가를 직접 부르셔서 며느리가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시는 로맨티스트이십니다. 그렇게 마스다 미리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다르다 해도 이 책의 장점은 사라지지않습니다. 이 책은 단지 '아버지'와 가족의 일상풍경을 소소하게 보여주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깔때기처럼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매력이 탄탄하거든요.


 

저자는 분명 이 책을 아버지께 헌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 여기저기서 아버지 뒷담화(?)에 주저하지않습니다.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가족회식때 아빠를 '접대'하는 기분이 들어 같이 다니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죠. 아빠의 비위를 맞추느라 전전긍긍하게 된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합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런 솔직한 시선이 걱정되는게 아니라 저는 오히려 아버지와 딸이 어색하긴 하지만 투명하구나,하고 그 신뢰가 부럽더군요. 불만이 아니라 그것은 마치 '앙탈'로 보일 정도로 귀엽습니다. 그리고 시트콤을 보듯이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요. 아래처럼요. 저는 뭉클하면서도 웃겨서 눈물이 났었다는^^


 

저도 한번쯤 이 책처럼 <아빠라는 남자>에 대한 명랑하면서도 마구 뒷담화를 해대는 회고집을 써서 아버지께 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요즘도 여전히 '사랑한다, 내 딸♥'이라고 문자를 보내주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한없이 어색해지는 저의 머쓱함을 지우고 싶네요. 아버지의 고독함을 벗겨드릴 사람은 아내도, 아들도 아닌 바로 '딸'일것 이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렇게 제 인생의 '첫번째 남성' 이었던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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