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목욕이 좋아요? 샤워가 좋아요? 이 책의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목욕하는 사람은

우파적이고 샤워하는 사람은 좌파적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왜 그러냐구요? 따스한 물속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치 엄마의 자궁같은 상태를 좋아하기에 그 수평적인 욕조에서 나가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반면에 서서 샤워하는 사람은 맑은 물이 채찍처럼 후려 갈기는 그

수직적인 순간, 죄로부터 씻김을 받는 듯한 순결성과 적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신화적이고 철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 풀어가고 있거든요.

 

이 책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철학교수가 되고싶었던 남자가 작가가 되어 철학을

다름과 닮음, 이라는 두개의 쌍을 통해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만들어낸 산문집이지요.

그다지 두껍지는 않지만 진지하되 딱딱하지않고, 우아한 문장과 사유가 감탄스럽습니다.

또한 두가지 대비되는 개념을 이용하되 그것이 영어단어의 반댓말이 아니고 이분법적인

대조법도 아닌 그런 발상이 확실히 나의 상상력과 지식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왜 매해 노벨상후보에 그가 거론되는지 알만해요. 몇개의 인상적인 구절을 살펴볼까요?

 

생각에서 출발하는 건 산문이다. 주르댕씨는 우선 슬리퍼를 신을 생각을 했고,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 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에서 언어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시는 언어의 울림과 어떤 리듬에 실려있는 언어의

고리이다. 언어가 실어 나르는 생각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산문을 이해한다는 것은 산문을 지배하는 

생각들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한편의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에서 쏟아나는 영감에 휩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 p 173

 


 

이 책<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다보면 주변의 모든 것이 녹아있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비이커에 용해되어있는 그런 상태말이죠. 어제와 이제, 너와 나, 남자와 여자,소금과 설탕,

조롱과 찬양, 기억과 습관, 사냥과 낚시..이 모든 것들이 녹아서 한 곳으로 졸졸졸 흘러

미셀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의 종이,그  펄프속으로 쏘옥 스며들었다고나

할까요? 이 책은 마치 산산히 부서진 '나의 뇌'속 분신들이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다가 만나서 낯선 성분들과 부딛히고, 뒹굴고 서로 간지럼을 피고, 세세세를 하고, 절교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나와 이 세상, 내 개념과 철학을 만드는 개념들이었습니다.엄밀히 말하자면

구지 미셀 투르니에가 정의한대로만 고정적인 모양일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이런 개념들을 다시

내속에 체로 걸러내고 응고시키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나만의 '핵'이 되겠지요?

 


 

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그 재치와 통찰력과 날카로움과 깊이있는 사유가 편한 내 슬리퍼마냥

일상생활속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특히 수려한 문장들이 너무 담백했는데, 그 명료하면서도

깊이있는 문장의 힘은 아마도 시인이자 번역가인 김정란씨의 번역이 더 빛나게 해준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근데 이 책의 장르가 모냐고 누가 물어볼까봐 걱정되네요. 이 책은 시와 산문,철학을

오가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미셀 투르니에'가 바로 장르라고 표현해야 할듯^^

 

창조적 사고와 지적 유희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는 책입니다. 풍부한 향을 지닌 와인같은

이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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