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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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실은 때때로 범죄에 악용된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블로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해서 다시 거짓말을 했고, 또다시 그 거짓말을 거짓말로 변명을 하다 보니 결국에는 끝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추측건대, 별 볼 일 없는 대학을 졸업해서 조그마한 디자인 회사를 다니며 잡무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꾀죄죄죄죄죄죄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화려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는 처음에 별 생각없이 블로그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고, 푸념 섞인 낙서처럼 휘갈겼는데 이 거짓말이 결국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최초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을 늘어놓다 보니 판이 커져버렸다.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이십대에 이미 20명 남짓한 직원을 거느린 디자인 회사를 차렸으며, 미술관 큐레이터와 도슨트를 겸하며,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모 아이돌 그룹을 프로듀싱한 프로듀서이자 스스로도 음반을 낸 적이 있는 전직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가구 공예가로도 이름을 떨쳤고, 군에 있을 때에는 아프간 전투에 착출되어서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육군 참모총장 표창장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일이 서른을 넘기지 않은 나이에 이룩한 업적이었다.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잡히는 8월 은갈치'보다 더 은은한 스펙에  넋이 나가서 그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가 100개의 형광등을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면 그 블로거는 형광등 백만 스물 한 개를 켜놓은 아우라였다. 그를 따르는 이웃은 항상 와와, 했다. 간혹 나 같은 삐딱이'가 우우, 하면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몰려와서 에에, 하며 조롱했다. < 우우 > 했던 소수와 < 와와 > 했던 다수와 맞짱을 떴다가는 < 에에 > 당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거짓말쟁이 블로거의 화려한 경력을 나이와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번의 재수 끝에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니 26세요,

 

여기에 병역은 병장으로 제대했으니 3년 더하면 얼추 29세가 될 터인데,  28세 때 이미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서 2장의 앨범을 내기까지, 아.... 그리고 여기에 가구 공예가'로 대활약을 펼쳤다는 것을 포함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 와와 > 무리와 < 에에 > 무리에게 이 사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했던 말이 바로 " 앞뒤가 맞지 않는 말 " 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 " 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지만 그것이 진실인 경우도 종종 있고 앞뒤가 맞지만 거짓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거짓말에 능숙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어설픈 거짓말쟁이에 가까웠다. 히가시나 게이고의 대표작 < 용의자 x의 헌신 > 에서 독자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초반부에 전남편을 죽인 야스코'가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착한 여자였는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녀는 성정이 고우며,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고, 무서움을 많이 타는 여자'다.

 

그녀는 필립 말로우 소설에 등장하는 팜므파탈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어어어어무 멀다. 독자는 건들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가진 그녀가 매의 눈과 개의 코'를 가진 형사들이 쏟아낼 혹독한 과정들( 심문, 뒷조사, 알리바이..... ) 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쏠린다. 그녀는 과연 허술한 알리바이를 얼마나 치밀하게 은폐시킬 수 있을까 ?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형사들의 심문뿐만 아니라 거짓말 탐지기가 동원된 거짓말 테스트도 무사히 통과한다. 거짓말로써 형사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거짓말 테스트는 어떻게 할 것인가 ? 거짓말 테스트 장치는 거짓말을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증후를 감지하는 것(폴 에크먼, 텔링 라이즈. 71)으로써, 거짓말 시 감지되는 발한, 호흡, 혈압의 변화'를 통해 거짓말 유무를 밝힌다는 측면에서 그녀는 자기 신체마저도 속인 것이 된다.

 

형사들이 그녀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 앞뒤가 맞지 않는 "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결국 그녀가 " 앞뒤가 맞는 말 " 로 형사를 설득했다는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소설 중간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짠 트릭'을 쉽게 간파했다. 간단하다 ! 그녀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실만을 말했다 라고 가정하면 모든 의문점이 술술 풀린다. 이 소설은 독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 살인자는 반드시 거짓말을 한다 " 는 익숙한 코드를 역이용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인 그녀가 형사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면 들통이 나지만 진실을 말하면 형사를 속일 수 있는, 매우 이상한 장치를 고안했다. 그녀가 진실만을 말하니 그녀의 증언은 앞뒤가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재 수학자인 용의자 x는 그녀를 위해 수학 공식 대신 완전 범죄 공식을 만든 것이다.

 

형사는 거짓말에 능숙한 범인이 내놓는 " 앞뒤가 맞는 말 " 이 사실은 " 앞뒤가 맞지 않는 말 " 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트릭이란 기본적으로 " 앞뒤가 맞지 않는 말 " 을 " 앞뒤가 맞는 말 " 로 둔갑시키는 속임수'이니 말이다. 추리 소설은 뒤죽박죽인 트릭을 질서정연하게 되돌리는 장르'이다. 하지만 독자가 항상 뒤죽박죽인 트릭을 간파하지 못해서 골탕을 먹는 이유는 뒤죽박죽인 트릭'이 매우 정교하게 질서정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에 독자에게 쉽게 들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매번 속는다. 우리는 흔히 거짓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 보통 사기꾼들은 자신이 하는 말의 앞뒤가 어긋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이야기를 꾸민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이 조금씩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한다. ( 폴 에크먼, 텔링 라이즈, 063 ) "  가수 이은하가 < 아리송해 > 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너의 그 말이 아리송 " 하다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우리는 이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서사가 아니었던가 ?  논리적 수식으로 보았을 때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진실에 가깝다. 이처럼 진실은 깍쟁이처럼 앞뒤가 딱딱 맞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맞지 않는 구석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용의자 x의 헌신 > 은 " 앞뒤가 맞는 말 " 이 거짓말일 수도 있는 말이며, 진실은 때때로 누군가를 속여서 이득을 취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진실은 아름답거나 선명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아리송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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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4-01-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현실에서 그런 새끼 만난적이 있음.
스튜디오 지하의 창립 멤버이며...은위의 원작자 최종훈 작가를 지가 키웠고...
울 나리 만화 SF의 시작은 자신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한때 인세로 하루 술값을 몇백씩 쓸만큼 벌었다고 했죠.
지금은 사기를 당해 처지가 곤궁하고...
진주에서 제일 큰 식당을 하는 아버지가 계신데...
계모의 반대로 후원을 못받는다고...

불쌍해서 3달 방세 내줬음.

공황장애 전단계더라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06:40   좋아요 0 | URL
그런 새끼 많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결론은 그거 아닙니까.
나 왕년에 잘나갔다....
왕년에, 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단언건대 잘나간 놈 별로 없었을 겁니다.
현재의 별 볼 일이 과거의 별 볼 일입니다.

엄동 2014-01-2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얇은 두께는 아닌데 한큐에 읽기 좋은 소설이죠

와와" 무리를 두었던 그 블로거의 결말은 어찌 되었는가요

코가 길어져도 너무 길어졌을껀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06:38   좋아요 0 | URL
리뷰에 참고하려고 이 책 찾는데 어디 박혀 있는지 도통 보이지가 않네요.. 흠...
코가 너무 길어져서 제가 잘랐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1-2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왕년이나 지금이나 오덕을 향해 달려가는 덕력 보유자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오덕이란 단어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만애비 님 아예 이 참에 닉네임을 오덕왕'이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

만화애니비평 2014-01-2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오덕왕보단 오천황으로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12:45   좋아요 0 | URL
음... 그래도 오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니 오덕왕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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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

 

 

 

 

 

1. 집 앞에 고깃집'이 있었다. 손님은 없고 파리만 날아다녔다. 가게는 꽤 큰 규모였는데 손님이 없다 보니, 지나치는 나 또한 그 가게'를 보면 한숨만 나왔다. 장사했다 하면 90%는 망한다는 자영업자의 비애'가 저런 것이구나 했다.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면 내가 사는 집까지 차를 끌고 왔길래 소주 한 잔 하려고 동네 거리를 걷다가 그 가게 앞에서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파리만 날리던 가게는 웬일인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북적거리면 눈길이 가기 마련. 자세히 보니 오늘 하루만 모든 가격이 절반'이었다. 소주 또한 천 원이었다. 속으로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 사장님이 미쳤어요 - 세일 " 이거나 " 눈물의 쫑파티 " 인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어수선하다 ! 어디선가 카메라'가 등장한다. 아, 방송을 타는 날이었던 것이다. 장사가 안 되서 파리만 날리던 가게'에 방송국이 쳐들어오니 기분이 찜찜했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마땅히 술 마실 곳도 없었던 터'라 자리를 잡고 술을 마셨다. 인터뷰 요청을 하면 뭐라 해야 하지 ? 아, 아아. 아아아... 양념 소스'가 독특합니다 ( 독특하기는 개뿔 ), 가격도 저렴하고요 ( 저렴하기는 개뿔 ) 고기가 신선해요 ( 신선하기는 개뿔 ) 내 근심과는 달리 카메라와 방송국 스탭들은 우리 테이블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다. 카메라는 내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있는 단체석 두 테이블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연출을 담당한 피디'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손님'에게 몇 번이나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했다. 귀를 쫑긋 세워서 들어보니 마산에서 왔다느니, 고기가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느니, 맛이 끝내준다는 소리만 계속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

고기가 질겨서 고기를 껌처럼 씹고 있던 나는 이 방송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저런 식으로 홍보를 해서 장사가 된다면 굳이 내가 초를 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촬영은 2시간 넘게 진행된 것 같았다. 촬영이 종료되자 사장은 일일이 테이블을 돌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알고 보니 바글바글했던 손님들은 모두 사장의 친척이거나 친구들, 혹은 사장 아들이 데리고 온 단체 손님들이었다. 마산에서 왔다는 넉살 좋아보이는 청년은 바로 사장 아들의 친구였다. 이거, 참... 난처했다. 남의 집 잔치에 눈치도 없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 ?! 그리고 얼마 후에 < 트루맛 쇼 > 라는 다큐가 극장에 걸렸다.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은 모두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쇼'에도 불구하고 그 고깃집은 1년을 버티지 못했다.

 

2, 여전히 맛집 프로그램은 이 시스템을 고수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듣도 보도 못한 메뉴 하나 선보인다. (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음식 대신 푸드'를 선호하게 되었다. 같은 요리라고 해도 푸드'라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 푸드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며 퓨전'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드는 음식도 있다. 막걸리에 꿀을 타서 만든 " 꿀값하는 막걸리 " 나 양꼬치와 갓김치를 곁들여서 " 노는 양이 갓잖은 꼬치 " 라고 짓는다. 제목이 재미있으니 광고 효과를 노린 것이다. 최강 보양식을 강조하기 위해서 육해공'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름도 기가 막히다. 예를 들면 " 날지( 낙지) 못하는 닭의 한이 서린 전복 삼계탕 " 이라는 식으로 작명하는 경우다. 설명은 주인이 아니라 항상 손님이 입에 게거품 물고 말한다. " 닭은 하늘이요, 삼은 땅이 품은 보석이니, 바다를 대표하는 전복에 낙지가 더하니 임금께 진상하던 불도장과 비교할 바가 아니오. 육해공을 대표하는 보양식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오늘밤은 아내와 함께 운우지정을 나누며 방사할 참이요. " 이에 일당 십오만 원을 받고 출연한 아내는 부끄러운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호호 웃는다. 그리고 날지 못하는 닭이 품은 전복 삼계탕을 먹으러 마산에서 왔다는 소리 또한 빠지지 않는다. 침이, 고인다. " 진생 치킨 스프 "  그렇게 상품으로 팔린다. 그것은 일종의 광고효과를 위한 미끼 상품이다.

 

3. 강신주의 < 감정수업 > 은 마치 " 날지 못하는 닭의 한이 서린 전복 삼계탕 " 같다. 육, 해, 공을 섞으니 맛은 오묘하다. 구미에 당길 만한 요소는 모두 있다. 스피노자가 베이스로 깔리니 스피노자는 닭(空)이다. 세계 문학은 전복(海)이고, 그림 감상은 인삼(陸)이다. 여기에 철학자의 어드바이스'가 있으니 낙지 추가'는 덤'이다. 이렇게 섞으면 오묘한 맛이 날까 ? 순댓국에 파스타를 넣으면 맛이 날까 ? 내가 보기엔 1타 4피 같'다. 책은 1권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스피노자 입문서, 세계 문학 서평집, 그림책, 힐링 서적'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유니클로 전천후 다용도 아우터 같다. " 팔을 떼면 조끼가 되고요, 비가 오면 방수 처리된 모자가 달렸으니 우비가 되고요, 봄에는 내피를 벗기면 봄옷이 된답니다. 그리고 때가 탔다 싶으면 뒤집어 입으세요. 옷 한 벌로 두 벌 기분을 내십시요. 호호호호호. 비비드한 컬러와 아방가르드한 라인이 라이브하게 살아 있는, 이 놀라운 기능을 갖춘 제품이... 여러분 절대 놀라지 마세요. 19990원 !!!! "

강신주는 항상 자본주의가 상품을 소비하는 야만적인 방식'을 지적했지만, 이 책이야말로 출판 자본이 얼마나 매끈하게, 이음새 없이, 강신주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상품으로 뽑아낼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신주가 소개한 48권의 고전 목록은 마치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목록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민음사가 왜 이 책을 기획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20권 넘게 책을 냈지만 민음사와는 처음으로 작업한 책이 왜 하필이면 (국내 소설이 배제된) 48편의 세계 문학 소개일까 ? 강신주 입장에서는 좋은 문학을 소개하고픈 신파 역할을 하고 싶었겠지만 민음사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은 독자의 구매욕을 부추겨서 자사의 세계문학전집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구실을 하는 책이기도 하다. 윈-윈 전략인가 ?  민음사는 강신주가 소개한 고전과 이에 해당하는 자사 세계문학을 세트로 묶어서 할인 판매를 할 것이 분명하다. 감정수업'과 함께 이 책에 소개된 자사 세계문학전집'을 구매할 경우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벌써부터 누군가는 < 감정수업 > 에 수록된 책 목록을 보관함에 담아두었을 것이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이 상술은 얼마나 지적인가 ! 인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그는, 자기 스스로가 대형 출판 자본의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이다. 마당 쓸고 동전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자는 기획력으로 보자면 이 책은 훌륭하다. 하지만 깊이'는 없다. 강신주는 누누이 교과서 같은 책은 독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이 책이야말로 교과서 같다. 아니, 친절하게 어드바이스'까지 해주는 것을 보면 참고서 같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책'이 아니라 이것 저것 섞인 교과서'를 내놓은 것이다.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날을 나누어서 하루는 삼계탕을 파는 가게에서 삼계탕을 먹고, 하루는 전복집에서 전복을 먹고, 마지막 날은 낙지집에서 낙지를 먹는 것이다.  국밥은 따로 국밥이 진리'다.

 

 

 

+

벙개 함 칩시다. 내일 시간 되시면 모입시다. 수다맨 님 시간되시면 비밀덧글 부탁드립니다. 엄동 님 보실려나 ?! 행인 님도 참석 가능하면 덧글 부탁드리고, 아, 야무 님 있었지 ? ㅎㅎ. 시간 되시면 조촐하게 한 잔 합시다. 다른 분도 시간 되시면 한 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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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4-01-23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맞다 여기 빔일글이 안되구나 -_-;
안부게시판 확인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3 06:40   좋아요 1 | URL
대박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미친 영광이군요. 심장이 뜁니다....

마립간 2014-01-23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씨의 '감정수업'은 나중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겠습니다. 게다가 감정수업에 언급된 문학 작품들을 친절하게 곰곰발님이 제시해 주셨으니. (맞나요?^^)

음식 맛에 관한 것인데요. 맛은 제가 주관, 객관 사이의 간주간間主觀의 예로 가장 흔하게 드는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3 10:19   좋아요 0 | URL
간주간은 뭡니까 ? 마립간 님이 < 감정수업 > 읽으시면 아마 좀 짜증나실 겁니다. 그냥 겉핥기 식이거든요.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중학교 1학연 문학 교과서 참고사 같다는 느낌 정도 말이지요.. 흠흠...

마립간 2014-01-23 10:54   좋아요 0 | URL
간주간間主觀 ; 한마디로 표현하면 주관과 객관의 중간입니다. 엄밀성을 적용하면 세상 모든 것이 간주간적이지만, 통상적으로 주관, 객관으로 분류되지 않는 중간의 것들을 말합니다. 저는 처음 김용옥 선생님의 강의에서 들었는데, 요즘에는 여러 책에서 사용된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음식을 A는 맛이 있다고 하고 B는 맛이 없다고 합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맞고 틀리고 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입맛은 각자의 취향이니까요. 이 판단은 주관적 판단 분야에 속합니다.

그러나 어떤 음식점C의 음식은 손님 90%가 맛있다고 하고 10%가 맛없다고 하는 반면, 다른 음식점은 90%가 맛이 없다고 하고 10%는 맛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D의 음식점 주인이 우리집 음식은 맛이 있는데, 음식을 먹는 사람의 주관때문에 잘못 판단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보통의 판단은 D보다 C 음식점이 맛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객관적 판단 분야에 속하게 됩니다.

같은 음식 맛에서 주관이라고 객관이라고 하게 되는데 ; 음식 맛을 우리 나라 지역간, 국가간 비교하면 어찌보면 주관적이기도 하고, 객관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의 판단을 간주간적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는 어느 음악이 좋으냐, 어느 소설이 좋으냐, 어느 책이 좋으냐도.

저는 모든 것이 주관-간주관-객관의 연속 스펙트럼을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통상적으로 판단 분야에 따라 대강의 세분야로 나눌 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마립간 2014-01-23 11:11   좋아요 0 | URL
음식은 간주관적, 즉 주관적 부분도 상당하기에 평범한 음식( 맛)이 미디어의 홍보에 의해 맛있는 것으로 선입견이 형성되면 맛이 있는 것으로 되는 것이죠. 만화 영화 '쿵푸 팬더'에서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3 13:38   좋아요 1 | URL
오홋, 그런 것을 간주간'이라고 하는군요. 보편과 특수로 이해해도 되겠네요.
맛있다가 90%가 되면 맛 없다라고 말한 10% 는 무시하는 것은 일종의 보편적 기준에 의한 것이겠고
10%만 맛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저질 입맛을 탓하며 이런 음식이야말로 맛있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수성이라고.....

대한민국은 소수 의견을 무시하면서도
( 특권 계급의 ) 소수 의견이 절대적 권력 행사로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말도 일리가 있고 저 말도 일리가 있다는 식은 안 통하죠.
그냥 내 편이냐 아니냐 ? 아니면 종북이고, 친하면 애국이고...
식당 주인 종북 세력 운운했던 변희재에게는 간주간적 부분이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 하여튼 마립간 님에게는 아마도 < 에티카 > 가 무지 잘 어울리십니다.
엄청나게 대환호를 하실 것 같아요. 마립간님 성향하고 거의 궁합이 맞습니다.

행인 2014-01-23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요? (화들짝)

요즘 안 좋은 데가 있어 한약질하고 있습니다 ㅎㅎ 담에 날 풀리면 기회 되면요.

근데 작가님 잘 생기셔서 저는 저 얼굴앞에는 도저히 별 한 개는 못날린 다는..
적어도 세개는 줘야,,,,아니 별 네개? ㅋㅋㅋ

뻘소리 죄송요. 총총.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3 10:40   좋아요 0 | URL
그럼.. 뭐 다음에 한 잔... 빈정상할라고 하고 있씁니다.
강신주가 잘생겼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호호...

2014-01-23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3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4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4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4 00:47   좋아요 0 | URL
왜 종종 홈쇼핑에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나온 옷들있잖습니까.
대부분은 이 홈쇼핑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서 홈쇼핑용 옷을 출시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깐 시중에는 없는, 상품은 그 횸쇼핑 가격대에 맞추기 위한 특별 상품인거죠.
강신주의 < 감정수업 > 이 딱 그꼴입니다. 민음사의 기획상품이라는 거죠.
강신주는 그 기획상품에 밥숟가락하나 얹는 꼴이고요...
말 그대로 이 책은 독서일기'죠. 그것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독자들이 저자의 권위에 눌려서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2014-01-24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4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4 01:09   좋아요 1 | URL
그럼 종로 3가, 낙원동 사이에 < 참골뱅이와 노가리 > 라는 집이 있어요. 2층에 말이죠. 5호선 5번 출구쪽ㅇ로 나오시면... 네이버에 종로 3가 < 참골뱅이와 노가리 > 치면 약도 자세히 나옵니다. 6시 어떻습니까 ? 골뱅이는 먹을 거 없는데 노가리가 맛이 좋습니다. 치킨에 노가리 어떻스니까 ?

2014-01-24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4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4 14: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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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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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짐승'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좀비』는 악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일지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악덕을 설득하거나 악행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는다. 악을 권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보기보다 위험한 책은 아니다. 차라리 『좀비』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 그 악인이 되어보도록 한다. 이건 추천장도 아니고 사용설명서도 아니고 초대 편지도 아니다.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짧고 멋 안 부리는 문장 덕에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연쇄강간살인범이 될 수 있다. 그냥 미끄럼 타고 내려가듯 악의 심연에 뚝 떨어진다. 악은 이토록 쉽고 간결하고 명쾌한 것이던가, 어리둥절해질 지경이다. 악의 화신이 된다는 건 전혀 어렵지 않더라. 타인들을 입체로 보지 않는 것, 오로지 자기만 들여다보는 것, 제 욕망만을 보는 것. 단순화, 평면화, 내면화, 그리고 단절.

- 박찬욱, < 좀비 > 책 소개 글 中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을 사적인 자리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 아는 형이 아는 형 " 이 바로 박찬욱'이었다. 내가 아는 형'은 영화 감독이었고, 내가 아는 형이 아는 형 또한 영화 감독'이었다. ( 그 당시에는 영화 감독이 아니라 감독 지망생'이었다. ) 내가 " 아는 형이 아는 형 " 을 다시 만난 것은 아는 형의 병원 장례식장'에서였다. 내가 아는 형은 너무 이른 나이에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아는 형'을 화마를 잃어버린 내가 아는 형이 알고 있던 형'은 내가 아는 형의 부재 앞에서 슬퍼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박찬욱을 우연히 만났지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자격지심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원래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안 하기로 유명해서 싸가지없는 놈이란 소릴 자주 듣던 터였다. 그냥 질투와 무관심이 반반 섞인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박찬욱 영화'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열광적인 팬 가운데 한 명'이다.

< 복수는 나의 것 > 은 내가 한 손에 뽑는 걸작 리스트'다.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가 박해일에게 " 밥은 먹고 다니냐 ? " 라는 명대사를 날렸듯이, 송강호는 < 복수는 나의 것 > 에서 신하균의 손과 발을 밧줄로 꽁꽁 묶어서 강 속 깊숙이 끌고간 후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너 미워하는 거 아니란 거 알지 ? " 그리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칼로 밧줄로 묶인 발목 힘줄을 끊는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냥 둘 다, 좋다 ! 사실 박찬욱은 영화 감독이 되지 않았어도 재주가 많아서 다른 밥벌이로 성공했을 것이다.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서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박찬욱의 글'은 정성일보다 예리하고 신형철보다 뛰어나다. 신간을 소개할 때 명사의 추천글'만큼 뛰어난 광고 효과는 없기 때문에 대형 출판사에서 신간을 내면 어김없이 유명 인사의 추천글'을 내놓는다.

그런데 추천글을 읽다 보면 책을 읽지 않고 추천사를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글이 많다. 그것은 마치 유명인의 이름만 빌린 " 간장 게장 홈쇼핑 " 광고처럼 보인다. (삐에르 바야르의 지적처럼) 책을 읽지 않고도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서 추천사를 남발하면 안 된다. 전자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요령에 대한 것이지만 후자는 도덕적인 문제에 해당된다. 설령 책을 다 읽고 나서 추천사를 쓴다고 해도 남발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요즘 신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이 신형철 평론가'다. 이런 말이 싸가지없게 들리겠지만 문학평론가는 칭찬 일색인 100평 추천글을 써서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문학을 분석하는 직업이다. 100자 이내로 핵심을 찌르는 문장은 카피라이트'에게는 훌륭한 덕목이지만 평론가에게는 독이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평론가는 100미터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마라톤 선수에 가깝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 지나친 100자평으로 칭찬 릴레이'를 잇는 것은 재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나는 출판사 소개글에 인용된 명사의 추천글'을 거의 믿지 않는데 박찬욱이 < 좀비 > 에 대해 쓴 짧은 추천글'은 무릎을 칠 만큼, 아....  좋았다 ! "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 이 문장은 조이스 캐롤 오츠의 < 좀비 > 를 매우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박찬욱이 쓴 문장을 읽으며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박찬욱은 영화뿐만 아니라 글도 잘 쓰는 팔방미인'이다.

연쇄 살인자의 일기처럼 쓰여진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이 너무 단순해서 조이스 캐롤 오츠가 쓴 것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적 구원의 세계도 없고, 사드적 지옥의 현현도 없다. 망설임도 없고 후회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그냥 뾰족한 꼬챙이로 뇌를 쑤신다. 그런데 이 묘사를 조이스 캐롤 오츠는 대수롭지 않게 담담하게 묘사한다. 여기에는 죄의식이 없다. 왜냐 ?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범죄자의 시점이지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개입으로 이루어진 해석'이 배제된 채 이루어진 < 날것'> 은 박찬욱이 지적했던 것처럼 매우 단순하다.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악이라는 욕망을 < 지속 > 시키기 위해서 < 선 > 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이 행한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착한 척'을 한다.

 그러니깐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선'은 악'을 은폐하기 위한 위선(僞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이 소설은 가르쳐 준다.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짐승 같은 인간이다. 괴물과 짐승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짐승은 위선적이고 괴물은 위악적이다. 짐승 같은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악마적 본성을 숨기기 위해서 선한 척을 하지만, 괴물은 악마적 본성을 숨기기 위해서 적어도 선한 척을 하지는 않는다. 홍상수의 < 생활의 발견 > 이라는 영화에서 서로 각자 다른 인물들은 동일한 대사를 쏟아낸다. 그들은 모두  " 우리 더 이상 괴물은 되지 말자 ! " 고 말한다. 그런데 홍상수는 괴물과 짐승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 괴물 > 이란 생김새가 괴상하게 생긴 것을 의미하고, < 짐승 > 은 야만적인 인간을 비유적으로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깐 "괴물" 이 시각적 편견에 기대어 대상을 관찰한 결과라면, "짐승(같은 인간)" 은 내면적 통찰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무명씨'를 괴물'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짐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단지 생김새가 추할 뿐이다. 정작 나쁜 놈은 생김새는 멀쩡한데 내면이 추한 놈'이다.  지킬 박사의 이중적 자아인 하이드 씨'는 짐승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괴물'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늘 주장하지만 괴물'은 잃어버린 휴머니티'를 복원하기 위해 나타나는 존재'이다. 얼핏 보기에 괴물은 무시무시한 악당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신과 괴물'이 짜고 친 고스톱'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불량배를 멋지게 소탕해서 여자의 관심을 받는 남자 이야기'는 알고 보면 친구들과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다.  괴물은 불량배 역할을 하는 그 친구 역할이다.

고질라가 열불나서 " 이... 시부랄 놈들아 ! 다 부셔버리겠어 ! " 라거나  용가리가 " 용가리 통뼈 맛 좀 봐라. 인간 사람 새끼들아 ! " 라며 도시 전체를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지만, 사실 괴물들은 신이 내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내려온 액션 배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번 잃어버린 휴머니티'는 이런 식의 재난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은 복원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질라, 죠스, 용가리와 쮸쮸, 티라노 공룡'은 눈물을 삼킨 채 위악적 캐릭터를 소화한다. ( 혜성 충돌, 쓰나미, 화재 등도 괴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무생물이다. 불춤과 물쇼는 이들의 특기이다. ) 용가리는 꼬리로 63빌딩을 내리치며 눈깔을 부리부리하게 뜨지만 속으로는 슬퍼서 운다.  인간은 이처럼 재난이 몰려오면 그때부터 정신을 차린다. 불이 빌딩을 덮칠 때, 물이 도시를 점령할 때 비로소 가족이라는 가치를 깨닫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 인간의 속성이 아니었던가.  카메라가 살아남은 가족끼리 꽉 쥔 손'을 클로우즈업해서 보여주다가 이내 물러나면 폐허의 잔재가  보인다. 이 폐허는 다시 복원될 것이다.  파괴는 괴물이 하지만 건설은 이명박이 할 것이다. 그리고 재난이 끝나면 콘돔은 불타나게 팔릴 것이다. 산부인과 사업도 번창할 것이다. 이처럼 가족을 구원/복원'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명심하도록. 괴물은 악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마음 여린 액션 배우다. 반면 짐승 같은 인간'은 악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선을 행한다. 그러므로 선'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선한 선이거나 선을 가장한 악이거나 !  사실 선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선행이 지나치게 선명하거나 잘 표현된다는 사실은 선이 아니라 위선'일 확률이 높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홍상수의 말은 틀렸다. 괴물 같은 짐승은 짐승 같은 인간'에 비하면 선한 자'다.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괴물 같은 짐승이 아니라 짐승 같은 인간이다. < 자연 > 의 반대말은 < 인간 > 이지만 < 인간 > 의 반대말은 < 인간 > 이다.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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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 2014-01-0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이다, 인간의 반댓말을 인간이라는 말 좋네요. 오랜만에 오소리 입말 사전 보는 느낌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4 20:03   좋아요 0 | URL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에서 발췌했습니다. 미리 작성해 놓으니 필요할 때마다 긁어다 쓰는데 무지 좋아요.어서 오소리 입말 사전을 완성해야 하는데... 쩝...

까레이 2014-01-0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소리 입말 사전 완성 기대하겠습니당ㅋㅋ 진짜 재밌게 봤어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4 21: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서 사전을 완성해야 겠어요.. ㅋㅋㅋㅋ

비로그인 2014-01-05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내공이 느껴지는 통찰.. 정말요. 인간에게 필요한 것도, 인간을 파괴하는 것도 오직 인간 뿐.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3: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구를 위해서는 인간만 꺼져주면 되죠.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사라지면 자원 고갈도 없고, 공해도 없고, 각자 알아서들 살아갈 겁니다.
인간만 꺼져주면 됩니다. 그게 진리라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은 인간에게서 구원을 찾지만, 인간이 누굴 구원할 만큼 훌륭한 인자'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멸종되어야 함..

비로그인 2014-01-05 13:17   좋아요 0 | URL
읭~ 전 그 정도까진 아니구요~
어찌 보면 노아의 방주 은유가 차선책일 수 있겠다. 그 정도에요.

음. 요즘 곰곰발님 뭔 일 있으셨나 보다.
타르코프스키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 요 말씀은 완전히 믿진 않을래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4:45   좋아요 0 | URL
헤헤... 제가 오버했군요. 요즘 자주 오버해요.. 헤헤헤헤헤...
전 오래부터 인간이 사라져야 지구 생태계가 건강을 찾자 않나 싶습니다.
제가 너무 멀리갔어요.... 헤헤헤..

행인 2014-01-0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잘 읽었습니다. 이 책 보고 싶네요. 괴물이 액션연기하면서 속으로 울고 있다는 말이 너무도 인간적이네요 코믹하기도 하고요 ㅋㅋㅋ
요즘 드는 생각인데 싸이코패스는 죄책감이 없는것 같아요. 진정. 저처럼 회창한 일욜 오후 덜 떨어진 인간들은 심지어 guilty pleasure 따위가 있다는데 말이져..먼소리하다 갑니다 .. (터벅터벅)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4:46   좋아요 0 | URL
당연히 사이코 패스는 죄책감이 없죠. 최책감 있으면 사이코패스할 자격이 없습니다.
요 책, 분량도 적고 읽기도 편하고 쉽고 그래요....
읽기 딱입니다.....

행인 2014-01-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분량도 적고 읽기도 편하고 쉽고 ㅋㅋㅋ
고맙습니다. 새해엔 책도 읽겠습니다 아, 알라딘 상 받으신 것 축하드려요 늦었지만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5 15:5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분량도 적도, 읽기 편하고, 쉽고.. 이 3고'가 소설의 미덕이죠. 대하소설은 아주 질색임...
 
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잘 표현된 불행 ( 不行 )

 

 

 

 

 

 

나는 무늬만 목재인 것들은 절대로 쓰지 않는 구식 일꾼들을 안다. 그런 목재는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다. 숙련된 일꾼은 결심 판사과도 같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무는 대패(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나 도끼(역시 패물이 된) 아래에서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성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손으로 느꼈기에 나의 눈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문외한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 채찍처럼 질긴 " 톱밥과 " 당근처럼 쐐기꼴을 한 " 톱밥의 차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으며, " 썩은 " 느낌과 " 푸석푸석한 " 느낌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참나무건 너도밤나무건 이런 차이들은 다 고르게 있다. 하지만 실제 작업을 해본 사람들만이 그것을 안다.

 

- 조지 스터트, The Wheelwright's Shop, < 모든 것은 빛난다' >에서 발췌

 

 

 

대한민국 기독교는 기복 신앙'에 뿌리를 둔다. 내 가족이 아무 탈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신앙 간증을 들어보면 "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 는 말은 틀린 말처럼 느껴진다. 레파토리'가 하나같이 똑같다. 개과천선'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결과를 신의 도움으로 극복한다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다. 기적을 경험한 간증인은 매사에 감사요, 축복이니 할렐우야, 다.  대한민국 대표적 삐딱이'인 나는 이 거지같은 노예 근성 앞에서 눈물은커녕 콧물만 훌쩍거리게 된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를 가엽게 여겨서 선도 대상으로 선정한 후 집중 관리 대상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감동적인 설교에 감읍해서 주를 섬기는 종이 되고 싶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가르친 성자'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만 가르친 성자'라고 말하면 그것은 틀린 말'이 된다. 그는 사랑과 함께 아름답게 분노하는 법도 가르쳐준 성인'이었다.

 

그는 선동가였고, 혁명가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기독교는 이 대목은 쏙 빼먹은 채, 예수를 계룡산 뜬 구름 위에서 뒷짐 지고 설교하는 모습으로 이미지化한다. 우우, 하지 마라. 당신 입에서 와와, 를 기대한 것도 아니다. 예수가 당신의 소원 나부랭이 따위나 들어주는(당신의 간절한 소망 따위나 들어주는)  그런 하찮은 인물이라면 나는 차라리 산타클로스'를 신으로 섬기겠다. 붉은 악마 응원단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멋진 슬로건'을 내걸고 광장으로 집결했지만 4강의 기적은 간절한 기도가 응답한 결과가 아니라 홈 어드밴티지'가 적용한 오심이 결정적 이유였다. 당시에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기세가 등등했고 허세가 하늘을 찔러서 앞을 보지 못했다.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부흥 집회 때마다 간증 시간에 오르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기적'은 신이 응답한 결과가 아니다. 만약에 신이 당신처럼 보잘것없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라면 신은 당신보다 더 꾀죄죄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자식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하거나 딸이 좋은 남편감을 만나도록 기도했을 때, 신이 그 응답을 들어주느라 바쁜 잔무에 시달려서 정작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상황을 모르고 지나쳤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진짜 신앙인'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안다. 자기 자식새끼에 대한 청탁은 하지 말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기독교는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유는 行 할 수 있으면서 不行 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모두 다 아는 바,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자'이다. 앉은뱅이를 서서 걸을 수 있게 만들었고 나병 환자의 병을 치유하였으며 앞을 볼 수 없는 자는 앞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하지만 예수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채찍이 살 속을 파고들어도, 못이 손과 발을 뚫어도, 한 모금의 물이 목숨보다 간절한 순간이 와도 그는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나라면 그리고 당신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아마도 온갖 요술을 부려서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이다. 내가 이 지점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 " 예수는 < 나 > 가 아닌 < 너 > 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그런 점에서 사이비 한국 기독교 목사들이 믿음의 결과가 행복과 불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예수는 행(幸) 과 불행(不幸)'을 말한 자'라기보다는 기적을 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지 않은 < 行과 不行의 철학 > 에 대해 말한 성자'였다. 기독교의 참된 미덕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행복(幸福)을 얻으려는 욕망이 아니라 권력을 행할 수 있지만 행하지 않는 不行 에 있다. 초월적 힘을 남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예수의 깊은 뜻이었다. 성서는 " 잘 표현된 不行 " 에 대한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기적이 넘쳐나는 한국 기독교 간증 집회는 가짜'다.

 

< 모든 것은 빛난다 > 에서 저자는 호메로스를 통해서 다신주의를, 기독교를 통해서 유일신의 등장을 고찰한다. 저자가 보기에 일신주의는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부작용은 결국 니체가 신은 죽었다, 고 선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니체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은 니체가 " 신의 죽음 " 을 선언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니체는 무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다신주의'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저자는 6장 < 백경 > 을 통해서 " 우주는 인간에게 무관심하다 " 는 사실'을 읽어낸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 " 이다. 요즘 유행하는 < 응답하라 시리즈 > 로 설명하자면, 당신이 아무리 신에게 삐삐를 치고, 시티폰으로 통화를 시도해도 신은 당신의 전화를 생깐다. 그는 지구를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는 자'다. 광활한 우주를 중심으로 보자면 지구는 모래알처럼 작지 않을까 ?  

 

당신이 자꾸 " 하느님, 응답해주세요 ! " 라며 징징거린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꾀죄죄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불경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배교자(背敎者) 는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결국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신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이웃의 대부분은 노동자'다. 그러므로 노동자를 사랑해야 한다. 조지 스터트는  " 나 자신의 손으로 느꼈기에 나의 눈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문외한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 채찍처럼 질긴 " 톱밥과 " 당근처럼 쐐기꼴을 한 " 톱밥의 차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으며, " 썩은 " 느낌과 " 푸석푸석한 " 느낌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 " 다고 말했지만 배운 게 많은 놈들은 그 느낌의 차이를 허세 가득한 문장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는 있다. 대패를 만져본 적도 없는 놈들이 하는 말이니 그 말은 그럴 듯하자만 가짜다. 기적을 경험한 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훌륭한 목수가 연장 탓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패질을 하기 전에 이미 좋은 목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연장을 망가뜨리는 것은 질 나쁜 목재'이니 자신이 가진 연장이 망가졌다는 사실은 좋은 목재를 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옛날, 예수는 목수'였다. 목수의 나무 木에 손 手다. 목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가 아니라 오로지 팔의 힘으로 먹고 사는 독립적 인간이다. 그것은 신에 의지해서 징징거리는 나약한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숭고한 지점이다. 성경을 펼쳐 본다. 잘 표현된 不行'을 읽는다.   사진 속 남자는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가 배운 것은 인간 서열에 따른, 인간 관계에 따라서 얻게 되는 이득이 아니었다. 오로지 手의 힘으로  가계를 이룬 숭고함이었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 나 자신의 손으로 느꼈기에 나의 눈으로 아는 " 사람이었다. 아들은 커서 어른이 되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으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도 손으로 느꼈기에 눈으로 아는 사람'이 되었다. 건투를 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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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야 2014-01-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훌륭한 뒷태를 지닌 목수의 아들이로군요.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저 사람의 아버지는 지금도 톱밥을 먹고 사신다고 합니다. 아직도 손에서 톱을 놓지 못하시니... 이제 연세를 생각하자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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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자식이라면... 뭘 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해주는 것이 부모/신의 마음아니겠습니까...

<기복신앙 아웃>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16:26   좋아요 0 | URL
전 옛날부터 목수 = 예수'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둘 다 수 字로 끝나잖아요. 제 아버지는 칠쟁이'였죠. 만날 옷에 뺑끼가 떨어져서 옷이 완전 무지개 작업복이었죠. 옛날에는 그 모습을 부끄러워했으나 돌이켜보면
참 자랑스러운 직업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사람 등쳐서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스스로 일해서 땀의 대가로 가계를 일으켜다는 것 말이죠.
노동자가 숭고해지는 날이 오겠죠.
서울역 분신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 조롱하는 기사를 보면....
참, 이 나라는 도무지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연장을 든 손은 아름답죠. 그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이 책 시간 나시면 읽어보십시요. 매우 탁월한 책입니다. 백경에 대한 해석은 탁월함...

나탈야 2014-01-0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딩때 생각이 납니다. 가정환경조사 한답시고, 학교에서 적어오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좆같아요. 아빠 직업... 부모님 학력사항... 집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그걸 적을 내야할 때마다 무지 스트레스 였어요. 어린맘에... 부끄러웠거든요.
엄마가 그걸 적을 때면 내 눈치를 살피곤 했는데... 알어서 거짓말로 적어주시더라구요.
아빠는 중졸인데- 고졸로 적고, 직업은 목수지만- 그냥 회사원이라고 적고.
엄마는 알았습니다. 그걸 내가 쪽팔려 했다는 걸.

빌라 지하 단칸방 살 적에는, 하교할 때 우리집 앞을 지나가는 학교애들이 없는 틈을 타- 후다닥 지하로 뛰어들어갔죠. 행여 어느 친구라도 날 발견할까봐서...

근데 언젠가 홍수가 나서 피신 차 주인집 3층에 잠시 얹혀 살때는 하교해서 집에 들어갈 때 보란 듯이 당당히 3층으로 걸어올라갔더란 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17: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사한 나턀야......
전 아버지가 뺑끼 노동자였지만 어머니가 유명한 강남 복부인이셔서 아파트에 살면서 시간제 가정부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회게하시고 복부인을 부끄러워하며 종교인이 되셨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어릴 때는 이거 부모 자체가 좀 쪽팔린 존재였어요. 저도 어머니가 학교 오면 무지 창피해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노동자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한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들이 노동자라는 직업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친구 아버지는 구청 청소를 하셨는데 이 친구는 늘 자랑을 하더라고요.
하도 자랑을 해서 언젠가는 리어커 끌어준다고 새벽에 나와서 친구와 함께 친구 아버지 리어커를 끌어준 적도 있습니다.

나탈야 2014-01-0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루애님 말씀이 옳습니다. 노동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된 게 맞는 거 같아요.
세상에 부끄러운 일이란 게 어딨습니까?
조폭, 사채업자, 머 이런 거 말고 말입니다. (복부인은... 음... 잘 모르겠습니다. 악덕업자가 아닌 이상은...)
여튼.

환경미화 아저씨들이 이렇게 천대받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밖에 없을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17:24   좋아요 0 | URL
정말 작년에 홍대 청소 노동자에 대한 홍대 총학생회 응대는 정말 끔찍하더군요. 멱살 잡고 침이라도 뱉고 싶었음.
다른 나라는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어느 정도 불편하지만 지지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거든요.
주종동 새끼처럼 월급부터 얼마네 따위로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기득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부자가 구두 업장 노동자를 무시하고, 구두 매장 관리 노동자는 이마트 노동자를 무시하고, 이마트 노동자는 청소 노동자를 무시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죠. 이게 바로 그들을 먹여살리는 구조이거든요.
노동자가 노동자를 무시하고 경멸하면 박근혜의 뻘짓에도 콘크리트 지지율이 나오느깐 말이죠. 철도노동자를 경멸하는 주체는 이건희가 아니라 같은 노동자죠. 지도층은 이 구조를 우려먹으려고 할 겁니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ㅏ.

나탈야 2014-01-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업에 관하여, 귀족노조다 뭐다 임금문제를 걸고 가는 짓은, 애초 목적이 노동자 간 분열을 조장하는 책동입니다.
얼마를 받건 무슨 일을 하건 다 같은 노동자일 뿐인 건데, 거기에다가 계급질을 갖다 붙여 서로 간에 싸움박질을 하게 만들죠.
매우 몹쓸 짓.

프랑스인가? 울나라에선 대표적으로 귀족노조로 낙인찍힐 만한 <항공노조>가 파업을 해도 여타 저임금 기술노동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습니다. 이게 정상이에요.
임금의 차등은 현실입니다. 파일럿이 하나 만들어지기 위해 투입된 비용, 엄청난 경쟁률 등을 생각해 보면 고임금인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놈들은 근무시간까지 걸고 넘어지며, 임금에 딴지를 걸더군요. 그 놈들 논리로는 하루 8시간 내리 운항하고도 안정을 취할 시간 없이 다음날 칼같이 8시간 또 비행기 조종해야 형평성이 맞다는 겁니다. 승객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새끼들이거든요.

여튼.

노동자가 노동자 물어뜯는 좆가튼 현실이 이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유럽에는 국회의원들 조차 노동조합에 가입되어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개념이란 게 있어요.

울나라 국회의원들은 다 개새끼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18:00   좋아요 0 | URL
이 새끼들은 철도 노동자가 무조건 8시간 운행을 해야 그게 노동인줄 압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국회의원은 국회의사당에서 8시간씩 싸워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희외원 연봉이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제일 비쌉니다. 그런데 정작 복지는 망국이다, 라고 주장한 국가들 스웨덴 이런 나라 국희의원 월급은 한국 국회의원보다 1/2배입니다. 거의 꼴찌 수준이에요. 한국은 서민 = 노동자' 라는 걸 인식 못합니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고 생각을 안 하고 서민이라고 생각하죠.
서민이 노동자인데 말이죠. 이런 인식을 잘 세뇌시킨 걸 보면 새누리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탈야 2014-01-0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순간 <빨갱이> 인증하는 겁니다.

<노조>는 간첩들일 뿐인 거구요.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21:17   좋아요 0 | URL
노동자가 빨갱이가 되는 나라라....
이건 모든 노동자를 인민이라고 생각하는 북한과의 차이점을
잘 못 느끼겠군요.....

만화애니비평 2014-01-0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만큼 기독교가 구복신앙에 가까운 체계는 없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21:18   좋아요 0 | URL
구복신앙은 무슨 뜻인가요 ? 구할 구에 복 복이면 복을 구한다인데.. 흠흠...
같은 뜻이구만요... 구복'이란 단어도 있네요..

pB 2014-01-03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루루님 이 글 정말 좋아요! 이 글은 어떻게 스크랩 해 갈 수 없는 건가요? ㅜ_ㅜ 블로그에 담고시푸당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3 09:39   좋아요 0 | URL
음... 스크랩이라, 여긴 복사 허용 이런 기능도 없어서 저도 뭐라할 수 없네요.
그냥 긁기 하면 복사 안 되나요 ? 긁적글적....

만화애니비평 2014-01-0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복신앙이 원래 낱말이나 구복에 가깝죠. 복을 구하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3 09:40   좋아요 0 | URL
오홍, 글쿤요... 하긴 기복이나 구복이나...
 
자칼의 날 동서 미스터리 북스 93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총 맞은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은 하서 출판사에서 < 세계 추리 문학 전집 > 으로 나온 " 재코올의 날 " 이다. 발행일이 1974년이다. 당시 정가가 1700원인데, 나는 이 책을 2500원 주고 샀다. 물론 세로쓰기'다. 하지만 구닥다리'라고 해서 모양새나 만듦새가 볼품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튼튼한 사철방식으로 만들어진 양장본은 클래식한 맛이 있다. 더군다나 황변 현상으로 인해 누렇게 변색된 종이가 바스라질까 봐서 조심스럽게 넘기다 보면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눈먼 호르헤 수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착각이 드는 이유는 종이 재질이 꽤나 거칠어서 점자로 된 책을 읽는 기분이 나기 때문이다. 손끝에서 나무의 섬유질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 느낌이 좋다 ! 오래된 책이 가을 벼처럼 누렇게 변색이 되는 이유는 산성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 사용되는 종이는 중성지'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성지로 만들어진 요즘 책'은 기생오라비처럼 창백해서 광원이 직사광일 경우 눈부셔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닝기미, 어찌나 미끄러운지 종이를 넘기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질 판이다. 이미지 컷이 삽입된 사진이나 미술 관련 책이 아니라면 중성지'보다는 산성지'가 낫다. 종이 위에 손끝을 올릴 때 느껴지는 담백하면서도 건조한 촉감은 애교는 없으나 속정이 깊은 애인 같다. 더군다나 책장을 넘길 때 중성지처럼 붙지 않고 쉽게 낱낱이 떨어져서 침을 묻히거나 종이를 구겨서 넘길 필요가 없다. 또 하나의 장점은 종이 표면이 고양이 혓바닥처럼 까끌까끌해서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나면 깊이 스며들어 색이 진하다. 중성지에 그어진 밑줄이 수채화 물감으로 그은 획 같다면, 산성지에 그어진 밑줄은 유화 물감으로 그은 획 같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산성지의 수명이 500년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1974년에 발행되었으니 적어도 2400년까지는 그 모양새를 유지한다고 보면 된다. 이래저래 중성지보다는 산성지'가 책을 만드는 데 더 적합한 종이가 아닐까 싶다. 시작부터 입바람을 불어제쳐서 " 들어가기 말풍선 " 을 크게 한 감이 있다. 내 허파'가 큰 탓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1970년대에는 외래어 표기법이 " 쟈칼 " 이 아닌 " 재코올 " 인 모양이다. 20세기 표기법'은 묘하게 중절모와 클래식한 양복으로 멋을 낸 모던보이적 감수성을 전달한다. 개인적 취향을 고백하자면 이탈리아'보다는 이딸리아'라고 표기할 때 더 그 시대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그래서 조용필만 간절히 원했던 21세기의 지랄같은 편애와 표기법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창비의 표기법을 지지한다.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 " 21세기여 ! 시바, 조용필만 좋아하지 말고 나도 좀 좋아해 달라 !!! " 재코올 씨'는 킬러'다.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 프로패셔널 킬러'다. 중국 거상 왕서방도, 이탈리아 마리아치 안토니오 반들반들도, 한국 무도인 마루치, 아루치 그리고 똘이 장군의 암살도 모두 재코올 씨 솜씨'다.

 

조용필이 < 킬리만자로의 표범 > 에서 주장했듯이 고독한 사냥꾼은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직업이다. 눈 덮인 산 정상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킬러는 표범처럼 혼자'다. 오다 가다 다 만나면 텔레토비'이듯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먹잇감을 노리는 놈은 하이에나'다.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가 쌓일수록 재코올 씨'에 대한 명성은 명성을 넘어 전설이 되었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위기가 닥친다. 불란서 대통령 샤를 드골'을 암살하라는 제의였다. 그는 한동안 망설인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통령 암살은 바람난 남편을 암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 그렇다고 이 제안을 거부하면 재코올 씨가 그동안 쌓은 전설적 스펙'에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 ! 그는 곰곰 생각하다가 이 제안을 수락한다. 돈에 욕심이 났기보다는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이 위험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한다. BBC 기자로서 로이터 해외 특파원을 지냈던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그 특유의 기자질을 발휘해서 재코올 씨가 대통령 암살을 준비하는 과정을 르포 형식으로 자세하게 다룬다. 이 소설은 재코올 씨가 작업을 하기 전에 치뤄야 할 온갖 준비(잔무)를 집요하게 다룬다. 기자 정신이 발휘된 대목이다.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은 전설적인 킬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꾀죄죄한 잔무'를 생략해 버리는데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오히려 꾀죄죄한 잔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내가 무릎을 탁 하며 아, 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독자는 재코올 씨의 꾀죄죄한 잔무를 통해서 그도 먹기 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잡다한 잔무에 시달리는, 나와 비슷한 샐러리맨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어느새 시도 때도 없이 시가나 피워대는 드골의 안위보다는 재코올 씨의 성실함에 빠져든다.

 

읽다 보면 재코올 씨에게 하트 빵빵'을 날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무모한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물론 그는 실패한다. 이미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드골이 암살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실한 재코올 씨가 실패할 것이란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실패가 얼마나 성공에 근접했는가 이다. 재코올은 성공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다. 드골이 그 무수한 무공훈장을 가슴에 달았다면, 성실한 재코올 씨'는 르베르 경감이 쏜 MAT 49형 자동 카아빈 총에서 발사한 9밀리 탄이 재코올의 가슴에 훈장처럼 박혔다. 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어느새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대통령 암살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주제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이다. 범죄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스포츠 서사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아.... 르베르 경감과의 사랑'이다.  

 

그는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에서 고독하게 죽는 것을 선택했다. 오고 가다 다 만나게 되는,  텔레토비 꿈동산에서의 지루한 일상'보다는 간절히 원했으나 늘 어긋났다가 마주치게 되는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서의 운명적 만남을 원한 것이다. 오우삼 감독이 만든 < 첩혈쌍웅 > 은 피 튀기는 대결을 다루고 있지만 " 남성적 혈맹이라는 우정을 가장한 동성애적 관계 " 를 은연 중에 전파하듯이, 재코올 씨와 르베르 경감 또한 동성애적 코드가 이 작품에 스며든다. 그것은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기댄다. 그들은 꼭 만나야 한다. < 재코올의 날 > 은 그들이 서로 만난다는 전제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서사 진행 방식이다. 예상대로 대통령을 암살해야 하는 킬러 재코올과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감 르베르는 만난다. 편지 왕래'로만 알고 지내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는, 그런 만남처럼 말이다. 하지만 잘못된 만남만큼 애끓는 통증'은 없는 법이다. 그들 앞에는 짧은 만남 끝에 긴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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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3-12-20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때는 유럽이 "구라파" 였죠 -_-;
구라를 잘치는 나라들이 모여서 그랬나?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5:17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프랑스를 불란서'라고 하고,
베를린을 백림'이라고 했죠. 동백림사건은 동백나무 숲 사건이 아니라
동베를린사건'이라는 거... ㅎㅎ

르미에르 2013-12-2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행여나 이번 앨범 잘 되면 같이 영화나 한편 만들어요.
초 절정 상업적인 걸로다가...

그리고;;;

한곡 더 있어요 가사 쓰실거...;;

메인요리.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0:20   좋아요 0 | URL
정중히 사양합니다. 나중에 음악 공부 좀 하고 그때 가서
좋은 가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멋모를 때에나 덤볐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더군요...

유구일턴 2013-12-2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시보면 오히려 밀레니엄 시리즈의 3부작이 더 흥미진진합니다.

포사이드의 명작은 역시 퍼시발 모자이크죠
인생은 모자이크 짜맞추기같은 끈기와 흥미진진함에 그묘미가 있는것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1:0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전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았어요. 브루스 윌르스가 연기한 자칼은 정말 끔찍한 영화였지만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어째 자문료는 구하셨습니까 ?
의사는 진료비 30초당 얼마를 받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 이번에 책 내셨잖아요 ? 제목 좀 알려주십시요.

노이에자이트 2013-12-21 14:20   좋아요 0 | URL
아...퍼시팔 모자이크의 작가는 로버트 러들럼이죠.본 아이덴티티를 쓴 그 남자...

르미에르 2013-12-2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ㅠㅠ
아쉽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07:04   좋아요 0 | URL
이번 앨범 대박날 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칼이 신분 위장을 위해 전문가 찾아가는 장면이 자세했죠.마음만 먹으면 실제 범죄에도 응용할 수 있게 아주 세밀히 묘사했더군요.실제로 육영수 여사 암살범으로 체포된 문세광의 애독서였다고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16:25   좋아요 0 | URL
아마 저자가 기자이다보니 리얼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스럴러 소설이 가지고 있는 허술한 리얼리티를 이 작품에서는 볼 수가 없더라고요...
광장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