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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 그 사람 그 개 - 아련하고 기묘하며 때때로 쓸쓸함을 곱씹어야 하는 청록빛 이야기
펑젠밍 지음, 박지민 옮김 / 펄북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지은이 펑젠밍은 중국의 일급 작가이고 ‘그 산, 그 사람, 그 개’는 작가가 직접 각색하여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고 한다. 책 제목으로도 정해질 만큼 ‘그 산, 그 사람, 그 개’는 책에 실린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깊은 산과 강을 넘어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편배달부인 늙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게 된 젊은 아들, 그리고 늙은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걸어온 개, 누렁이. 인물의 심리묘사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글을 읽으면서도 꼭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왕복 사흘이 걸리고 중간에 산에서 이틀 밤을 보내야만 하는 배달 길, 아버지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젊은 아들이 걱정스러워 하나라도 더 일러주기 위해 설명을 계속 하고, 그런 늙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은 차가운 계곡물을 건널 때 아버지를 업어 건너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느라 가정에 소홀히 한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등에 업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와 아들의 교감뿐만 아니라 늙은 아버지의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또한 감동스러웠다. 40킬로그램이 넘는 우편물을 등에 메고 걸어서 산과 강, 계곡을 넘어 외진 곳에 사는 이들에게 우편물을 배달해 주는 일, 그 힘든 일을 아버지는 수 십 년간 적막감, 외로움, 고통과 더불어 반평생을 보냈다. 아버지의 충실하고 우직한 삶의 자세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시골 사람으로 순박한 마음과 충직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로 이주하여 휩쓸리기도 하고 변화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의리를 잃지 않는다. (‘낚시를 끊다’의 쉬허셩, ‘배움’의 왕싼 등)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엇인가 아련하고 쓸쓸한 것이지만 ‘잠’ ‘뱀과 이웃으로 살기’등 기묘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글을 읽으면 작가가 중국의 현대화 이전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시골 사람들의 순박함에 애정을 담뿍 갖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기 위해 손에 든 이후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책에 푹 빠져서 다 읽어버렸다. 좋은 문학작품에 푹 빠져서 글을 읽고 나면 꼭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삶에만 갇혀 좁게 바라보던 나의 시각이 좀 더 넓게 열린다. 중국작가의 글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좋은 책을 만나 반가웠고 작가의 다른 책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