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즉 구체적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백화점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모름지기 역사는 자기 민족에 있어 가치 있는 내용을 모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그것을 기술하는 주체자의 몫이어야 한다.
특정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주체자의 몫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8월 15일을 우리 나라는 '광복절'이라 하지만,
일본은 '패전 기념일'이라 명명하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과연 이러한 역사적 진술이 이루어졌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아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면,
1884년 일본군이 '개화당'이라는 무리들을 이끌고
궁궐을 난입한 사건을 '갑신정변'(갑신년의 정치 변혁)이라 하고,
1894년 일제가 3천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궁성을 허물고
고종을 위협하여 일제 앞잡이 내각을 수립, 우리 나라를
빼앗는 기틀을 마련한 사건인데도 '갑오경장'
(갑오년에 르네상스를 이룸)이라 했고,
이듬해, 일제는 자국군과 자객단을 구성하고, 일제 앞잡이가 된
훈련대 대대장 3인을 이용해서 훈련대 병사를 동원,
궁궐로 난입하여 왕비를 살해('시해'란 용어는 범인이 자국민일
경우)했던 일을 '을미사변'(을미년의 변고)으로 명명하고 있다.
이 사건들은 명백히 '갑신왜란','갑오왜란','을미왜란'(굳이 양보해도 '~일란') 이었는데, 나라를 빼앗기다 보니,일제가 명명했던
용어를 그대로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오도되고 왜곡된 것이 비단 역사 용어에 그치지 않고 있다.
광복 이후 우리의 '국사' 교과서가 이른바 '병도학파'(이병도 중심 학자군)의 손에 의해 제작되고 보니, 일제 앞잡이들이 각 분야에서 이른바 '개혁','선각자' 세력으로 기술되고 말았다.
'이병도'가 누구인가? 그는 '이완용'의 동생이자,합방 때 '남작' 작위를 받았던 '이윤용'의 친증손자가 아니었던가!
매국노의 후손이 중심이 된 국사 교과서가 올바르게 기술되었으리라고 믿을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독립유공자 공훈록'(1986.국가보훈처)의 내용도
자신이나 가족의 삶보다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국한 순국선열보다는, 일제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 온
인사나 국내의 몇몇 지식인들이 학당을 세워 학동들을
가르친 것을 더 높이 평가하여,
책의 전반부에 수록하고 있는, 실로 후손들을 대하기가
부끄러운 모습이 오늘날의 실정이기도 하다.
나라를 잃어 버렸기에 정리하지 못한 우리의 과거사는,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올곧은 삶'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은 어떤 분이며,
어떤 무리가 매국한 대가로 일본 귀족의 작위(76명 받음)를 받았고, 은사금을 받아 치부했는지를 광범위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의병을 "비도(匪徒)", 의병장(義兵長)을 "비도수괴(匪徒首魁)"라 호칭하면서,의병 토벌을 했던 일본군을 칭찬했는가 하면,
"일본 화폐를 사용하자"
"조선 최고의 정치가는 이완용이다"
"동양 최대의 정치가는 '이등박문'이다"
등을 외친 일제 앞잡이 신문, "독립신문"(필립 제이슨 ㅡ서재필의
귀화명)과 일제 앞잡이 단체였던 "독립협회"도 거짓의 탈을
벗길 때가 왔으며,
진실을 왜곡한 학자들(?)도 양심 선언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916년 매국노 부호들과 일본 유력자들의 단체였던
'대정친목회'(회장 조중응)의 기관지로 창간되고,
'백작 송병준'이 사장이었던 "조선일보", 이완용보다
높은 작위를 받았던 민족 반역자 -'박영효 후작'
(이등박문이 통감 시절 후작이었음)이 창간한 "동아일보"의
내용도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물론,일제가 말한 "대동아 공영"이란 것에서 따온 "동아"라는
의미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역사는 자국민의 올곧은 삶이 녹아 있는 응결체여야 한다.
역사를 하나의 집에 비유한다면, 지붕이 새고, 기둥이 비틀어진
집을 지붕만 고치고 페인트 칠로 단장한다고 보금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매국노의 후손을 처벌하거나 차별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한말의 역사,일제 강점기 때의 우리 민족의 삶을
포괄적으로 살펴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