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1
S. N. Goenka 지음, 윌리엄 하트 엮음, 담마코리아 옮김 / 김영사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달에 1년 간의 일본 교환학생 생활을 마쳤다. 일본은 거리 상 가까운 나라지만 타지에서 홀로 보낸 1년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자취를 하며 몸이 많이 부실해졌고, 덩달아 마음도 약해졌다. 한국에 돌아온 요즈음의 관심거리는 나 자신의 치유다. 나의 괴로움이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심리 상담은 물론 요가나 명상 등을 찾던 중 '위빳사나 명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접 참여하기 전에 위빳사나 명상이 무엇인지 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를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읽고 마음의 평화나 안정을 찾지는 못했다. 애초부터 책 한 권을 본다고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기대조차하지 않았다. 내면의 행복을 찾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이해되었다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추상적인 설교의 끝에 분명한 길을 제시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내면의 평화를 원한다면 걷기를 시도할 가치가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상을 과학적이지 않고, 심지어는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특히 심리학을 전공으로 배우면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심리학과 종교나 명상의 차이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다.

우리는 실제로 감각에 반응하고 있을 때, 스스로 외부의 현실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감각은 우리의 지각에 의해 조건화 되고, 우리의 반응에 의해 조건화된 것입니다.


  사용하는 단어는 다르지만 학교 심리학 전공 수업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같다. 물론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그리고 악의적으로 이용될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 병이 있어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과학적인 증명'이 없어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몸의 모든 입자, 마음의 모든 과정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순간 이상 남아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고,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고정불변의 그 어떤 것도 없으며, ‘나’ 또는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 ‘나’는 실제로는 그저 항상 변하고 있는 과정의 복합체입니다.
   그러므로 명상가들은 또 다른 기본적인 실제인 아낫따, 즉 진정한 ‘나’라는 것은 없으며 영원한 자아나 에고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헌신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아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과정들의 복합체로 이루어진 일종의 환상입니다. 몸과 마음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탐구하면, 절대불변하는 응어리나 변화를 겪지 않는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무상의 법칙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변화하는 일반적인 현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실제가 명확해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무엇인가에 매달리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만간 매달렸던 그 무엇인가가 사라지거나 이 ‘나’란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책의 원제는 <The Art of Living: Vipassana Meditation: As Taught>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책의 제목인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보다 원제가 더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그대로 이 책은 생각으로 행하는 삶의 기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깊은 것은 영원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있는 과정의 복합체라고 말한다. 항상 변화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완성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가르침이라고 느껴졌다. 우리의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한 계속된다. 이렇게 끝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괴로움의 시작이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끝이 없다는 것이 희망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고, 살아가면서 이런 어려움들이 또 반복될 것이라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모든 것이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수행을 한다면 평화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생겼다. 

  앞이 캄캄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봤자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많은 손길들을 뿌리쳤다. 이기적인 줄 알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희미하더라도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희망의 길이다. 길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내가 걷게 될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길을 찾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각자가 섬이 되어라. 자신을 안식처로 삼아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를 안식처로 삼아라. 그 외에는 어떤 곳도 안식처가 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반역실록 - 12개의 반역 사건으로 읽는 새로운 조선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사’, ‘조선왕조실록’, ‘역사 붐’, ‘역사 덕후’, ‘역사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등 나와는 거리가 먼 말들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역사 무식자다. 의무교육으로 국사를 배웠지만 역사 자체에 흥미가 없어서 억지로 암기해서 시험을 봤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역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요즘은 취준생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공부한다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해 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도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의 리뷰가 도움이 되는 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창피해서 말은 못하지만 역사에 대해 지식도 관심도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테니까.

  나는 독서를 할 때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책일수록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면 접근하기가 조금 수월해진다. 어려운 상대일수록 탐색전이 긴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도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히 읽었다. 이 책의 목차는 이렇다.

1. 고려의 마지막 역적이성계

2. 아비의 역적이 되어 용상을 차지한 이방원 

3. 이성계 복위 전쟁에 나선 조사의

4.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태종의 처남들 

5. 영문도 모르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심온 

6.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7. 6진을 기반으로 조선을 차지하려 했던 이시애

8. 역적의 오명을 쓰고 죽은 남이 

9. 시대를 잘못 만난 재사 정여립 

10. 자기 꾀에 걸려 역적으로 죽은 허균

11. 천하를 삼일 동안 호령했던 이괄

12. 경종의 복수를 위해 반역한 이인좌와 소론 강경파

  1장의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이니 아무리 역알못(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라도도 대강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그리고 2장 이방원의 이야기와 6장의 수양대군도 꽤나 익숙하다. 특히 이방원은 드라마 <대왕세종>으로, 수양대군은 <공주의 남자>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아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거나, 들어본 적은 있지만 반역이라는 키워드와는 매치가 되지 않는다.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던 허균이 반역실록에 실린 것은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탐색전을 끝내고 본문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역시나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어려운 것이 많기도 하고 에세이나 소설에 비해 문체도 딱딱했다. 그리고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이해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서술 방식이 익숙해지고, 안에 있는 진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9장의 정여립 사건과 10장의 허균 이야기에서는 너무나 재미 있고 흥미진진해서 사극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간략하게 저자의 생각을 서술하며 끝을 맺는데, 이것이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 붙이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니다. 다음이 9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렇듯 정여립 사건은 동인 정권이 밀려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 까닭에 이 사건을 서인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해도에서 정여립의 반역을 고변한 사람들 대다소가 서인 세력이고, 황해도에 율곡의 제자가 많았기 때문에 서인들에 의한 조작설을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 듯하다. 또한 정여립이 어리석지 않았다면 스스로 왕이 된다거나 전주에서 왕이 난다는 말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기록들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여립이 반역자로 몰린 배경엔 스스로 그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대동계를 조직하고, 스스로 그 수장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역도로 의심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나 관리가 아닌 자가 세력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의 형제들이나 주변의 지인들까지 그가 반역을 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으니, 정적들이 그를 역적으로 몰아가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지식과 신분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기반으로 대동계와 같은 자생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기반으로 관군조차 제대로 물리치지 못하던 왜구를 막아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백성들에겐 영웅적인 인물이었던 셈인데, 시대를 잘못 만난 까닭에 영웅이 아닌 역도로 몰려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반역이라는 사건을 통해 접근하면서 그저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조선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술술 읽혔으니,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글쓰기 (특별판)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여름 날 떠나는 피서와 같은 책


서평을 쓰기 전,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관련성을 찾아보면,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샤이닝>을 매우 좋아한다는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골랐느냐고? 그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소설을 히트 시킨 스타 작가이다. 그런 작가가 말하는 독자를 유혹하는 창작론이라는데,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도 검증된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 이런 단순한 계기로부터 읽게 된 책인데,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즐겁게 읽었다.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이 지루하지 않고 이렇게 재미 있다니, 과연 이름값을 하는 작가다.


무언가를 잘 하는 요령을 알려 주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람마다 가진 소질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법이 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듣는 사람이 그 방법을 실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내 앞에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적더라도 뒤 돌아서서 뭐야, 별거 아니잖아하며 무시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거만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들을 알고 있는 저자는 직진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우회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말한다. 솔직하고 화끈하다.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라고 말하며 글을 쓰는 것에 너무나 치중해서 삶을 망치는 것을 경고하면서도, 경박한 마음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한다. 진지하게 글쓰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장 책을 덮으라는 단호함마저 보인다. 그런 그가 밝히는 비결은 결국 즐거움이다. 뻔하지만 자신이 정말 원해서 쓰는 글이 그의 비결이다. ‘창작이 곧 삶은 아니지만,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 독자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며 글을 쓴다.


굳이 촌스러운 비유를 하자면, 여름 휴가 같은 책이다. 지루하고 따분한 정보 전달 목적의 글쓰기 법 강의 책이 아니라, 바닷가에서의 피서와 같이 유쾌하고 시원한 책이다. 그러니 무더운 여름에 불쾌 감정 지수가 상승하고 있다면, 이 책 속으로 휴가를 떠나기를 권해본다. 그리고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읽고 쓰기 시작하자. (다만, 우습게도 이 책을 다 읽고도 그의 소설을 읽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영화 <샤이닝>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즈음에는 인생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말이야…” 혹은 내가 살아온 삶은 말이야…” 라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꼰대라거나 진지충’, ‘설명충등 재미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특히 어른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한다고 뒤에서 욕을 듣는다. 하지만 인생을 논하는 것이 그렇게나 기피해야 할 일일까?
 
  저자는 인생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생을 말하는 것은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을 숨김 없이 말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도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논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너무나 각박한 세상이다. 먼저 길을 떠나온 사람의 표지판이 없다면 다음에 떠나는 사람은 헤매고 만다. 앞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여행자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더 지혜롭게 인생의 길을 걸어 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 위해서 앞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앞서 떠난 사람들은 경험이라는 소중한 열매를 다음 사람에게 전해줘야 한다. 1950년대에 쓰여진 이 수필집은 그러한 따뜻하고 소중한 열매를 담고 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두 부분을 뽑자면, 청년에 대한 충언과 유한과 무한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청년에 대한 충언 부분이다.

 청년기란 여러 가지 복잡한 사실과 마음의 변동이 많고 생활의 폭이 넓은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마음의 방향,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이 항상 우리들을 채찍질하고 있어, 한 가지 일에 전 열정과 뜻을 퍼붓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과 불건전에 이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그러므로 젊은 시절은 무엇보다도 근면한 시절로 보내야 하며, 많이 배우고 귀한 것을 얻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사교, 접대, 회합 같은 일을 배우는데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 중에는 때가 오면 저절로 알아지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무가치하고 대단치 않은 일 때문에 긴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건전한 지식, 일생에 도움이 될 만한 독서, 필요한 외국어 같은 것을 배우며 자기의 것으로 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청년들은 언제나 생활의 폭이 넓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위치가 극단에서 극단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다.
...
이렇게 성자에서 타락한 인간 사이를 몇 번이나 왕래하는지 모른다.
...
그렇기 때문에 청년기는 극단에서 극단까지라는 마음의 위치와 본성을 미리 알아 조심하는 편이 좋다. 어제 아침에는 성자가 되고 오늘 저녁에는 악마를 자처하는가 하면, 정의에 생명을 던지면서도 악에 즐거운 웃음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젊은이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정과 무한한 능력의 청년기는 곧 지나간다.

  1950년대에 쓴 그의 ‘청년’에 대한 고찰은 2017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매일 걷잡을 수 없는 열정과 불안함에 시달리며 극단에서 극단을 왕래한다. 어제 단단히 결심한 것이 오늘 바뀌고 그런 나의 변덕스러움을 한탄하며 또 좌절한다. 이러한 불안정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힘겹고 지친다. 저자는 한 발 앞서서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그러한 청년기는 곧 지나간다고 충고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충고를 받은 사람이 ‘아, 그렇습니까? 역시 시간이 약이군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동받지 않을 것을 잘 안다. 저자도 청년들의 반응을 예상한다. ‘아니, 당장 해결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인데 기다리기는 어떻게 기다리라는 거야’라고 불만을 제기할 것을 알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요동치는 자신을 반성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무엇보다도 근면하게 보낼 것을 충언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니냐고? 그렇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하고 있지 않으니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한과 무한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왔다가 가는 것같이, 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얼마의 시간을 살다가 죽으면 그뿐 아닌가. (중략)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무의미한 것이며, 우연한 존재의 찌꺼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을 돌이켜본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 귀하고 절대적인 일도 없다. 내가 있으니 저 푸른 하늘, 넓은 대지가 의미가 있고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만일 내가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후략)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와 의의를 가지려 하는 것이 인간이며,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인간적 존재의 의의는 언제나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작은 의식이 광대한 우주가 차지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지극히 작은 정신은 이 세계가 소유하는 것보다도 더 깊은 문제를 간직하고 있다. 파스칼이 “우주는 나를 생각할 수 없어도 나는 우주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우주보다도 위대하다”고 한 말이 바로 그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인간 존재의 특수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첫째로 인간은 언제나 유한과 무한의 접촉선상에 살고 있다. 보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인간은 언제나 유한의 울타리 속에 살면서 항상 무한을 기대한다. (중략) 유한에 머물면서 무한을 얻고 소유하려 하는 데 모든 고통과 불행, 그러면서도 향상과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시간 속에 살면서 영원을 그리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후략)
오늘의 대표적인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은 무에서 와서 유를 잡으려 애쓰다가 무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운명 밑에 놓여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한, 우리는 확실히 유이다. 무시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온 곳이 무인 것처럼 가는 곳 또한 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에서 유로 향하는 처음 과정을 우리는 ‘생’이라 불렀다. 이 세상에 내가 탄생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는 마침내 무로 끝나게 마련이며, 우리는 생존에서 무로 가는 과정을 죽음이라 부른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무로 향하는 과정이다. (후략)

  나는 인간은 갈대와 같다라고 한 파스칼의 생각에 크게 공감한다. 그만큼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자주 느낀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위대한 점이라고. 자신이 가진 모순을 아는 것이 호기심과 탐구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인생이 무로 향하는 과정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무로 과는 그 과정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촉구하는 저자의 글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이 단순히 한 때에 유행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사랑 받는 이유는 이러한 인간의 생에 대한 깊은 고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미리 경고하자면 처음 책을 펴면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마치 캠퍼스에서 가장 낡은 강의실에 앉아서 원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노()교수님의 강의는 조급하면 안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빠져 들고, 그 정수는 뒤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논하는 책 같지만, 유한과 무한, 신앙, 마지막에는 연애와 사랑까지 범위를 넓힌다. 이런 주제 하나하나를 생각하는 저자의 사고에 공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다 보면 어느 새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어렵지만 친근하게 읽히는 책, 깊지만 따스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