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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
아르눌프 지텔만 지음, 구연정 옮김 / 예담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돈주고 샀다면 울었을 것이다. 돈 개념이 없다고 점장이에게 야단맞고 돌아오는 나이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책값에 가격대비 허름한 내용에 울었을 것이다.
저자 아르눌프 지텔만은 스스로를 경건한 무신론자라고 부른다. 모르겠다. 끝까지 안 읽어서. 어쩌면 그는 자기네 나라에서 오래 믿어온 크리스트교에 대해서는 경건할 수도 있겠다. 이 자는 경건하다는 말의 뜻을 모르는 자다. 아님 번역자가 '경건'이라는 어휘에 해당하지 않는 단어를 '경건'으로 번역했거나.
저자는 도교에 대해 설명하고 불교에 대해 설명하고..... 여기까지 보다 말았다. 경건? 도무지 어디가 경건한가. 그는 그저 서양인으로서 자신이 아픈 동안 요리저리 섭렵한 조막만한 지식을 이리저리 비판적으로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비판과 믿음 사이를 오갈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늘 믿음이라고 믿는다. 종교를 경건하게 바라보려면 마땅히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음 문장에서는 그 믿음과 그 믿음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지만, 그 전 문장에서는 그 내용을 믿었을 때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리라.
게다가 내용 역시 정확하지 않다. 이유는 그의 지식 섭렵이 편벽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 짧은 지식에 비해 볼 때도 그의 지식은 몹시 편벽되었다 느껴진다. 우리 역사, 백제가 일본에 공물을 정기적으로 보냈다는 식의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에 대해 서양에 그토록 많은 원본 번역이 있건만, 이 자는 그저 일본 불교의 몇 쪼가리, 그 일본 불교의 몇 쪼가리 앞 부분에 나왔을 불교에 대한 총론 정도 밖에는 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일본의 생리를 닮았거나 배웠거나 타고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글을 읽으며 들었다. 무언가 비관적이고 무언가 틀을 깨지 못하는 범속함.
뒤를 안 읽었으니 그가 크리스트교를 어떻게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만일 뒷부분의 내용이 훌륭하다면, 그에게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무지 세계의 종교란 걸 알기나 하는가. 아님 종교 자체에 대해 뭔가 읽을 만한 말이라도 해주든지. 쯧.
따지고 보면 잘못은 병석에서 일어나 새 마음으로 어줍잖은 글을 쓴 저자보다 그 책을 번역 출판한 예담 출판사에 있는 것도 같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덥석 책을 보려고 한 내게 있는 것도 같다. 흠. 그래도 나는 200원만 썼으니까...... 라고 변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