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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 잠이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책을 찾았다. 스피벳을 읽기 시작한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두번째 아침은 없었다. 이틀이면 읽기에 충분했으니까. 도통 이 책을 읽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질 않았다.
읽고 나서도 스피벳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있다. 실은 도서관 책이라 일주일 남짓 지나면 가져다 주어야 하는데 아쉽다. 한 권 살까?
아주 많은 것이 들어간 소설이다. 과학과 일러스트, 소년소설다운 모험, 약간의 환상(과학적으로 해석되다마는),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 죽음, 성공 등등.
모험과 환상이라는 부분이 좀 약하긴 하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이 가진 옥의 티라고나 할까. 서사 중심으로 이 소설을 읽을 때 중심 서사가 여행과 모험이라고 보면 실패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주인공이 처한 마지막 문제,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에서 빠져나가기는 얼핏 유치할 만큼 단순하게 해결되며 비밀 결사 역시 그저 그런 소년 소설의 그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책을 잊을 수 없을까? 이 책의 울림이 계속 내면에서 울어대는 느낌. 그리하여 엄청나게 오랫만에 리뷰를 쓰도록 만드는 책의 향, 힘.
아름다운 문체? 그렇다.
강력한 아우라? 하나마나한 소리, 내가 보기엔 당연하다.
듣도보도 못한(나의 일천함이란!) 제도사란 직업? 그렇다.
티에스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이성과 감성, 과학과 서사의 이상적인 만남? 그렇다.
따지고 보자니 그랬다. 제도사가 하는 도해 작업은 단순한 그림, 도표가 아닌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을 관련시켜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그랬는데 내 표현 그대로의 표현은 물론 아니다.) 이것은 상상력의 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상상력 또한 서로 관련 없는 것들을 관련시켜 생각하는 힘이니까. 비유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을 가져올수록 참신한 것이니까.(물론 물론 설득은 되어야죠)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이성과 감성, 과학과 서사의 이상적인 만남을 이루어 그 감동이 더욱 설득력있게, 더 큰 파장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가족 관계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 역시 깊은 감동을 불러오며 그저 그런 소년 소설 수준에서 작품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띄워 준다.(소년 소설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고요, 끙끙, 그저 그런!)
어머니가 자신의 성공을 질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주 당연하게 할 수 있는 티에스가 애처로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성숙한 아이인가. 주변의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줄수 있는 티에스는 역시 천재.
만능의 도깨비 방망이로 뿅!하고 해피엔딩으로 돌입한 결말이야말로 저자를 자포자기 상태로 만든 주범일 테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정말 사랑스럽다. 매주 이런 책을 한 권씩 읽을 수 있다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훨씬 행복해질텐데. 끙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