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왜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나 그림책 보물창고 27
잰 브렛 글.그림,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쓰고 있는 원고가 동물에 관한 것이라

관련된 참고문헌을 한참 읽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물을 키워드로 하는 세계사가 주제다.

이를 테면 늑대가 개처럼 길들여지기 시작한 선사시대에 주목한다든가, 중세 쥐와 벼룩이 옮긴 흑사병... 이런 식으로 동물이 인간사에 끼친 영향을 세계사의 주요 장면 위주로 살피는 것이다.

물론 책의 관점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다.

작업을 하면서 이점이 내게는 약간의 빚처럼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동물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다면 완전히 다른 책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제는 "세계를 바꾼 동물"이지만 동물이 주체적으로 우리 세계를 바꾸었다기 보다는 인간에 의해, 인간의 의지대로 이용된 동물들이 세계사의 순간 순간 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나라에는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동물 관련 연구 자료가 그다지 많지 않아 참고도서 대부분을 영미권 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의외로 참신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들이 꽤 있다.

연구자들이나 인문학 마니아들이나 읽을 법한 책들이지만 그렇게 한정된 독자를 만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만날 때도 있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이 책 "개는 왜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나"가 우연히 눈에 띄었을 때도 무척 반가웠다. 어린이책에서 근현대사, 아니면 중세까지만 해도 관련된 책이 많지만 자료가 빈약한 선사시대와 고대에 관한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책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

게다가 그것을 그림책이라는 장르에서 시각적인 재현까지 함께 한다는고 생각하면 출판하는 주체 입장에서 기획 단계부터 어려움에 무릎이 벌벌 떨리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젠 브렛이라는 작가는 그것을 해냈다.

젠 브렛의 전작 "장갑"이나 "9번 죽었다 살아나는 고양이" 을 읽었을 때는 사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펼친면을 액자처럼 활용하는 전개, 그리고 그 액자의 테두리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장식으로 활용하는 그림 스타일이 답답하게 보였다. 한 장면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는 것처럼 보여서 부담스럽고 성인 취향에 가깝다고 치부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느낀 감상이 조금 바뀌었다.

인간이 늑대를 길들이기 시작한 계기를, 킵이라는 소년과 한 마리 늑대와의 만남이라는 에피소드로 압축하여 들려주는 줄거리에서 이야기의 힘을 느꼈고, 지식-정보와 스토리텔링을 압축시켜 하나로 만드는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더구나 이제까지 내가 뻔하다고 생각했던 액자식 구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액자 테두리를 장식한 그 모든 요소들이 이야기와 관련된 시대의 유물이며 아이템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고 메시지를 전하도록 설정한 것에 깜짝 놀랐다.

나는 흔히 '깨알 같은 재미'라고 표현하는 디테일은 어린이 그림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유희라고 생각한다. 진 브렛의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주된 이야기 흐름과 평행되게 디테일의 개별적인 이야기와 정보가 독자들을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이끌어 간다.

이 그림책이 사실 fact과 이야기 story라는 두 개의 선로로 동시에 달려가는 기차라는 것을 인식시키며, 기차가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그곳이 지식을 통핸 새로운 깨달음과 훈훈한 이야기가 동시에 '감동'을 만들어서 공명하며 더 크게 울려 퍼진다.

그림책 작가는 마치 수공업적인 장인이 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을 한길로 밀고 나갈 때 그 안에서 자기만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진 브렛은 잘 보여 주었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원제인 first dog을 지금의 제목으로 한 것이 잘한 것일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원제는 야생성을 버리고 인간에게 길들여지기를 선택한 최초의 늑대, 아니 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는 '개'라는 이름이 짖고, 꼬리를 흔드는 행위를 지칭한다는 것까지 보여준다. 원제는 개와 늑대의 결정적 차이이기도 한 행동양식이 나타난 극적인 순간에서 나온 진주 같은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문장형 제목을 쓰자 그런 효과는 반감되고 이 책이 질문-제목-에 대한 답을 하는 답안지랄까,

역사 교과서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적절한 다른 한글 제목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본문을 잘 번역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고 중요한 일이지만 제목을 잘 옮기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용의 눈동자 그려넣기, 화룡점정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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