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 알츠하이머병이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솅크 지음, 이진수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어떤 필자가 수년간 조사하고 취재하고 관련서적에서 알게 된 것들이 녹아들어있는 책을 읽는다는 건 가끔 즐거움을 넘어서 감격인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실들이 건조하고 재미없게 진열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머감각있거나, 아니면 인간미가 느껴지는 따뜻한 문장으로 엮여있을 때는 더더욱 감동적이지요.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도 제게 그러한 책 중 하나입니다.

전체 17장 중에서 지금 12장까지 읽었으니까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의 글이, 게다가 책의 성격상 의학계의 전문지식이 빠질 수 없는 이 책이 이렇게 빠르고, 쉽게 읽힌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요. 이 책은, 이제는 암 등과 함께 미국인 사망 원인의 3대 질병으로 다뤄지는 알츠하이머 병을 의학계의 눈으로 또, 그 질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마음으로, 사회-철학-역사-문학의 다양한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쓴이의 해박함 없었더라면 어찌 미국의 유명한 대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이 질병을 앓았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으며, 마크 트웨인이 이 도도하고 오만한 시인에게 날린 조소가 만찬장을 얼마나 썰렁하게 했는지 그러한 에피소드까지 알수 있었을까요? 또 ‘리어왕’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셰익스피어 이전에도 숱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지만 셰익스피어만이 리어왕의 모티브에 노환, 노망기, 치매를 연결해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비극으로 형상화 했음을 알게 된 것은 물론이고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분야의 이야기들을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주제에 네트워킹 하는 필자의 능력 덕분인지, 저 역시도 몇몇 곳에서 따로이 알고 있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일례로 40쪽에서, “스튜어트 리틀” 덕분에 다시 읽고 있는 “샬롯의 거미줄”을 쓴 엘윈 브룩스 화이트도 1984년 치매로 고통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1985년 10월 그가 사망하자 부고란에 알츠하이머 병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비공식적으로나마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나타난 증세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다발경색성 치매라 추정해 볼 수 있다 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의 연구를 둘러싼 학계와 제약회사 간의 정치적인 다툼을 이야기하는 203쪽에선, 오귀스텡 모렐이 ‘퇴화’라는 개념을 발표해 결과적으로 인종차별과 인종청소를 뒷받침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즉, 진화가 적자생존을 돕는다면 반대로 진화에 부적합한 특성들은 단순 대물림되는게 아니라 후대로 갈수록 더욱 증폭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람직하지 못한 유전적 특성과 그런 특성을 가진 인간은 그 자체로 질병이고 그러므로 근절해야한다는 주장을 했던 거지요. 정신질환 같은 정신적 질병은 물론 매부리코, 구개열 등의 신체적인 기형의 자료를 사례들을 증거로 제시했답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삐뚤어진 -과학적 근거도 없는- 모렐의 주장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와 합류해서 그 결과 독일에서는 1905년 ‘인종위생학협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유명한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트도 1940년 나치의 정책을 옹호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지닌 불순 요소들을 말살하기 위해 최고 엘리트츠의 건건한 본능에 의존해야 한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동물 권리에 관한 책, “동물의 역습”에서 나오는 “동물실험 반대” 사례도 이 책에서 만났습니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을 가진 동물은 없으므로(그만큼 고도로 발달한 뇌를 가진 동물이 없으므로) 인위적으로 그 질병을 가진 동물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했다 합니다. 그 결과 1996년 미네소타 대학의 신경학과 교수 캐런 샤오는,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으로 추정(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불명)되는 베타아밀로이드=플라크를 과다하게 가진 생쥐를 만드는데 성공했답니다. 1999년 동물권리 옹호자들이 이 실험실에 잠입해서 동물들의 탈취하고 연구 장비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동물운동가들의 노력은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고 유전자 형질전환기술은 이후에도 가열차게 진행되어 갔다고 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훌륭한 저술활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입장에서 이 책은, 나와 가족들에게 노화와 함께 찾아올지 모르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정체모를 손님을 소개해 주는 필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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