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말이지만 일본 작가들은 내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그의 작품을 몇 권이나 읽고도 같은 작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인데 책날개를 통해서 확인해 보니 나는 어느새 그의 책을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해서 서너 권 읽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이번 책 "명탐정의 규칙"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지루하게 읽은 책 같다. 추리소설 작가가 느낄 고뇌와 애로가 메타적인 관점에서 드며나며 블랙코메디처럼 펼쳐지지만... 재미없다. 늘 소설 습작을 몇 장 휘갈기다 버리고 마는 만년 습작생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미 장르소설이란 구태의연하고 전형적인 틀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그 책을 읽거나 사는 독자들은 바로 그 뻔한 전형을 즐기고 싶어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을 상대로 그러한 글쓰기의 어려움을 가지고 말장난을 한다는 것은 좀... 물론 이런 작품은 그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기에 패로디와 비판정신 등 바로 그러한 단어와 함께 거론되며 분명히 그 존재를 강하게 어필하겠지. 그럼에도 왠지 "같은 꾼들끼리 이러면 안 되지."하는 양아치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와 독자 양쪽이 뻔하다는 그 규칙을 알고 있더라도 그 규칙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요즘은 웬만한 머리로 작가하기 힘들다는 비겁한 앓는 소리로만 들리는 걸 어떻게 해. 게다가 게이고 같은 날고 기는 작가가 투정과 변명을 한다면 더욱.... (아, 혹시 그럼 나같은 얄팍한 대중소설 독자가 아닌 추리소설마니아들에게는 이 책이 정말 신선하고, 새롭고, 지적인 시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 아, 모르겠다. 나는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된 얼뜨기 독자라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