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전진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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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가끔 지하철에서 만난다. 조용한 지하철에서 자기의 광신을 자랑하다 못해 다른 사람에게 저리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 아닌가. 울화가 치민다. 

그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들이 그렇게 두려워 하는 지옥행, 믿음의 담보로 삼는 검은 협박장 지옥행.... 그 지옥은 사후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 있다고 말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지옥, 전쟁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통일' 책을 편집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 하지 못하겠다. 전쟁을 주제로 한 단원에서 그림, 사진 자료를 찾느라고 관련 책을 한참 뒤지는 중이다. 글로 된 텍스트도 읽기는 하지만 화가에게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은 주로 사진이나 동영상.  

조금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일은 쇼크에 가까운 충격을 준다. 번쩍하는 섬광 뒤에 살과 뼈가 비누처럼 녹아내리고, 그 냄새는 마치 오징어를 굽는 것 같았다는 증언, 유령처럼 흐물흐물해진 사람들이 넋을 놓고 앉아 있는 피폭 직후의 히로시마 사진, 흙바닥에 내팽개치듯 버려진 작고 가느다란 어린이의 팔다리, 회색으로 빛을 잃고 치켜뜬 눈동자, 학살 당시의 순간을 보여주듯이 줄줄이 꿰어진 해골들, 폭탄에 맞아 왼쪽 눈알이 빠졌는데도 아픈 줄도 모르고 무서워 그냥 잡아떼 내버렸다는 아이.... 피폭으로 문드러진 젖가슴이라도 물려서라도 살리고픈  새끼들, 어미들, 남자들, 주검들...

이것들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이 지옥은 믿음이 올곧은 교인이든 불신자든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내려지는 유황불이거들, 이보다 더 끔찍한 나락이 어디에 있을까? 게다가 이 지옥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가까이서 혹은 조금 멀리서.  

죽어서 지옥에 가는 걸 두려워 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옥은 이곳에 있다고. 이 지옥을 만든 것이 우리라고.  지옥에서 죽고 싶지 않다면 이 땅을 전쟁이 없는 세상으로 만드는 게 맞다고. 전쟁이 없는 세상이 조금 쳔국에 가깝다고.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태어나면서부터 원폭의 고통을 떠안아야 했던 원폭 피해 2세 김형률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 고통을 밝히지도 못하게 했다.  오죽하면 같은 고통을 가진 1세대들조차 그가 입다물고 있어 주기를 바랐겠는가.  

그러나 김형률은 용감하게 자신이 2차 원폭 피해자라는 것을 세상에 밝혔다. 그것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고, 작은 불씨가 되는 행동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김형률이 젊은 예수다. 몸은 사라졌지만 그 사랑과 믿음의 힘을 사람들 가슴 속에 빛으로 새기고 간 예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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