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아줌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간지에 소개된 글을 읽고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니 꽤나 멋진 작품이다. 그러나 책 제목과 그림만 보고 어린이에게 권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지는 미지수다. 일본 문학의 영향일까? 전통적인 나레티브 방식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장면이 몇 있다. 예를 들어, 산타클로스의 회의 장면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로 넘어가는 장면, 앞에 전혀 설명이 없었는데 주인공 제시카와 존이 사랑하는 사이였고 결혼을 할 것이라는 암시 등이 그러하다. 굉장히 신선하고 기발한 시도다. 어린이문학에서는 별로 보지 못한 스타일이었다.

며칠 전 일본어 번역작가 서혜영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도 그러했지만 일본 작가들은 소설의 셋팅을 외국에 하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이 책 “산타 아줌마”도 첫 장면은 핀란드에서 시작한다. 또 여러 나라 산타들이 모인 가운데서 굳이 일본 산타의 비중을 높이지도 않는다. 아니,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제시카가 아닌가. 아, 한 장면 일본 산타가 주목받는 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일본 산타는, 퇴임하는 산타 회장이 여자 산타를 후임으로 앉히려고 하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의 지위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단지 집에 돈을 갖다주는 존재로, 그것말고는 방해꾼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지요. 심한 경우에는 아이들로부터 ‘큰 쓰레기’취급을 받을 정도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튼 분명한 것은 부성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 그런 와중에 여자 산타클로스가 나타난다면……. 아이들은 끝까지 아버지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겠지요. 산타클로스는 이 세상 아버지들의 최후의 요새 같은 것입니다.”라고 위축된 남성의 지위를 이유로 제시카를 거부한다. 작품의 메시지를 볼 때 주인공과 대립하는 부정적 인물의 역을 맡는 것이다.

문학에서 꼭 작품의 배경이 우리나라일 필요가 없고, 주인공이 꼭 우리나라 인물이라는 법도 없지만 스스로 그런 틀에 갇힐 위험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발로 뛰어 책을 만들지 않고 의자에 앉아 머리로만 꿈꾸는 그런 골방 철학자의 사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물론 순수하게 사색과 상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온 예도 많을 테지만)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경우,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라든지 각국의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한 조사가 엿보이는데 이것도 칭찬해줄 일이었다.

읽으면서 재미있고 가뿐해지는 작품을 찾는다면 한번쯤 잡아도 후회는 없을 책이다. 또한 같은 아줌마로서, 일하는 여성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라 한번 더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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