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툰 4 - 우린 날마다 자라요 비빔툰 (문학과지성사) 9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비빔툰>은 착한 만화다. 늘 그렇지만 착하다는 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나쁜' 조직과 사회가 착하다 신화를 가지고 개인에게 '착하게' 참으라고 이데올로기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비빔툰의 가족은 아내의 희생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통보수주의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중간에 생활미씨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학원에 다니려 하는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쩔쩔매는 대목이 나온다. 사실 맞벌이 부부인 나로서는 생활미가 어떻게 계속해 나갈까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연재가 계속 되면서, 학원에 나가는 모습은 몇번 보이지만 그 소재는 묻혀버렸다.

그러다가 이 책 거의 마지막 195쪽 <자격지심> 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발견했다; 침대에 누운 생활미 씨가 남편에게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는 애기 낳으면 곧장 아기도우미한테 맡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거라 말했다. 생활미는 그 친구의 말을 전하면서 '아직 생기지도 않은 그 아기한테 내가 괜히 미안해지더라구.'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친구의 그런 당돌함, 자신감이 부럽기도 하더라...'라고 덧붙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잠자다 깬 둘째에게 달려가 어르면서 '엄마인 나로서는 솔직히 그런 말 쉽게 안 나오던데... 그러고 보면 내가 좀 보수적인가봐.'라고 한다. 남편은 자격지심에 '그 말은 꼭, 남편인 내가 보수적이라는 말로 들리는군.'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나는 그 대목에서 '그래요. 당신 둘다 보수적이예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특히 생활미씨에게. 그런데 그 보수는 단순히 보수/진보처럼 성향을 나타내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생활미씨 당신을 옭죄고 짐지우는 자기 올가미라고...왜 자기의 욕구를 인정하고 가족과 함께 그것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지 않고 손쉽게 자기가 포기하고 희생하는 길을 택하느냐고도 묻고 싶다.

함성호 씨는 이 책의 발문에서, '홍승우씨의 가족들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를 패러디하며 '그래, 우린 미쳤다 왜!'라고 말하며 소시민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제도의 모순을 사랑해야 나와 내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 가족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그런데 그 견딤이라는 것이 여성에게 일방적이고 또는 여성에게만 지나치게 큰 무게를 지닌다면 그것도 정당한 거냐고. 물론 이 가족의 경우 가장인 정보통에게 '견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욕구를 실현할 가정 외의 장 즉, 직장이란 곳이 있다. 비록 그곳이 늘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꿈의 현장이 될 수 없고 늘 나를 좌절시키고 실망을 안겨주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끊임없이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활미에게는 오직 가정 밖에 없지 않은가?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를 확인하고 존재의의를 찾는 것이다. 생활미에게,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그것은 사치이고 향유로 비치기 때문에 빡빡한 살림과 일손이 그것을 허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정보통 같은 남자라면 90점이 넘는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고 늘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그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인 아내의 고충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아내들은 요구해야 한다. 말해야 한다. 착한 아내들에게는 그게 '생색내기'로 비출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더 이상 착하지 말아야 한다. '되바라지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시끄럽게' 요구해야 한다.

<비빔툰>이 5권, 6권 계속되면 만화든, 작가의 실제 생활이든 이 생활미씨가 이름 그대로 진정 생활 속에서 어떻게 '아릅답게' 피어날지 나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다운이, 겨운이 때문에라도 나는 <비빔툰>의 열렬한 팬이지만 마냥 착하기만 한 정보통, 생활미 씨를 보면 문득 경계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착한 마누라'가 되기 싫기 때문이다.
 

 


p.s. 위 서평을 올린 것도 벌써 몇 년 전인가?

나는 거의 모든 책을 좋아하고, 특히 내가 읽은 대부분의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서평을 쓰는 책들은 꽤 가린다. 까탈을 부리는 게 아니라, 뭔가 가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책에 대해서만 글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글은 책의 생산자들이 듣기에 반갑고 힘이 나는 것일 때도 있을 것이고 완전히 정반대로 책이 아닌 생산자들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책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을 때, 반대로 아주아주 마음에 안 들었을 때 주로 책에 대한 감회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글은 가능하면 공개하고, 한 권이라도 더 팔리라고 입소문을 내려 하지만 후자의 글은 써두고도 혼자서 간직하는 일이 많다.
책에 대한 내 인상과 판단이 지극히 경솔해서 오랜 시간 그 책을 끌어안고 만들어낸 이들에게 상처를 줄지 모르니까. 아니면 비평자도 아니면서 비평의 날을 들이대려는 나 스스로에게 시간을 좀더 두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비빔툰4에 대한 글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몇 년이 지났지만 다시 읽어도 참 과감하게 내질렀다. 글을 열자마자 "이 책은 전통보수주의에 머물러 있다"며 바로 한 방을 날리지 않는가. 설령 이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이 그때와 지금이 똑같더라도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을 걸지는 않았을 성싶다. 나도 늙었나...
 

정보통의 일상, 그리고 그의 가족이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 굴러가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갖고 있는 다른 점들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단언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았다. 러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비빔툰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다운이, 겨운이가 자라고 그 부모인 생활미와 정보통도 성장통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큰 힘을 얻는다. 생활미가 '주부'로 주저앉게 된 그 사연은, 같은 여성으로서 분명 울화통이 났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정보통, 그러니까 작가의 탓이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활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착한 마누라가 되기 싫다"는 말은 내 남편에게 할 말이지 남의 신랑한테 외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뭐, 아직도 이 시위는 계속되고 있지만. 쩝.

나 역시 10년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운이, 겨운이 같은 아가들을 키우고 있다.

지금도 한겨레에서 비빔툰을 꼭꼭 챙겨 보는 독자로서,
몇 년 전 내가 올렸던 위 서평이 작가에게 '독'이 아니라,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08.26.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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