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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 <가례도감의궤>로 본 왕실의 혼례문화
신병주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흔히 한국 사람들은 기록에 약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게 된다. 딱히 절대치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남긴 우리 문화에 대한 기록의 양과 질을 보면, 그 말에 일면 수긍하게 되기도 한다. 민족성 운운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혹시 알고 있는지? 우리가 비록 사소한 일상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나름대로 체계잡힌 기록의 방식이 있었다는 것을..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는 영조 때의 <가례도감의궤>에 대한 꼼꼼한 고찰과 고증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의궤는 왕실에서 행한 각종 의례와 행사에 관련된 기록물이다. 사용된 물품의 종류는 물론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의 재화가 소용되었는지가 매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궤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반차도이다. 반차도는 행사를 치르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의 수와 계급, 행렬의 순서가 그대로 그려진 그림이다. 오늘날 행사 때에 비디오를 촬영하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그림 자체가 매우 길기 때문에 10여 미터 이상 되는 것이 허다하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의궤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차도까지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또한 각 그림의 부분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보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의궤를 보면, 비록 왕실의 행사에 그치고는 있으나 그 기록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의궤를 통해 당대의 물품들과, 용도 또한 행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니 마치 한편의 보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곤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의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불타거나, 외세 침입 때 약탈당해 몇 차례의 경매를 거쳐 프랑스와 영국 등지에 보관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영조 때의 가례도감의궤를 통해 의궤의 의미와 당대의 문화적 단면을 함께 살핀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보여진다.
다만 이 책의 내용 가운데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의궤가 한편의 종합보고서인 까닭에 의생활은 물론 식생활과 건축의 기법, 그리고 다양한 의장용 물품과 행사 순서 등에 대해 살피느라 몹시 분주한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참고한 지은이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전문적인 설명을 요하는 부분에서는 역시 미진함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그 범위가 매우 넓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 때의 혼례 행렬 속으로 우리를 초대해준 지은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진연의궤>나 <진찬의궤> 등 다양한 의궤 연구서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