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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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서로의 시간을 더듬어볼 때, 우리가 새긴 마음은 이미 지워지고 사라졌을 것이다. 지워지고 사라진 흔적이 증명하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그토록 살아 퍼덕이는 생명이었다는 것, 그래서 바람에 쓸리고 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단 하나의 진실이리라. -p, 19

 

 

사랑이 언제 끝났느냐는 질문에 대해, 남자는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여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이미 잊었어요.

 

해야 할 일도 지켜야 할 약속도 없어 이른 귀가를 한 날, 서둘러 찾아든 겨울 저녁, 혼자 밥을 지어 먹고 남자는 오랜만에 그 기억을 호출해본다. 자신의 눈 속에 비치던 그녀의 눈빛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남은 그녀의 온기를, 자신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오던 그녀의 설렘을, 자신의 보조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던 그녀의 미래를,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갔던 길을, 함께 나누었던 밤을, 함께 들었던 노래를, 그리고 함께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기억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남자는 멍한 눈으로 오래 허공을 응시한다.

 

혼자 먹을 밥을 짓기 싫어서 편의점에 들러 우유와 몇 알의 귤을 사 들고 들어온 날, 여자는 문득 그때 그가 했던 그 말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일상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남자를 떠올리는 건 그와 헤어진 그녀에게 새로 생긴 습관이었고, 그녀는 이미 그 습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조금 울어도 괜찮겠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여느 때처럼 그냥 웃어버리자고 여자는 생각한다. 남자에겐 사랑이 쉬웠고 이별이 어려웠다. 여자에겐 사랑이 어려웠고 이별이 쉬웠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거나, 우리는 그렇게 달랐다. 함께 사랑을 했다고 믿었지만, 시작은 달랐고 마지막도 그렇게나 달랐다. -p, 62, 63

 

 

"마리,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을 잔뜩 안겨주는 이유를 알아?"

마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말이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사랑 대신, 뭔가 확실한 것을 주고 또 받고 싶기 때문이야. 하지만 눈에 보이고 잡히고 만져지는 물건들은 언젠가 깨지고, 부서지고, 변하고, 사라지지. 네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와 비슷한 거야."

"왜 돌아오지 않는데요?"

마리는 겁에 질려, 여자에게 물었다."

"아마 그는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사러 왔을 거야. 이를테면 사랑이 시작되는 곳에서 생겨난다는 무지개 같은 거. 그리고 그 비슷한 것을 샀을지도 몰라. 그런데 불안해졌겠지. 그 사람은 아마 기다렸을 거야. 그 무지개가 진짜 무지개인지, 그래서 영원히 반짝반짝 빛나는 것인지. 어쩌면 몇 번이나 실패를 했을 거야.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아. 그저 눈앞에서 빛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계산을 치른 다음 포장을 해서 들고 가지. 하지만 그 사람은 달랐던 거야. 너에게 진짜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그랬던 거군요."

마리는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눈으로 여자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하지만 그런 것을 구하기 위해 십 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중간에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포기한 이들이지. 게다가 운이 좋게 물건을 구했다고 해도, 그것을 받을 사람이 기다려주고 있다는 보장은 없어." -p, 79, 80

 

 

삶이 계속되는 사람에게 있어 과거란 이미 지나간 일, 즉 종결된 무엇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시간과 기억들은 '기쁨'이나 '슬픔' 같은 한 가지 감정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광활한 감정의 바다를 표류하며 엎치락 뒤치락할 수밖에 없다. -p, 103

 

 

다 잊을 필요는 없지만 다 간직할 필요도 없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가져갈 수도 없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삶에서, 소유란 그러한 형편이다. 기쁨이었던 것이 슬픔이 되고, 가벼웠던 것이 무너지고, 높이 날던 것이 내려앉고, 영원할 줄 알았던 것이 문득, 끝이 난다. -p, 104

 

 

그제야 두 사람은 알게 되었다. 멋진 남자를 만난다고 해서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찾고 있었던 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아니라,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세상의 어떤 남자도, 행복을 베풀어주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많이 해보아도 그 답을 알 수 없는 것이 연애이며, 한번도 하지 않아도 그 뻔한 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연애라는, 무시무시하고 무의미한 진실을. -p, 125

 

 

당신은 한때 칼날 같은 사랑을 품고 있었다. 사랑 같은 칼날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내게 내민 것이 사랑인 줄 알고 품었으나 칼날인 적도 있었고, 칼날인 줄 알고 피했는데 사랑인 적도 있었다.

"네가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겠다면, 내가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

당신은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사랑 같은 칼날이 나를 피해 갔으니 목숨은 건졌다고 현자들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칼날 같은 사랑이 떠났으니 곧 목숨을 잃을 거라고 그들은 내 뒤에서 수군거렸다. 하루는 살고 하루는 죽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 나를 떠난 당신은 어떻게 살고 죽었나.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야. 시간을 소진하고, 소모하고, 소비하고, 낭비하고, 탕진하고, 그래도 돌아오는 시간을 또 소진하고, 소모하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에너지를 다 쓰게 돼. 죽을 만큼 힘들다고."

코끼리가 그런 말을 할 때, 사막은 점점 커져갔다. 코끼리가 점점 작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고래는 다 지나 보냈어? 그 시간들을?"

이상하게 내 목소리가 울먹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물었다.

"응. 그리고 무뎌졌지."

"그 사람도 그럴까?"

코끼리는 커다랗고 무겁게, 고개를 꼬았다.

"여태 붙잡고 있을지도 몰라. 사랑 같은 칼날이라거나 칼날 같은 사랑을. 그게 충분히 무뎌지기 전까지는,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거야. 너를 해치게 되면 자기 자신도 해치게 되는 거니까. 그게 사랑이든 칼날이든. 시간만이 그걸 무디게 만들 수 있는 거야." -p, 166, 167

 

 

 나의 하루하루는 소란하고 고요하고, 따뜻하고 외롭고, 불안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p, 189

 

 

내가 가지고 있는 은으로 만든 목걸이는 샤워할 때도, 잘 때도 빼놓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매일 아침 천으로 닦아주어야 한다. 하지만 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보다, 매일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며 아껴달라고 조르는 은이 좋다. 하루만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시들어버리는 꽃이라거나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은 모차렐라 치즈, 조금만 오래 놔두면 맛이 변해버리는 와인…… 그리고 쉽게 상처받는, 쉽게 절망하는, 쉽게 눈물 흘리는, 쉽게 행복해지는, 유리로 만든 구슬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바로 지금 이 순간. -p, 195

 

 

그들은 늘 멋진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려가서 근사한 저녁을 사주고 나의 향기를 맡고 싶어 했어. 나에게서는 언제나 달콤한 향기가 났거든. 당연하잖아, 나는 초콜릿이니까 말이야.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 몇 번의 데이트가 끝나면, 남자들은 모두 나를 떠나버렸지. 이유를 궁금해하는 내게, 친구들이 그들의 소식을 전해주었어. 나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에 지친 남자들은 짜거나 맵거나 딱딱하거나 무미건조한 여자들에게로 가버린 거야. 이상하게 난 슬프지도 않았고 화도 나지 않았어. 그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라는 기분? 내 이야기는 이게 끝이야. 아아, 혹시 오해할까 봐 한마디 더 하겠는데, 지금의 내 삶은 그다지 불행하지 않아. 이 세상에는 아직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거든. 그저 누군가에게 한순간의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으로 나는 충분해. 어쩌겠어.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바꿀 수도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 행복해지는 수 밖에. -p, 251,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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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한 술 - 나와 다른 당신에게 건네는
강태규 지음 / 푸른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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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순간 내 아들에 관한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음에도 우리는 그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바뀔 수 없는 숙명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순간 결속 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손이 된다. 그래서 상대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속과 결손으로 나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상한 아집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외면해 버리고 벽을 쌓는다. 점점 더 고립되고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축소시킨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는 악화되고 서로 외면하기에 이른다.

 

-p, 4~5 (작가의 말 中)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고 깨닫는 게 많아지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들이 무한하다는 걸 느낀다. 특히 단순한 지식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 중에서 말이다. 요즘 내가 제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 책 《사랑 한 술》을 손에 쥐자마자 급하게 읽어냈는지 모르겠다. 

"삶, 사람 그리고 가족에 대해 한없이 깊게 생각하게 하는 책" 이라니.

 

《사랑 한 술》의 저자 강태규는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사람들만 보더라도 (가수 이적, 배우 조정석, 음악평론가 임진모 등)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음반기획사에서 일을 하고 계시며 한 대학의 교수님으로도 계신다고 하는데, 이런 책을 쓰기가 쉽지 않으셨을거란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저자 강태규는 자폐를 가진 아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자폐를 가진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생각하고 배우게 된 것들을 알려주듯 적어놓은 책인데 단순히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 뭐 이런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혹은 가족의 사랑, 인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손'이 아닌 '결속'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은 따로 적어두고 싶을만큼 멋졌다.

 

아직 한 아이의 부모가 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 이 책을 읽으며 부모님의 마음을 내가 몸소 느끼지는 못했지만 요즘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하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만 몸이 아프신 외할머니를 위해 매주 주말마다 꼭 외할머니한테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나중에 우리 엄마한테 꼭 저런 딸이 되어줘야겠다며 혼자 다짐하곤 한다. '언젠가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될테고 나도 지금 우리 엄마처럼 나이가 드는 날이 올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 엄마를 쳐다보다가도 눈물이 핑 돌때가 있다. 아직도 깨닫고, 이겨내야 할 게 많은 나이기에 이런 한 권의 책들이 정말 큰 힘이 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가 의외로 가족이라고 한다. 유난히 아픈 게 가족이 주는 상처다. 깊게 패여서 오래 갈 것 같은 그 상처가 가족이 보듬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가장 쉽고 깨끗하게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p, 51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믿음으로 지켜보는 일이다. -p, 132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잃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시기'와 '탓'이 난무하는 공방전은 상대를 인정하는 배려가 없음이 초래한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어야 하는 이기심은 상대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결국 깨어지고 곪아 터진 관계들이 사회를 결손의 상처로 얼룩지게 하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진정성을 획득 할 수 있다. 인정하는 미학은 결속과 결손을 갈라놓는 중요한 선택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 사실을 잊고 산 지 오래되었다. -p, 180

 

 

지켜본다는 일은 아름답다. 지켜보는 사이에도 무언의 대화가 진행된다.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저 고민들에 무조건 다가서기 보다는 먼저 지켜보자. 지켜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리는 것 또한 고민을 해결하는 중요한 첫 걸음일 수 있다. -p,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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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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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p, 284

 

 

 

 

 

 

 


 

 

 

 

 

 

 

 

이 책을 읽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석원'에 대해 검색을 해 본 일이었어요. 얕은 지식으로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렇게 검색을 해보던 중 느꼈던 건 '이석원'의 책 (《실내인간》 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존재》라는 책도) 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는 점. 혹시 이런 경로로 이 포스팅을 보고 계시는 분들은 진심으로 반가워요. 우린 책 궁합이 맞는 사이니까!

'묻겠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p, 262

이렇게 저에게 내내 많은 걸 묻던 소설이었어요.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지 아느냐고, 남들에게 쫓기듯 세우게 된 목표는 너에게 얼마나 무서운 영향을 미치는지 아느냐고,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느냐고, 네가 누구를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사실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실연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인생을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아니, 그냥 모두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이었어요.

지금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전곡을 재생해 듣기 시작한 것은 이런 멋진 글을 쓰는 '이석원'이라는 남자의 감성을 조금 더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것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만 아득해져버렸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p, 64
사랑했던 사람의 냄새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생에는 간직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걸. -p, 254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p, 270
"용우야."
"네."
"인생을 비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더욱 엿 같은 일이 너를 기다려."
"……."
"그러니까 절대로 비관하지 마. 알았어?"
"네……." -p, 278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씨.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p,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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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카페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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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장소를 떠오르게 해주어서 고마워. 하지만 그 뿐이야_프란세스크 미랄례스 & 카레 산토스, 《일요일의 카페

 

 

 

 

 

 

 


 

 

어느 일요일. 죽기 위해 열차에 뛰어들으려는 찰나, 뒤에 서있던 아이가 장난치기 위해 들고 있던 풍선을 터뜨려 이리스를 놀라게 하고, 덕분에 이리스는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우연히 보인 카페.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 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이 카페엔 특별한 주인과 손님 그리고 탁자가 있습니다.

각 탁자엔 특별한 기능이 있는데요. 마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반대편에 앉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탁자,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탁자, 과거에 일어났던 가장 나쁜 일이 때로는 최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도와주는 탁자(그늘 속에서 빛을 찾는 법을 가르쳐주는 탁자), 앉은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탁자,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이별의 탁자.

결론을 말하자면 전 《마시멜로 이야기》같은, 교훈에 스토리를 짜맞춘 듯한 (물론 베스트셀러였지만요) 이런 책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일요일의 카페》라는 제목만 보고 '일요일의 카페'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겠지 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에 실망을 안할수가 없었어요. 이 책의 교훈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행복을 바라보세요.'가 되겠네요.

 

 

 

 

 

 

 

 

 

이렇게 실망을 했음에도 이 책에 고마웠던 점은 이 책 덕분에 한동안 잊고있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를 떠올리게 해주었단 점이에요.

전에 살던 동네에 있던 카페인데, 사람에 치이거나 주변 환경에 치여서 힘들때면 이 카페가 항상 떠올라요. 제가 고등학생 때 이 카페가 생겼는데 고등학생들도 카페에 자주 가는 요즘과 달리 그땐 카페에 가는 게 정말 사치 중의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거든요. 그때 저와 정말 잘 맞는 친구랑 가끔 그 카페에 가면 저희 엄마뻘 되는 주인 아주머니는 항상 입구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계셨어요. 그렇게 저희에게 음료를 내어주면서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자리에 앉으셔서 또 책을 읽으시고, 저희도 수다 떨다 책 읽다 그렇게 고등학생이었던 저희만의 힐링타임을 갖던 곳이었거든요.

대학생이 된 후에 친구와도 가고, 혼자도 가고, 남자친구랑도 가고 정말 자주 가면서 눈도장을 찍었는데 제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돼면서 그 카페에도 자주 가지 못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때면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서라도 그 카페로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해요. 아주머니의 남편분은 사진작가이셔서 곳곳에 멋진 사진들도 가득하고, 고등학생때 겨우 한두칸이 채워져 있던 카페 한 가운데에 있던 높은 책장엔 어느새 책이 가득 쌓여있어요.

저번에 남자친구와 갔을 땐 아주머니께서 "오랜만이네요! 살 빠졌네요?" 하면서 인사를 해주시곤 제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된 남자친구를 보곤, '새로 만나게 된 사람이구나. 알겠어요 ^^' 라는 식의 눈인사를 해주시는 걸 보고 어찌나 재밌었던지.

 


 

조만간 제가 좋아하는 책 한 권 들고 그 카페에 들러야겠어요. 날씨도 쌀쌀해졌으니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 카페의 코코아 마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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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기억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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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 인데요.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이라는 제 블로그의 이름도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이름을 따서 지었을 정도로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데에 많은 도움을 준 에쿠니 가오리 여사. 

요즘은 특히 작품을 많이 내주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 《기억 깨물기》라는 단편집을 내주었길래 한동안은 또 못보는건가 그리워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등 뒤의 기억》이라는 장편을! 그래서 나오자마자 바로 겟 했답니다. 그러고보니 둘 다 '기억'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네요. 요즘 에쿠니 가오리가 '기억'이라는 소재에 푹 빠져있는걸까요?


 

 

​《등 뒤의 기억》에 대한 제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동안의 에쿠니 가오리가 선보였던 작품들에서 다루던 것과는 달라서 아쉬웠지만 에쿠니 가오리 스러움은 여전히 느껴져서 다행이었달까요. 전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룰 때가 제일 매력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녀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남들이 다 욕하는 '불륜'마저 이해하게, 아니 이해를 뛰어넘어 애틋하고 사랑스러워보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에쿠니 가오리가 지금까지 다루어왔던 작품들을 보면 거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등 뒤의 기억》에서는 '사랑'이 주변부로 밀려나 있어요. 

영화 장르로 생각하자면 '멜로+드라마'에서 '드라마+미스터리'로 바뀐 격이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히나코'는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사는 실버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가는 독신녀인데요. 그녀와 함께 매번 등장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이 소설에선 '가공의 여동생'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던데, 오래 전 실종이 된 히나코의 여동생이었죠. 히나코는 혼자 살아가지만 자신이 생각하는(상상하는) '가공의 여동생'과 대화도 나누고, 마주보며 밥도 먹고, 피아노도 치고, 목욕도 하며 일상을 보내죠. 이 점 때문에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소개가 된 것 같은데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다루면서도 에쿠니 가오리 스러운 감성은 여전했습니다. 그녀의 감성을 잃은 순도 100% 미스터리였다면 서운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한 사람의 등 뒤엔 천 개의 엇갈린 기억이 존재한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끝난 사랑이라 해도,
그 사람이 마음을 품고 있는 한 그것은 유효하다.
_에쿠니 가오리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가죠. 저 또한 요즘 가족, 친구, 연인 누구든 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젠간 헤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오곤해요.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마음 아픈 사실에 대해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네요.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겐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전 제가 상대에게 오래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왕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기억들이라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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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책도 '기억'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었네요. 이 책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고, 하고 또 해서 소개해드리러 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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